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침 Apr 03. 2024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정치는 일상이다 

ⓒ 스침

- 인류는 1/N에 불과한 투표권 쟁취를 위해 아까운 피를 많이도 쏟았고, 그 역사는 일천하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참정권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20세기 초반 시작됐다. 그러니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권을 포기하는 것은 반역사적 행위다. 정치 혐오 혹은 무관심층은 "정치와 내 삶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가? 먹고살기도 바쁘다!"라고 항변한다. 차라리 나와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덜 불편하다. 


- 사회의 각 분야는 균일하게 발전하지 않는다.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도, 더디게 변하기도 심지어 퇴행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기업은 일류, 정치는 삼류"란 말이 생겼겠는가. 확실히 우리 정치는 대한민국의 현 위상과 동일선상에 있지 않다. 군부독재와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상 속도와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기형적 형태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정치 혐오는 확산되고 고착됐다.


- 현재 한국 정치권의 세력 구도는 '도서관 문 안팎'에서 갈렸다. 보수는 "산업화에 투신한 우리의 노력과 헌신을 한 줌의 운동권 출신들이 폄훼한다"라고 격분하거나 "과거의 이력을 팔아 현재와 미래의 권력을 챙기는 운동권이야말로 썩은 기득권"이라고 힐난한다. 도덕적 우월성과 이념의 선명성을 강조해 온 운동권 세력의 교훈질을 혐오하는 것이리라. 


- 군부독재 시절, 지금의 기성세대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최루탄이 쏟아지던 거리를 향해 도서관 밖으로 뛰쳐나갔거나 그 문 안쪽에 남았거나 해야 했다. 어느 선택이 옳았다고 할 수 없다. 두 가지 선택에 의해 우리의 현재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고 또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 그런데 우리는 정치적 신념, 세대, 성별 갈등의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다.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선거 기간 외에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신뢰는 실종된 지 오래다. 혐오와 저주만 난무한다. 토론은 사라지고 대화마저 단절된 채 독선과 아집의 정치가 판을 친다. 국회의원의 얼굴이 달라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화가 변해야 한다. 민심을 반영한 탄탄한 논리와 격조 있는 어조로 상대를 존중하며 진행되는 토론과 방담을 볼 수는 없는 것인가.       

ⓒ 스침

- 한 토론회에서 유력 일간지 논설위원을 지낸 보수논객이란 자(者)가 이런 발언을 했다.


"젊은이들이 망친, 젊은이들이 어지럽힌 나라 노인이 구한다. 젊은이들이 헝클어놓은 이거 노인들이 구한다는 호소를 해서 60대 이상의 투표율을 극적으로 높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딴에는 보수의 결집을 호소한다고 꺼낸 말일진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집 한 칸 마련의 꿈조차 꿀 수 없고, 종족보존의 본능마저 포기하게 만든 작금의 사태가 젊은이들 자신들의 탓이란 말인가.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없단 말인가. 도대체 그런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전직 언론인의 인식의 수준이란 게 고작 이 정도인가. 우리 국회에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20~30대와 이중부양으로 지친 40~50대의 고충을 대변하는 젊은 정치인들이 몇이나 포진하고 있는가. 무슨 힘과 권력으로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망쳤다는 것인가? 백 번 양보해 젊은이들이 세상을 망쳤다고 치자. 노인들은 어떻게 세상을 구하겠다는 얘긴가. 


- 어떤 사회든 진보와 보수라는 좌우의 날개로 작동된다. 한 논객이 진영을 대표하진 못한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한쪽 날개가 이리 훼손되었는가. 논리도 품격도 실종된 무가치한 억지와 질 낮은 선동이나 일삼는 자들은 조롱하고 싶지도 않다.    


- 정치가 거대담론을 담던 시대는 지났다. 정치는 더 이상 '독재' '민주' 등의 구호를 외피로 입고 있지 않다. 정치는 이제 우리네 일상의 어젠다를 담는다. 보다 나은 일상과 다음 세대를 위한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정치인을 선출해야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제목처럼 선거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우리에게 질문한다. 정치는 우리 모두의 일상을 지배한다.    

ⓒ 스침











이전 18화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