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VS 미국 공립 초등학교 급식]
아이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무상급식의 혜택을 2년간 누렸다.
학교마다 배치된 영양교사 덕분에 집에서보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실제로 아이가 모든 반찬을 골고루 먹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어쨌든 점심 걱정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미국에 와서 도시락 싸는 것에 지쳐갈 무렵, 공립 초등학교 점심 급식은 어떤 수준인지 궁금했다.
매스컴을 통해서 알게 된 건 한국이 최고 수준이라서 미국과 비교할 수 없고, 심지어 무상급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 내가 마주하는 현실과 매스컴에서 접한 얘기는 좀 다를 수 있지만 이것만큼은 정말 100% 일치했다.
"무상으로 제공해도 먹기 싫고, 돈 주고 사 먹기는 더 난감한 점심"
이게 그때 내가 내린 미국 초등학교의 급식 수준이다.
[미국 급식, 대체 어떻길래?]
먼저 설명이 필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곳이 수준(?)일 것 같다.
학비를 많이 내고 다니는 사립초등학교의 경우 당연히 이보다 잘 나올 것이고, 주나 카운티의 재정 보조 상황도 많이 다르다고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사는 도시 내의 초등학교에서도 무상급식과 유료급식을 함께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 때 무상급식이 전면 시행되었다가 빈곤율이 높은 초등학교는 아직도 무상급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역시 예외가 많은 나라다.
우리는 버지니아주의 대학 도시에 산다.
누가 물어볼 때는 한국으로 따지면 청주 느낌의 대학 중심 도시라고 표현하고 있다.
청주 인구가 약 85만 명 정도이고, 내가 사는 곳은 5만 명이 안되니 훨씬 작지만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거의 80% 이상이 대학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어 다른 도시에 비하면 사는 형편들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편이고 도시 자체가 정적이고 조용한 느낌이다.
스타벅스에서 노트북 놓고 이동할 수 있을 정도라고 표현하면 분위기가 설명이 될까?
이 도시에서도 한국인들은 특정 지역에 모여 사는데, 이건 공립 초등학교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도 Great School 평점 7~8점 정도의 학교에 다니고 있다.
엄청 좋지는 않지만 괜찮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런 괜찮은 초등학교에서 제공하는 급식도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형편없다.
3대 영양소를 고려하지 않은 건 물론, 대부분 인스턴트 위주의 고칼로리 음식들이다.
이런 걸 내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나?
[미국 초등학교 급식 톺아보기 : 먹는 방법]
아이들은 매일 아침 런치 카운트라고 해서 급식을 먹을 사람 수를 세고, 메인 요리를 선택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카페테리아에서 사이드 요리와 음료수를 선택하고, 후식은 따로 구매한다고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각 학년별로 시간차를 두고 카페테리아로 가고, 급식대 앞에 줄을 서서 메뉴를 말하고 본인 계정 번호를 말한다.
점심시간은 약 20분 정도로 짧아서 대화를 나눌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도시락을 싸주는 날에는 과일이나 음료수를 다 먹지 못하고 오는 날이 있다.
자리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보통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앉는다고.
아이 학교 카페테리아는 8명씩 테이블에 앉게 하는데 이건 학교마다 완전히 다른 것 같다.
아이들은 물이라도 먹고자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으면 손을 들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본인의 음식을 나눠먹으면 안 되지만 아이들끼리는 종종 바꿔먹고 나눠먹는다고 했다.
아이 반 20명 학생 중 5~10명은 도시락을 싸 오지만 나머지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급식을 사 먹는다.
급식판이 있어서 보통 거기에 배식을 받지만, 떨어지면 종이 도시락에 배식을 받을 때도 있다.
[미국 초등학교 급식 톺아보기 : 메뉴]
급식 메뉴는 이해를 돕기 위해 작년에 받았던 자료를 찾아봤다.
(아이가 올해도 똑같다고 했다.)
급식 메뉴
메인과 사이드 요리에는 어떤 메뉴가 있는지 볼까?
메인 : 맥 앤 치즈, 타코샐러드, 나초, 치킨샐러드, 햄버거, 피자, 피넛버터 젤리 샌드위치, 스틱 빵, 요구르트, 콘도그 등
사이드 : 콘샐러드, 채소(브로콜리, 미니당근, 콩, 오이), 프렌치프라이, 비스킷, 과일(사과) 등
음료 : 사과주스, 흰 우유, 초콜릿 우유(다행히 탄산음료가 없다!)
