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이란 단어는 ‘보편성’이란 뜻을 가졌어. 사도신경에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라는 구절이 나오기도 하지. 딱딱한 철학이나 종교 얘길 하려는 건 아냐. 요새 나는, 보편적 사유를 하고 있는가, 상식에 준하는 판단력을 가졌는가를 자문하곤 해. 복잡다기한 세상엔 수많은 어젠다가 존재하지. 환경, 인권, 이데올로기 등등이 유기적 고리로 엮이면서 다양한 주장이 충돌해 인간은 어떤 정보가 입력되면, 본능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돼. 문제는 과도한 정보의 유입으로 사유의 시간은 짧아지고, 너무 잦은 판단을 해야 한다는 거야. 사유의 타이밍과 판단의 타이밍이 따로 있고, 당연하게 사유가 판단의 시간보다 길어야 하는데, 난 많은 순간 충분한 사유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어. 섣부른 판단으로 꼬인 실타래를 풀기가 어려웠고. 후회되는 대목 가운데 하나야.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 노파심을 갖는다지만, 웃긴 일이야. 인간이 진화해 왔음을 인정한다면, 젊은 세대를 우려하는 일은 난센스 아닌가? 차세대는 기성세대보다 평균값에서 우위에 있어. 젊음은 미숙할 뿐 퇴화는 아니거든. 세계가 요동치고 있어. 월드뉴스를 보기가 두려울 정도야. 늘 그래왔던 약육강식의 논리가 너무 노골적이야. 이면을 읽지 않아도 될 만큼 의도를 숨기지 않아. ‘체 게베라‘는 미국의 중남미 착취를 멈추기 위해 혁명가가 되었고, 39살에 죽은 이 아르헨티나의 청년은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어.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연설했던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청년 찰리 커크가 얼마 전 31살에 암살됐어. 전 세계 우익은 이 청년을 아이콘 삼아, 휴머니즘과 자유주의가 망가트린(?) 세상을 재정복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메카시즘이 열풍이 불었던 미국에서는 좌파척결의 바람이 불고 있지.
남의 일이 아니야. 당장 반공과 혐중을 외치는 한국의 청년들이 거리를 점거하고, 세를 불리고 있잖아. 전 세계 우익은, 또 우리는 왜 그러는 걸까? 그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유지돼온 1968년의 ‘68 혁명’이 내세운 평등과 성해방, 인권, 공동체주의 등이 자신들의 불행을 촉발했다고 믿는 거겠지. 불확실성은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해. 계층과 무관하게 무속에 의존하고, 정당에 사이비 종교, 극우기독교, 이단 세력이 대거 유입된 것도 수권의 가능성이 희박해진 ‘불확실성’에 기인하지. 인터넷 콘텐츠 소비를 하면서 내가 주의하는 것이 있어. 다디단 ‘알고리즘’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거지. 보편성을 잃고, 내게 불리한 정보나 근거를 무시하는 확증편향성을 갖기 싫어서야.
질서의 재편과 반동은 이데올로기, 체제, 사상만의 문제가 아니야. 유럽의 자본을 대표하던 영국과 프랑스가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지 모를 정도로 궁핍해졌어. 동남아의 사정은 더 참혹해. 네팔과 인도네시아 등에서 연일 과격한 시위 관련 속보가 쏟아져 나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혼란의 양상은 다르지만, 빈부격차로 인한 양극화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 보여. 오죽하면 교황이 “CEO라고 노동자의 600배를 번다”며 작심하고 비판하겠어? 저성장이 뉴노멀이 되고 불확실성이 증폭된 지금, 전 세대보다 진화했다고 믿는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거야.
특히 네팔은 무정부 상태로 치달았어. 솔직히 난 그곳의 젊은이라곤 셰르파 정도를 자유연상했었어. 최빈국에서 태어나, 가난에 허덕이던 네팔의 젊은이들은 SNS에 올라오는 특권층 자녀들의 온갖 사치를 보면서 좌절했을 거야. 정부가 소셜미디어 차단으로 그들의 눈마저 가리는 순간, 폭발했겠지. 부패한 권력층이 무능하게도 뇌관을 건드린 거야. 전 세계 Z세대는 자신들의 불행의 원인으로 ‘불법이민’ ‘이주노동자’ ‘권력층’ ‘불평등’ 등을 지목하고 있어. 유독 다른 경향을 보이는 나라도 있지. 하버드대의 어떤 교수는 동시다발적인 Z세대의 폭발을 분석하면서, 한국은 독특하게도 적대세력을 ‘여성‘으로 설정했다고 했다더군.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그런 경향이 있지.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왜, 여성을 혐오와 증오의 대상으로 삼을까? 왜 스스로가 차별을 받는다고 여길까? 남아선호 사상이 일시에 사라지고, 한 세대만에 남성기득권이 거세되면서 생긴 부작용인가? 한국의 젊은이, 그중에서도 남성들은 더 이상 이념과 종교에 심취하지 않고 오랜 유교적 신념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어. 장남의 부담, 제사에 대한 의무 등으로부터 벗어난 그들에게 건강한 어젠다가 형성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 한국의 인문학은 너무 늦지 않게 이 점을 논의해야 해. 노파심이 드느냐고? 아니, 진화한 젊은 세대가 진통을 겪고 있지만 보편과 상식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리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