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눈길, 첫 발자국

by 강민경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걸으며 ‘이렇게 첫 발자국을 남긴 건 오랜만이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눈, 비 내리는 날엔 나가지 않으려는 성향도 있거니와 길이 미끄러운 날엔 나가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을 습관처럼 둔 탓이었습니다. 팔다리에 힘이 없던 저는 눈이 막 내려 미끄러운 길을 걷는 일이 수영으로 물길을 헤치는 것보다 더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눈이 이미 누군가에게 밟혔거나, 소금을 뿌리면서 녹았을 때 밖에 나가곤 했습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싶으면 아예 일정을 취소했고요. 그러니 이렇게 깨끗한 눈길을 밟는 건 너무나 오랜만인 것입니다. 눈이 펑펑 내리면서 안경 속으로 눈꽃이 번지고, 앞의 풍경도 번져 보이지만 아주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두 다리는 튼튼해졌고, 넘어지더라도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감각이 민첩해졌으니 나는 더 이상 넘어져서 '다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걷는 내내 하지 않아도 됩니다. 눈앞을 가리는 눈발을 보며 ‘드디어 첫눈을 맞았구나’ 기뻐할 수도 있고요.



누구도 밟지 않은 눈길을 내가 처음 디뎠을 때의 설렘이 단 몇 초만이라도 순수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이 나는 기뻐서 다리가 아닌 나무를 봅니다. 비틀거리지 않는 다리는 잠깐 눈이 닿지 않아도 끄떡없으니, 고개를 들어 내리는 눈을 한참 맞고 있는 나무를 보는 것입니다. 눈이 고봉으로 쌓여도 부러질 일 없는 나무를 보며 ‘다짐’ 같은 걸 하지 않아도 되는 고요한 걸음이 어쩌면 평화로운 일상같이 느껴져서, 그것이 당연한 일상으로 느껴져서 눈을 맞으며 한참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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