후식 : 소포장 과자, 아이스크림
사실 메인과 사이드 메뉴의 경계가 모호하긴 하다.
한국식 '한 끼'의 개념이 도저히 메인 메뉴로는 담기 힘들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피넛버터 젤리 샌드위치(식빵에 땅콩버터와 잼 바른 것) + 프렌치프라이 + Lay's 소포장 과자'를 선택한 날은 단백질은 1도 없고 정제 탄수화물 폭탄의 식사를 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아이 말에 의하면 채소가 거의 매번 나오지만 집에서 먹는 것만큼 먹음직스럽게 제공되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미니당근은 거의 모든 학생이 먹는단다.)
한 번은 아이가 미니당근을 먹지 않고 가져왔는데, 손바닥만 한 포장의 당근이어서 놀랐고 집에서 먹는 것만큼 신선하지 않은 것 같아서 실망스러웠다.
Mini Carrots 여기에서 제일 이해가 안 되는 음식은 맥 앤 치즈라는 음식인데, 내가 먹었을 때는 웩 소리가 나왔지만 미국 아이들은 매우 좋아하는 기본 메뉴이며 심지어 우리 아이도 좋단다.
Mac & Cheese
그나마 미셸 오바마 여사가 급식 개선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서 어느 정도 나아졌다고 들었는데, 완벽한 영양 균형의 식단을 이미 본 한국인의 눈에서는 아쉬울 뿐이다.
[미국 초등학교 급식 톺아보기 : 급식비]
급식비는 후식 선택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우리 아이의 경우 약 4~5달러가 드는 것 같다.
현재 환율인 1,335원으로 계산하면 약 5~6천 원, 1,000원으로 해도 약 4~5천 원이다.
하지만 미국 맥도널드 햄버거 가격을 감안할 때 비싼 편은 아니다.
급식비는 아이 고유계정에 부모가 충전한다.
카페테리아에서 줄을 서서 급식을 받고 마지막 Station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고유번호를 말해주면 거기에서 차감하는 방식이다.
혹여 부모가 깜빡해서 돈을 충전하지 않더라도 일단 결제가 되고 계정에 (-)로 뜬다.
단, 이건 후식 제외이다.
그러니까 만일 부모가 충전을 못했더라도 메인+사이드+음료는 먹을 수 있지만 후식은 못 먹는다.
아이 학교에서는 시행하지 않는 정책이지만 어떤 학교에서는 식권이나 현금으로도 지불한다고 한다.
[그래서 급식을 안 먹이고 도시락을 매일 싸줄까?]
나도 매일 도시락을 싸주고 싶었다.
미국에 온 한국 엄마들의 형형색색 도시락이 부담스러웠지만, 또 그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보온 도시락을 새로 사 오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해갈수록 "엄마, 내일 급식 먹으면 안 돼?"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냄새가 나서 창피해서 그런가 싶어서 물었지만 그건 아니라고 했다.
아마도 영어를 말하는데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니 다른 아이들처럼 먹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먹더니 급기야 계속 먹겠다고 했고, 나는 안된다고 맞섰다.
결국 남편의 중재로 아이와 협상을 했다.
본인 입맛에 맞는 메뉴 나오는 날, 일주일에 두 번 급식을 사 먹는 걸로 말이다.
처음에는 한국식 도시락이 신기했던 아이 친구들도 이제 서서히 적응을 해가고 있다.
김밥, 삼각김밥, 불고기 볶음밥, 갈비, 멸치, 김치, 김......
등교 첫 날 도시락에 넣어줬던 메모
도시락 메뉴는 한동안 한국 음식만 고수했다.
아이도 도시락을 싸는 날 만큼은 한국 음식임을 드러내는 메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매번 같은 걸 싸주기가 힘들어 결국 미국식 메뉴인 빵과 샌드위치를 넣기 시작했다.
요즘은 미국 아이들이 많이 싸 온다는 Lunchables에까지 눈이 돌아가 슬쩍 들어보기도 한다.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점심 메뉴였는데 말이다.
Lunchables, 과자다...... 아이 친구들이 많이 가져온다는 시판 점심 : jelly sandwich, hotpockets, mini muffins 급식, 지금도 여전히 돈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만 여기에 살다 보니 눈높이가 낮아졌다.
급식 사 먹는 날은 집에서라도 잘 먹이자, 그럼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