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살면 갈매기는 기본값이고, 작은 산 덕분에 여러 종류의 새들을 자주 보게 돼. 산책길 어디선가 툭툭 튀어나오는 녀석들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해. 게을러서이긴 하지만 굳이 이름과 습성을 찾아보진 않아. 꼭 알아야 더 반갑거나 예쁜 건 아니잖아? 웃긴 건 낚시를 싫어하기도, 해 본 적도 없어서 그렇겠지만 섬사람이 정작 물고기는 마트 진열대에서만 본다는 거야. 그것도 노르웨이와 칠레, 나는 가 본 적 없는 저 먼바다에서 온 놈들을 말이지.
며칠 전 카메라를 들고 선착장엘 갔다가 살면서 가장 가까이서 갈매기 한 마리와 오랜 시간을 같이 있었어. 사람에 익숙해서인지, 아직 어려 두려움을 몰라서인지 불과 1m 거리를 두고도 무심하더라고. 그 시간이 얼마나 안온하던지 귀한 경험이었어. 난 사람이, 번잡한 세상사가 눈꼴시면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곤 해. 그러다 몰랐던 어떤 새를 알게 되었어. 착지하다가 백사장에 고꾸라지고, 뒷바람을 받지 못하면 이륙도 쉽지 않은 ‘바보새’가 있다더군.
펼친 양 날개의 길이, 윙스팬이 무려 3.5m이지만 세상 어설픈 새, 앨버트로스는 사람이 다가와 자기 몸을 만져도 피하지 않는다고 해. 포구에서 만난 갈매기가 앨버트로스와 유전자를 공유했나? 간혹 동물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 마치 차원이 다른 존재임을 자각한 ‘깨달은 자’ 같아. 앨버트로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날개를 가졌다는 이름값을 하느라 비행거리도 상상을 초월하더라. 위성 추적으로 따라갔더니, 이 친구들이 46일 동안 지구 둘레의 절반인 20,000km를 비행했다네. 50년 이상을 살면서 일생 동안 800만 km, 지구를 200바퀴나 돈다니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야.
장거리 수평 비행에 최적화된 이 거대한 새에게 내가 놀란 건, 몸집과 놀라운 비행거리가 아니야. 이 친구의 비행 방식이지. 마치 서퍼가 파도를 기다리듯 절벽 위에서 드센 바람을 기다렸다가 몸을 던지는 앨버트로스는 날갯짓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해. 6일 동안 날갯짓을 하지 않고 수 천 km를 날았다는 추적 보고도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층을 이용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목적지를 향하는 거지.
앨버트로스는 잔바람 따위엔 방향을 수정하지 않고, 큰 바람에 몸을 맡겨 가늠할 수 없는 긴 여정을 떠난다고 해. 만약 그 장면을 따라가며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사람도 그렇더라. 나처럼 잔망스러운 사람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선이 굵은 사람들이 있어. 결코 일희일비하지 않고 먼 곳을 응시하며,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길을 가는 사람을 더러, 아주 더러이긴 하지만 만날 때가 있거든.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고 좌절하냐고? 아니,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궁금해하지. 호기심을 드러내고 묻기를 즐기는 오랜 습벽 때문인가 봐.
아비라면 아들에게 최소한 너는 이리 살아라, 혹은 저랬으면 좋겠다는 식의 말을 남겨야 하지 않냐,란 말을 들을 때가 있어. 글쎄, 과연 그런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아비가 몇이나 있을까? 아니 아비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나는 못나서 그런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해. 자신은 그렇게 날아 본 적 없으면서 자식에게 앨버트로스처럼 비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
나는 아버지와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헤어졌어. 이제는 세상에 없는 상대가 있는 이야기라 나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할 순 없어. 불화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만 존재할 뿐. 당신과 나 사이에도 입에 올리지 않은 뒤틀린 감정과 결코 풀리지 않을 오해가 있을 거야. 가족이란 워낙 지독하거나 잔인한 인연이니까. 그게 뭐가 됐든, 나와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 당신과 나도 화해하지 못하고 헤어지거든 우리 너무 아파하진 말자. 수없이 반복됐고 반복될 클래식한 과정이잖니.
잇몸은 들뜨고 미열이 올라오는 걸 보니, 며칠 또 아프려나 봐. 해진 뒤 바람 차더라. 가방에 가벼운 점퍼 넣고 다니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