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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요한 Mar 09. 2024

후보생 마지막 훈련

4학년 선배가 되다

  4학년 선배가 되니 학군단 후보생 생활이 더 재밌어졌다. 동기들끼리 긴장하며 집합 할 일도 없었고, 학교를 돌아다니면 후배들이 씩씩하게 경례를 해오니 뭔가 내가 높은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지금 생각하면 참 별거 아닌데ㅋㅋ)


 학교 과 생활엔 별로 관심이 없어 제대로 된 선후배 관계라는 걸 형성해본 적이 없었던 내가, 나를 깍듯하게 선배로 인정해주는 후배들을 만나게 되니 정말 새로운 느낌이었다. 후배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다짐했던 대로, 단체로 있을 땐 무섭게 개인으로 만날 땐 자상하게 대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장교 후보생이라 한들, 현역도 아닌 대학생들끼리 지내는데 혼낼만한 일이 뭐가 있었을까 의문이다. 해봐야 군 예절에 관해 교육하는 게 거의 전부였던 것 같다. 3학년 때는 선배들한테 혼나고 주눅 들어있던 동기들이, 엄격 근엄 진지한 모습으로 후배들을 혼내는 걸 보면 참 낯설기도 하였다. 어찌 됐든 나도 선배가 되었으니 더 멋진 모습이 되고자 노력하였고, 후배들한테는 나름 인기 있는 선배가 되었다.(추측이 아니라 인기 투표 결과를 얘기하는 거^^)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모범이 되고 밑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주면 자연스럽게 팔로워가 생기는 줄 알았다.


4학년 하계입영훈련

 마지막 훈련인 4학년 하계입영훈련은 대한민국 내 전국의 대학교가 섞여서 훈련을 받았다. 그 전까지의 훈련들은 충남 권역의 학교끼리 묶어서 했기 때문에 생활관 동기들을 처음 만나더라도 몇은 얼굴을 알고 있거나 대부분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였다. 하지만 이번 훈련은 수도권 학교부터 시작해 강원, 충청, 경상, 전라 전국의 학교가 전부 흩어져 생활관 편성이 되었다.

 처음 생활관에 들어가 짐을 풀 땐, 모두가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번 훈련은 임관 전 마지막 훈련이었기 때문 상대평가 결과가 부진하면 재평가를 봐야했고, 재평가에서도 낙오하면 겨울에 한 번 더 훈련을 들어 가야하는 엄청난 리스크가 있었기 때문에 평가에 있어서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평가의 80% 정도가 생활관끼리 묶어서 팀별로 점수를 부여했기에, 우리는 더욱 단합하여야 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차츰 말을 섞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가까워졌다. 10명 중 나를 포함해 3명의 후보생을 제외 하고는 전부 이름있는 대학의 후보생들이었다. 대학의 수준으로 훈련에 임하는 수준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혹여 내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거나 평가에 피해를 끼쳤을 때 그 원인을 지방대생이라는 이유로 보며 무시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절대로 무시 받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훈련에 최선을 다해 임했다.


 개인평가 과목들은 어떻게든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분대공격이라는 단체평가 과목을 하면서부터 내가 집중을 잘 못하는 탓인지, 주어진 상황에 지휘하고 대처하는 것들에 대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잘하는 인원들은 잘만 하는 것 같은데, 미리 공부를 많이 한건지 아니면 머리가 좋은 건지 궁금했다. 어느새 나는 주어진 상황을 파악하고 이끌어가는 사람이 아닌, 주어진 상황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상황속에서도 나름의 최선은 다했으나, 내가 지휘했던 상황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래도 내가 눈에 띄게 피해를 주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눈에 띄게 부족한 동기가 한 명 있었기에 나의 부족함은 조용히 묻어갈 수 있었다.


 다음 훈련인 분대방어라는 단체평가 과목을 하면서부터, 절대 상황에 끌려다니지 말자는 다짐으로 임했다. 적군이 아군 진지로 침투 해오는 10개 정도의 상황별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지휘하는 실습이었다. 상황에 끌려다니지 말자는 다짐을 했건만, 나는 다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훈련은 야간까지 진행하였고, 다음날 아침 해가 뜨면 실습이 아닌 평가를 실시한다고 하였다. 

