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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Mar 23. 2024

가두산고(街頭散考)

-Osaka 01

ⓒ 스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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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쉼표'다

- 세상엔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 이미 절벽인 독서 인구는 뛰어난 검색엔진과 쳇GPT에 의해 소멸될 것이다. 대중이 독서의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이책의 여백을 채우는 쾌락을 포기하고 있다. 하긴 겨우 읽은 책 몇 권을 우려먹는 사람들보다야 무해하다. 시류가 그러하니 독서를 강권하기가 힘들다. 그럴 때 대신 산책을 권한다. '걷는 발의 뒤꿈치에서 생각이 나온다'라는 니체의 말을 믿어서다. 


- 일상에 쉽게 질리는 성향이라면 책상 옆에 여행가방을 둬도 좋다. 반드시 작정한 긴 여행만 여행인 건 아니다. 동네 한 바퀴면 어떻고, 전철 세 정거장짜리 산책이면 또 어떠랴. 나는 생각이 막히거나 정서가 흔들리면 무작정 운동화를 신는다. 손에 카메라나 노트가 들려 있다면 더 든든하다. 


- 사전에도 없는 '가두산고'란 조어를 만든 것은 길거리를 걸으면 흩어졌던 생각이 정리되는 개인적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다. 연전에 원로 문학평론가와 대화하던 중 "선생님은 요즘 글 쓰실 때 뭘로 고민하세요?"라고 여쭸었다. 


"쉼표의 위치가 늘 고민이지."

 

- 나는 주저 없이 찍던 쉼표가 대가의 고민거리라니. 쉼표는 긴 문장의 호흡을 정돈하는 신호등이다. 주행과 멈춤을 반복하는 삶에도 쉼표와 같은 신호등이 있어야 한다. 여행은 삶의 쉼표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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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형과 과시형

최근 뜻하지 않게 자주 일본엘 드나들었다. 헤비스모커에 가벼운 폐소공포증이 있는 내게 일본은 접근성이 뛰어난 여행지다. 역사적, 정치적 갈등을 생각하면 등 돌릴 땅이건만 여행지로서의 만족도를 외면하기 어렵다.      


- 일본 길거리 풍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자전거다. 앞뒤에 아이들의 안장을 단 젊은 엄마들의 자전거가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식당 앞엔 어김없이 주인장이 타고 온 자전거가 세워져 있으며, 출퇴근 길엔 백팩을 멘 직장인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주차금지보다 '주륜금지(駐輪禁止)' 표지판이 더 많다. 특징적인 건 인도의 행인들 사이를 속도를 줄이지 않고 위태롭게 지나가는 자전거들이 벨을 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화의 차이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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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돌아와 오래 방치한 자전거 타이어를 갈기 위해 동네 점포를 찾았다. 성능 좋은 스피커로 재즈를 듣던 주인이 교체 작업을 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아들이 사이클 선수 출신이었고, 자신은 산악자전거(MTB) 1세대라며 너스레를 떨던 그는 "1974년 MTB의 원형을 개발한 게리 피셔(Gary Fisher)라는 사람이 아직 생존해 있고, 한국에도 자주 왔었다"라고 했다.


"한강 둔치 행사에서 게리 피셔를 만났는데, 선수 같은 착장에 고가의 자전거를 탄 사람이 너무 많아 놀라더라고."  


- 한마디로 한국과 일본의 자전거 문화는 '생활형'과 '과시형'이라는 수식어로 구별된다. 부디 과시의 유전자가 끊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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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은 건강하다 

- 활력이 떨어진 사람은 시장통을 찾으면 치유된다고 믿는다. 일본이라고 다를 바 없다. 이른 아침, 오사카 난바역 인근 구로몬(黑門) 시장도 그랬다. 물건들은 싱싱했고, 상인들은 부지런했다. 


- 사는 게 뭐 별건가. 해 뜨면 하던 일하고, 그 대가로 손에 쥔 몇 푼으로 가족들과 따뜻한 밥 한 끼 하면 되는 거 아닌가. 


-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세계를 가장 친절하게 설명해준 선배 K. 조리법을 알았다면, 복어 지느러미를 사다 K의 영정에 '히레사케' 한 잔 올렸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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