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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Apr 01. 2024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 호명하라 손짓하는 꽃들

ⓒ 스침

#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  고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 동문이자 조소를 전공한 작달막한 키의 선생님은 교탁에 몇 송이 장미가 꽂힌 화병을 놓고 정물화를 그리게 했다. 한참 열중하던 내게 그이가 다가와 이렇게 얘기했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야. 난, 사람들이 왜 코를 들이밀어 냄새 맡는지 모르겠어."   


- 충격이었다.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되는 '꽃'을 '생식기'로 인식할 수 있음에 놀랐다. 사물을 책에서 배우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된 것은 그 이후였다. 틀에 갇힌 교육을 통해 우리의 사고는 단순화되고 고정화된다. 낯설게 보기,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기는 그래서 어려운 과제다.       


ⓒ 스침



# 나를 호명하라

- 꽃과 잎이 없는 식물의 수형(樹形)만 보고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눈썰미 떨어지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무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꽃을 피운다. 그러니까 꽃은 자신들의 이름을 불러달라는 손짓이자, 외침이다. 


-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진달래, 개나리, 벚꽃, 목련 정도를 제외하고는 꽃 이름을 잘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해당화, 조팝, 이팝, 산당화 등속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골에서 더 많은 꽃들과 통성명하고 싶다. 그동안 몰라봐서, 이름 한 번 불러주지 못한 미안함이 커서다.       




ⓒ 스침




# 새순

- 동네에서 아이들과 마주치면 절로 미소 짓게 되고, 강아지들이 폴짝거리며 뛰놀면 허리 굽혀 반기게 된다. 새로 태어난 것들에 대한 경외와 반가움은 새순이라고 다르지 않다.


- 새순이 초록인 것도 희한하다. 자연은 어쩌다 겨우내 을씨년스럽던 무채색의 풍경을 싱그런 초록으로 깨울 생각을 했을까. 


- 천지가 초록이 되기 전, 새끼손톱처럼 작게 싹트는 저 어린 것들을 실컷 봐둬야겠다.   




ⓒ 스침

# 어떤 선택

- 지난가을, 그 많던 모과 중 저 녀석은 땅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무슨 미련이 있어 제 있던 자리와 대지 사이에 스스로 몸을 걸어두었을까? 왜 썩어 거름이 되지도, 싱싱하던 몸도 지키지도 못한 선택을 하였을까? 봄바람에 새 잎이 돋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여, 내게 온통 물음표만 던지기 위해 저런 모습이고자 했던 것인가.


- 나무는 잎이 먼저 나기도 꽃대가 잎을 앞서 올라오기도 한다. 꽃도 서둘러 피는 놈이 있는가 하면, 겨울을 코앞에 두고 느지막이 피는 녀석들도 있다. 자연은 당최 무슨 연유인지 모를 일들로 가득하다. 공부하면 대강은 알게 되겠지만 때론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다. 그저 감탄과 탄성이면 충분한 그런 일들이 있다. 자연이 그렇다.   




ⓒ 스침

# 풀지 못한 인연

- 어느 새벽, 대작할 이도 없이 술잔을 기울이다 화르르 속이 타서 인터넷으로 가족관계증명서를 열람했다. 아비의 사망을 그렇게 확인했다. 몇 번 본 적도 없었던 아비와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술을 더 마시거나 울음이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별반 슬프지 않은 이별을 할 때도 있다.   


- 세상의 어떤 대장장이도 인연을 끊어낼 수 있는 칼이나 가위를 만들지 못한다. 끊을 수 있는 인연이란 없기 때문이다. 아직 풀지 못했거나 풀 도리가 없는 인연이 있을 뿐. 요즘 들어, 크고 작은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쓴다. 나중에 풀지 못해 먹먹하기 싫어서다. 어둠에 지워지는 그림자 같은 봄밤이 저문다.     

ⓒ 스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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