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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Mar 25. 2024

가두산고(街頭散考)

- Osaka 02

ⓒ 스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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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판기

- 최근에 알게 된 몇 가지 사실. 일본의 3대 도시는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인데 유독 도쿄와 오사카 두 도시의 지역감정이 첨예하다는 점 등이다. 현지인들도 도쿄 사람들은 감정을 잘 절제하지만 오사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식의 생각을 한단다. 오사카 출신은 활달하고 정이 넘치는 반면 도쿄 사람들은 도회적인 깍쟁이로 여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 30년 전 도쿄에 처음 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즐비한 자판기였다. 작은 라멘 가게엘 갔는데, 자판기에서 식권을 뽑아야 했다. 마치 키오스크와 첫 대면했을 때의 당혹감이 들었었다. 동네 목욕탕에서도 자판기에서 나온 밴드를 손목에 차고 입장해야 했다. 샤워를 마치고 사우나에 들어가려던 나는 동행한 지인의 제지를 받았다. 내가 구입한 밴드는 샤워만 가능한 가장 저렴한 티켓이었던 것. 속으로 '몹쓸 놈들 문화네'라고 욕을 한 바가지 쏟아냈었다. 


ⓒ 스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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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판과 쓰레기

- 내가 일본에서 눈여겨보는 것들 중 하나는 간판이다. 특히 붓글씨로 쓴 다양한 서체는 손글씨 간판이 드문 우리와 대조적이다. 우리도 폰트 대신 손글씨 간판이 많아지면 무질서한 간판들에 개성이 가미되지 않을까?    


내가 머문 오사카의 호텔은 유흥가 주변에 있어, 혼잡했다. 한국과 중국의 관광객들이 넘쳐났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늦은 시각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도심 곳곳이 쓰레기로 채워졌다. 


- 오사카 시가 외국인 관광객들에 부과하는 관광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단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들어오는 '오버 투어리즘(over tourism)'으로 현지인들의 불편과 쓰레기 처리 문제 때문일 터. 관광 수입을 생각하면 과도한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지만 현장을 보니,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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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

- 내가 묵었던 일본의 작은 호텔들은 꼭대기층에 욕장을 갖춘 경우가 많았다. 관광을 마친 여행객들이 여독을 풀기에 그만이다. 너무 작은 객실 욕실에 대한 불만도 해소되고 말이다. 게다가 비록 소규모지만 노천탕은 료칸을 가지 못한 아쉬움을 덜어준다.   

- 예전에는 욕탕에서 현지인과 관광객을 구분하는 법이 있었다. 작은 수건으로 주요 부위를 가리고 조심스레 들어와 옆 사람에게 물이 튀지 않게 샤워를 하면 현지인, 그렇지 않으면 관광객이다. 한국 관광객(당시 중국 관광객은 드물었다)은 유별나지는 않았지만 서양인들은 보무당당하게 입장했다(못된 놈들).


- 현지인들은 목욕이 끝난 뒤에도 티가 났다. 자신이 쓴 물바가지를 깨끗이 씻고 주변에 튄 비눗기를 모두 제거하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이번에 보니, 현지인들의 목욕문화도 달라진 모양이다. 청년들은 주요 부위를 가리지도, 뒷정리를 깔끔히 하지도 않았다. 


-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문화도 있었다. 목욕을 마친 나는 라커에서 기겁을 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내 앞에서 여성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오래전 도쿄의 동네 목욕탕에서도 같은 경험을 했었다. 목욕탕 주인의 젊은 며느리가 거리낌 없이 라커에서 사용한 수건을 수거해 갔던 것. 선험(先驗)이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기절할 뻔했다. 바뀐 것이 있다면, 일본인 여성이 동남아 여성으로 바뀌었을 뿐.  


- 욕장 앞에는 휴게실이 있었다. 17층에서 오사카 시내를 내려다보는 뷰가 나쁘지 않았다. 조용히 잔땀을 식히기에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튿날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국민의 행복추구권 추구에 열심인 한국 청년들 탓에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다. 길거리음식을 잔뜩 사 온 일단의 무리가 음식 냄새를 풍기며 캔맥주를 곁들여 술자리를 편 것. 나는 한국의 청년 세대가 자랑스럽다. 김연아, 손흥민, BTS 때문만은 아니다. 적어도 내 세대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건강하며 스마트해졌다고 생각해서다. 아주 극단적인 순간만 제외하면 말이다. 

 


# 골목

-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나는 골목을 좋아한다. 좁다란 골목은 내게 안식을 주며 아기자기한 풍경과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대자연의 광활함보다 도시의 골목을 선호한다. 대도시 오사카에서도 나는 골목을 비집고 다녔다. 그리고 작은 상점과 식당들 앞에서 자주 걸음을 멈췄다. 귀국을 준비하며 사케 대신 약국에 들러 파스와 감기약을 샀다. 내 몸에 가장 몹쓸 짓을 한 건 나와 척진 사람들이 아니라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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