 새벽 1시쯤 야간훈련을 마치고, 우리는 숙소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야외 교장에서 해가 뜰 때까지 쉬는 시간을 가졌다. 아침 해가 뜨면 바로 평가가 있었기에 평가를 위한 토의를 하다가 다들 피곤했는지 하나 둘 잠들기 시작했다. 캄캄한 산골 속 홀로 환하게 켜져있는 교장 안에서 편하게 눕지도 못하고 총을 끌어안고 벽에 기대어 잠든 동기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해가 뜨면 보게 될 평가 때문인지 잠이 오질 않았다. 전투복 주머니 안에 있는 수첩과 볼펜을 꺼내 실습 때 내가 끌려다녔던 상황을 처음부터 천천히 기억해 기록 해보았다. 이럴 땐 이렇게 지휘하면 되겠구나, 교관님은 이런 상황을 부여하겠구나 라는 것이 그림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들은 교범을 참고했고, 10여개 상황에서의 지휘 멘트를 모두 외우기로 결심했다. 나처럼 다 외우지 않아도 주어진 상황에 곧 잘 지휘하는 동기들도 있었지만, 나는 머리가 좋지 않은 만큼 몇배로 노력을 해야한다 생각하며 해가 뜰 때까지 달달 외웠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숨도 자지 않았는데 해가 뜰 시간이 가까울 수록 가슴에 불이 번지며 힘이 솟았다. 대대원들을 비롯한 내 팀원들은 전부 다 잠에 들어 있었고, 기상 시간이 되자마자 대대원들 중 내가 제일 빠르게 팀원들을 깨웠다. 난 이미 위장을 마친 상태였으며, 동기들에게 빨리 위장부터 하라고 얘기했다. 그때 나의 열정을 알아봤는지, 어느 한 동기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멋있다 요한아'라고 얘기 해주었다.


 평가장에 들어가는 길에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칼을 갈고 있었다. 오늘 나는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온 힘을 다 할 것이며 전시상황처럼 평가에 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어지는 상황별로 한 명씩 돌아가며 지휘하기 시작했고, 내 차례가 왔다. 이미 다 외워놓은 상황이었다. 앞서는 마음을 최대한 억누르며 또박또박 크게 말하며 지휘했다. 내 차례가 무사히 지나갔고, 다른 동기들이 지휘를 할 때 나는 전투요원으로서 그들의 지휘에 최대한 크게 복창했다.

 적군이 우리 진지 앞까지 다다른 상황, 백병전을 준비하는 상황이었다. 동기가 '전 인원 착검!'이라고 지휘했을 때 나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싸울 사람 처럼 '착검!!!!!'하며 소리를 질렀다.


 평가가 끝나고 동기들끼리 모이자마자 한 동기가 웃으면서 '야 마지막 쯤에 죽일듯이 착검 소리 지른 애 누구야'라고 하였고, 다들 깔깔 웃었지만 그 소리로 인해 훈련에 몰입이 되었다고 하는 동기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날 얘기하는 줄 몰라 같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모든 평가가 종료되고 복귀하는 길이었다. 피로가 아닌, 말로 표현 못할 희열감이 온 몸을 덮었다. 생각해보니 그 훈련이 후보생 과정 중 제일 마지막 훈련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전 훈련들 때처럼 체력의 한계로 허우적대지도 않았고, 무지함이나 수동적인 태도로 인해 남들에게 끌려다니지도 않았다. 내 성장과 발전을 몸소 느끼며, 그동안의 훈련들을 모두 잘 마쳤다는 보람이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긴장이 풀리자 입에서 단내가 났고, 해맑게 웃으며 동기들과 수다를 떨면서 복귀했다. 이 정신이면 자대에 가서도 부하들을 멋있게 이끌 수 있을 것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싸워 이길 수 있는 멋진 장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평가 결과를 받았는데, 10개 정도의 상황 과제 중 내가 지휘 했던 상황 단 한 개만이 A였고, 그 외는 다 B와 C였다. 우리 팀은 다른 팀들에 비해 전체 성적이 낮은 편이었고 우리 팀은 재평가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행히 나를 포함한 2명만이 개인평가 점수가 높아 가까스로 재평가를 면피했다. 비록 열심히 한만큼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하였지만,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값진 경험으로 보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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