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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Mar 30. 2024

천재가 된 변태

- 영화 <가여운 것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달라진 '오타쿠'의 신분

- 대놓고 자식이 오타쿠(otaku, 御宅)가 되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초기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다. 마치 루저의 대명사로 인식되던 오타쿠가 이젠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스 출신의 영화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는 성공한 대표적 오타쿠다. 아니, 그는 천재가 된 변태에 가깝다.


- 이제까지 그의 필로그래피 중 3편을 보았다. 첫 관람 작품은 <더 랍스터(2015)>였다. 낯설고 기괴한 이 부조리극이 취향을 저격하진 않았지만 수작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후 찾아본 <킬링 디어(2018)> 역시 내게 '완성된 불쾌함'을 선사했다. 그를 변태라고 확신하게 만든 그의 출세작 <송곳니(2009)>는 엔딩 크레디트 이후 말문을 막히게 했다. 비정상적 상황 속 괴이한 가족의 설정은 변태가 아니고선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이었다. 그는 미니멀한 가상의 독재공간을 만들어 무자비한 권력(권위)을 그렇게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그의 신작 <가여운 것들(2024)> 역시 그가 견지해 온 비현실적이고 우화적인 설정을 고수한다. 미장센 역시 그의 특장인 금기의 담장 위 위태롭게 걷기를 버리지 않고 있다.


- 그리스 출신답게 그의 작품들은 그리스 신화 같은 유럽 고전에 유전적 배경을 갖고 있다. <가여운 것들> 역시 최초의 SF 소설 중 하나라는 <프랑켄슈타인>의 여성 버전처럼 읽혔다. 바꿔 말해 주연여우의 연기력이 성패의 관건이었는데, 엠마 스톤은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을 자격이 충분했다. 여기에 질투에 몸부림치는 바람둥이를 연기한 마크 러팔로의 찌질한 연기도 일품이었다. 헐크로 변신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이질과 본질

- 영화 속에는 이종교배의 피조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거위의 몸에 개의 머리를 단 동물, 돼지머리에 개의 몸을 가진 동물 등이 등장한다. 이종교배는 아니지만 자살한 여인의 몸에 태아의 뇌를 이식해 창조된 여주 벨라도 유사한 결합이다. 그리고 엔딩에서 여주의 남편이자 아빠인 인물은 염소가 되어 풀을 뜯는다.


-  성인의 신체와 아이의 뇌를 가진 벨라는 시퀀스의 오류로 접시를 깨고, 장소를 불문하고 용변을 보고 자위를 한다. 성인우화의 소동처럼 보이지만 그런 부조화는 내게도 우리 사회에도 적용된다. 가식으로 위장된 피지컬을 자랑하며 숨겨진 늑대의 이빨로 세상을 물어뜯는 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 않은가. 이 영화는 이질적 요소를 통해 본질을 드러내는 천재성이 돋보인다. 



ⓒ 마로니에북스 <에곤 실레> '서 있는 남자' 중 일부


# 에로티시즘과 페미니즘

- 2024년 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상을 거머쥔 작품답게 화면은 정교한 소품들과 색감들로 충만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클림트보다는 에곤 실레가 연상됐다. 단순히 형태와 색감 때문은 아니었다.


- 지독한 에고이스트였던 에곤 실레의 그림은 당시 관객들에게 공포에 가까운 이질감을 주었었다. 미성년 소녀들을 모델로 포르노그래피적 누드를 그린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던 그는 스페인 독감으로 아내와 자식을 잃은 3일 뒤 28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 영화관을 나서며, 에로티시즘에 불을 붙인 에곤 실레가 영화 속 엠마 스톤을 만났다면 모델을 제의했을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페미니즘을 장착한 벨라는 그의 권유에 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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