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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Mar 19. 2024

08 내가 죽으면, 옷장에 있는 돈을 꺼내.

죽음을 대하는 방법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를 보며 저 문장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은 죽음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무서워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플 때 알게 모르게 두려운 감정이 든다.

아픔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죽음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곳저곳 아픈 노인들은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족들 모르게 영정사진을 찍고 왔다.

물론 나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작은 프로필 사진이 문갑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할머니는 DNR을 작성하고 왔다.

DNR은 심폐소생술 거부 서약서이다.

갈 때 되면 운명에 맞게 떠나고 싶다고 했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위급한 상황에서 누군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면,

나는 할머니가 작성했던 DNR을 알리고 심폐소생을 중단시켜야 할까?


할머니가 DNR을 작성한 사실은 할아버지와 나만 알고 있다.

별로 상상하고 싶진 않지만,

할머니의 의견을 그대로 따라야 할지

그저 할머니를 더 오래 보고 싶으니 DNR을 비밀로 해야 할지..

스스로와의 갈등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고혈압, 기립성저혈압, 척추, 무릎, 손가락 관절, 안구 등

할머니는 성한 곳이 없다.


그렇게 아플 때마다 혼잣말인 듯, 나에게 말하는 듯 애매하게 한마디를 한다.

“그냥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왜 그런 소리를 해”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아플 때마다 할머니는 항상 말한다.

그냥 자다가 편하게 가고 싶다고.



며칠 전엔 할머니가 내 방에 들어왔다.

혈압 조절이 안 돼서 어지럽다고 하더니 이어 한 마디를 했다.

“내가 죽으면 여기 옷장 열어봐”


“왜 또 그런 얘길 해”


“봐봐 여기 들어보면 있어. 이거 꺼내서 너네 아빠 줘.

아무래도 내가 오래 못 살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하기엔 할머니는 아픈 곳이 너무 많았고,

싫다고 말하기엔 자식에게 남은 돈을 주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을 거절하기 싫었다.


이런 이야기를 너무 자주 들어서 일까?

나는 가끔 주변 사람이 죽는 상상을 한다.


내 상상 속에서는 할머니가 죽기도 하고,

아빠가 죽기도 하고,

내가 죽기도 하고,

남자친구가 죽기도 하고,

절친이 죽기도 한다.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게

강박증 증상 중 하나라고 하던데 맞는 것 같긴 하다.


밤만 되면 할머니 없이 살아가야 할 나에 대해,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 대한 상상을 한다.

그래서 거의 365일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런 내가 불쌍해 가끔은 혼자 숨죽여 울기도 하고,

행복했던 기억이 휘발될까 그간의 기억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서로가 준 상처를 용서하는 상상도 하고,

죽음 이후의 유산 논쟁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일평생을 함께 한 사람을 떠나보내게 된다면,

그 감정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저 계속 행복하고 싶고

이별이 싫다.



여덟 번째 情(정)

20살이 되면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

요즘 드는 생각이지만, 20대도 여전히 미성숙하고 어른이 아닌 느낌이 든다.

나는 여전히 초등학생 같다.

그래서 장례식장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평생 모르고 싶다.


나는 응급실을 더 이상 가고 싶지도 않고,

주변 사람이 가볍게 아프다고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다.


할머니는 나에게 항상 아프다고 했고 죽고 싶다고 했지만,

이번 에피소드의 여덟 번째 정은

할머니가 했던 부정적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모두가 무병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을 드린다.


세상엔 재밌는 게 많으니까.


여덟 번째 情(정)

無病長壽(무병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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