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살 수도, 이대로 죽을 수도 없을 때 불안이 찾아온다. 불안은 제 발로 걸어 들어오나, 영향을 미치는 주인의 허락으로 찾아오는 건 아니다. 그건 불가항력적이다. 제 몸의 주인을 지배하러 오는 일이니까. 새해를 앞두고 무한한 희망을 품지 않게 된 건 몇 년 되었다. 주위의 같은 나이대에 비해서는 늦은 편이지.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나면 그때부터 불안이 희망을 이기는 경우의 수가 생긴다. 새해를 앞두고도 마찬가지다. 새해엔 과거의 과오를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주입되지만, 그 희망은 허깨비일 수도 있다는 걸 아는 나이의 어른에게는 희망만큼이나 불안도 함께 안는다. 그게 어른이라는 듯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불안은 어른이라고 해서 의연하게 견뎌낼 성질의 것은 아니다. 불안은 우울을 끌어오고, 우울은 일상을 갉아먹으며 무기력을 불러온다. 희망에 기대어 찾아온 불안이라 희망으로 우울을 떨쳐내기란 어렵다.
무기력에 빠진 일상은 단조롭다. 일어나기 싫어서 누워있고, 배가 고플 때 일어나 밥통에서 밥을 퍼내어 있는 반찬과 있는 국으로 우걱우걱 식사를 한다. 책상 앞에 앉아있어도 하는 건 없다. 해야 할 게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무기력이 생각을 먹어버려서 나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 나가고 싶지 않아서 씻지 않는다. 전기장판에 누워 몸을 녹이는 일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누워있기만 한다. 시계 초침은 내 무기력과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먹은 건 많고 움직이진 않아서 무거운 몸이 무기력이 잠시 힘을 잃는 순간 신호를 보낸다. "수영이라도 가라"
시간과 밥만 축내는 주제에 돈 주고 끊은 운동을 가지 않기란 양심에 찔리니 수영가방에 샤워 세면도구와 수영복, 수모, 수경을 욱여넣는다. 대충 삶을 욱여넣는 일 같다는 생각에 도로 힘이 빠지지만, 돈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돈까지 배신하면 내 정신이 쓰레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면, 몸이 움직인다. 추워 죽고 싶진 않아서 두툼한 기모바지에 니트 양말을 신고 무릎 밑까지 오는 긴 패딩 지퍼를 올린 후 재빠르게 신발을 신고 나간다. 찬바람을 맞으니 전기장판에 흐물거렸던 몸이 단단해지는 기분이 든다. 빠른 걸음으로 수영장으로 향하니 몸이 움직이는 만큼 뇌가 움직인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 뇌도 생각을 멈추었었나봐. 한 발자국 뗄 때마다 카드 결제대금에 놀란 가슴과 사업자 대출을 해야 한다는 압박과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미미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절망이 떨어져나간다. 떨어져나간 곳에는 '날 찾는 곳이 없으면 날 찾도록 해줘야지' '스팸 넣은 라면 먹고 싶네' '매운 엽떡 먹었는데 수영하다가 불 뿜는 거 아냐?' 같은 쓰잘데기 없어보이는 희망이 박힌다. 절망의 기운을 겨우내 밀어내던 쓰잘데기 없는 희망이 가까워지면 불안은 그만큼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