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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요한 Mar 06. 2024

나는 2%인가? 2%부족한 사람인가?

사격과의 싸움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동계 훈련이었다. 추운 겨울과 훈련을 이겨내면 이제 선배들은 소위로 임관해 야전으로 나가고, 새로운 후배들을 맞아 우리들의 세상을 펼칠 차례였다.

 동계훈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격과의 싸움이었다. 나는 직전 훈련 때 20발 중 13발을 명중한 이력이 있기에 사격에 자신감이 없었다. 이번 훈련 때는 18발 이상을 명중해야 특등사수라는 호칭을 얻고 특급전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에, 이번엔 꼭 특등사수가 되어 특급전사 시험을 보고 싶었다.


 다같이 모여 무릎쏴, 엎드려쏴 자세를 번갈아가는 PRI(피나고 알이배고 이갈리는 훈련?)를 반복한 뒤 사격장에 들어간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2차 사격까지 있었고 기준치까지 통과하지 못한 후보생들은 계속 남아 PRI를 하며 합격할 때 까지 사격을 했다.

 나는 1차는 물론 2차까지 탈락했다. 아무리 가늠자 구멍에 있는 표적을 정확히 바라보고 격발을 해도 넘어가지 않는 표적에 화가 났다. 긴장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팔이 흔들리는 걸까? 호흡이 불안정해서 흔들리는 것일까?  아니면 영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탓에 명중하지 않는 것일까?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또 고민하며 PRI를 반복 했음에도 탈락이었다.

 2차 사격 이후 추가로 사격하는 결과들은 아무리 좋아도 기록으로 쳐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욱 낙심했고, 사격에 합격한 인원들은 먼저 숙소로 복귀하였고 사격을 못하는 인원들만 모여 있으니 자신감은 더욱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나이가 지긋하신 교관님이 우리 사격 초보자들을 위한 특강을 해준다며 천막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천막 안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왔던 동기들의 모습은 모두 사기와 자신감을 잃은 모습이었다. 어느 동기가 얘기하길 '이게 뭐야 완전 패잔병 모임이잖아'

 그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고, 앞날이 더 많은 우리인데 무슨 사격 하나로 패잔병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재사격 결과는 기록으로 인정해주지 않지만, 나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이번엔 반드시 특등사수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격 전 대기열에서 나는 '이번엔 꼭 다 맞춘다'라고 혼잣말을 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기가 곁눈질로 보며 '에이 지금까지 불합격이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잘하냐'라는 말을 하였다. 나는 그 말에 더욱 오기가 생겼고 반드시 모든 표적을 뚫어버리리라는 다짐으로 사격장에 들어갔다.



 표적이 올라온다. 표적이 올라와있는 시간은 길지 않기 때문, 재빨리 자세를 잡아 조준할 시간을 벌어야한다. 재빨리 자세를 잡느라 가빠진 호흡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작은 심호흡을 한 후 숨을 참는다. 표적에 온 신경을 집중한 뒤, 천천히 숨을 뱉으며 방아쇠를 당긴다. 방아쇠를 당길 때는 오른손 검지의 힘을 최대한으로 빼고 당긴다. 방아쇠를 세게 당긴다고 탄이 세게 나가는 것이 아니다. 오직 목표를 향하고 있는 총구가 흔들리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기 위해 방아쇠를 가볍게 잡아 당기는 것이다. 

 총 20발 중 18발 이상을 명중해야 특등사수다. 두 발 놓쳤다. 앞으로 다섯발 정도를 남기고 두 발을 놓쳤기 때문에 그 남은 다섯발을 모두 명중해야만 특등사수의 범주에 들 수 있다. 나는 엄청나게 빨리 뛰는 심장을 온몸으로 느꼈고, 내가 긴장했다는 사실을 외면하며 오직 표적에만 초점을 맞추고 모든 집중을 쏟아야했다. 눈도 쉬지 않고 뜨고 있으니 표적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럴때마다 눈을 깜빡이며 다시 표적을 조준하였고 호흡을 참으며 격발했다. 마지막 한 발을 남기고 간절한 마음으로 표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온몸에 힘을 빼고 호흡에 집중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명중했다. 사격이 끝나고 나서야 화약 냄새가 서서히 느껴졌고, 안전검사 후에 달콤한 결과가 들려왔다. '00번 사수 18발'

 나는 이때를 기점으로, 전역할 때까지 단 한 번도 특등사수를 놓친 적이 없다. 사격은 내가 나를 믿고 내가 들고 있는 총기를 믿을 때, 더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되었다.


나는 2%인가? 2%부족한 사람인가?

 분명 2차 사격 이후 재사격 결과는 기록으로 쳐주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이 군대는 지침을 변경하는 것을 정말로 좋아한다. 물론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경되어 재사격 결과를 기록으로 쳐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덕분에 특등사수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고, 특급전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특급전사는 특등사수들을 대상으로 체력평가를 보고 전 종목 특급이 나오면,  학기 중 단복에 '특급전사'라는 뱃지를 차고 다닐 수 있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별 거 아니지만, 그 뱃지를 달고 있는 사람은 당시 한 학교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정도였기 때문에 더욱 그 뱃지를 거머쥐고 싶었다.


 100명이 넘는 대대원 중, 약 20명이 넘는 특등사수가 특급전사 시험을 보러 왔다.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3km오래달리기 순으로 시험을 보았다. 20명이 넘는 인원들의 체력을 측정해주기 위해 당연히 조교(병사)들이 올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대위, 소령이신 교관분들이 10명 정도 측정관으로 오셨다. 평소보다 심하게 정자세로 측정을 보았기 때문에, 평소 특급이라던 후보생들도 개수를 채우지 못하고 탈락했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측정이 끝나자 20명이 훌쩍 넘던 후보생들 중 단 4명의 후보생만이 살아 남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나는 비로소 마지막 관문인 3km 달리기 트랙에 입장할 수 있었다. 내 몸이 무거운 탓인지, 의지가 앞선 탓인지 가빠오는 숨에 비해 나의 속도는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 그래도 몸의 고통을 느끼기보다 한 발 한 발 더 뻗는 것에 힘을 쏟았다.

 어느새 도착점이 눈 앞에 보였고, 도착점에서 남은 초를 세고 있는 교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10! 9! 8! 7!....' 당장 전력질주를 해야만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난 이미 지쳐있을 대로 지쳐있었다. 안간힘을 써보려 해도 기어를 1단에 두고 악셀을 밟는 트럭처럼 도무지 치고나가질 못했다. 도착점을 통과하고 시간을 보니 12분 40초였다. 특급인 기준치에 10초를 넘겨 통과한 것이다.


 허탈했다. 나는 고작 이런 결말을 위해 지금껏 노력 해왔던 것인가, 여기까지 온 나는 2%의 사람일까 아니면 2%의 노력이 부족한 사람일까.. 이때를 기점으로 나는 학군단 생활을 하며 좌절하는 일들을 더 자주 겪었고, 점점 군생활에 마음이 멀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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