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통계를 보니, 세계적 미술관과 박물관의 수장품 중 5%만 전시되고 나머지는 빛을 못 본다고 하네. 큐레이터의 손끝에서 운명이 갈리는 예술품과 달리 ‘나’는 수장품인 동시에 큐레이터지. 평소에는 '나'란 수장고에 무얼 채울지 고민하고, 결정적 순간엔 무얼 보여줄지 큐레이팅을 하는 거야. 드라마틱하지 않은 일상은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실은 수집과 전시의 반복이란다.
관람객 수 기준 세계 6위 수준인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의 올해 예상 관람객 수가 500만 명을 돌파할 거라고 해. 당신이 기억하긴 어렵겠지만 국중박은 한동안, 해방 후 중앙청사로 쓰이다가 1996년 철거된 일제 조선총독부(중앙청사) 건물에 있었어. 세계적 명성의 미술관(박물관)들은 식민지에서 약탈한 제국들의 전리품을 전시하지. 전리품이랄 게 없는 우리 국립박물관이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인 건물에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어린 당신을 안고 주말에 그 앞을 지나, 경복궁을 드나들던 기억이 나네.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소반'이란 작은 밥상이자 독서대이고 제사에도 유용하게 쓰였던 생필품이었어. 조선의 양반문화에선 겸상을 꺼렸는지, 주로 독상을 차렸다네. 아, 여성들의 노동 강도가 얼마나 높았을까. 소반을 만드는 장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 명절을 앞두고 서울의 반가들은 그에게 소반 수십 개의 수리를 맡겼다고 해. 지금은 작고한 소반장 어른이 그때 보여준 책 한 권에 놀랐었어. 일본 학자인 저자는 한국의 좌식문화가 만들어낸 소반문화에 대한 분석과 나주반과 통영반, 해주반의 특성은 물론 제작 기법과 과정을 사진과 캡션으로 상세히 담았더라.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완벽한 책의 구성과 제책의 완성도에도 감탄했지. 약탈을 위한 과정이었다는 출판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 치밀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 오늘날, 우리 출판이 그런 분야에 주목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지는 아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