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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eping Feb 22. 2024

일그러진 책임, 오만

내가 키웠던 선인장의 이름은 'Peeping'이었다. '엿보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그 이름처럼 나와 함께 같은 공간에 존재했다. 그의 존재 덕분에 나는 늘 바라봐지는 대상이 되었다. 그의 관조는 나의 외로운 방에서는 꽤나 아늑함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였다. 내게 있어 외롭고 고독한 감정은 즐길 수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는 내가 어두운 방 속에 존재함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를 증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은 사물로써, 혹은 재물로써 자신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의 생명활동은 나를 증명시켰다.


장마가 끝나고 며칠 후 불면증으로 고생한 날들이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잠에 들 수 없었고 술을 마셔도 잠이 깰 뿐이었다. 그럴 때일수록 그의 몸을 밤새 만지곤 하였다. 그는 다른 선인장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 푸른 몸은 새벽에는 더욱 안정적이었으며 뿌리에서 빌려온 생기로 가시는 광택을 유지했다. 그는 창가에서 책상으로, 책상에서 내 머리맡으로 점점 나와 가까워졌다. 그는 이름 그대로 존재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것을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가끔 그는 겨우 잠든 나의 꿈속에 나와 나의 등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내가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을 때면 그는 가만히 나를 바라봐주곤 했다. 물론 모든 것이 착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버틸 곳이 없을 때 그는 나에게 확실한 버팀목이었다.


나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억지로 함께하고 그 누군가의 품에서 한참을 엉엉 울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이 말이다. 거의 모든 만남이 그러했다. 거짓된 믿음으로 가득한 열변을 토하고 누군가의 품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주인공보다 더 어린 행동을 일삼았다.


나는 선인장을 잘 알지 못했고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물을 어떤 주기로 줘야 하는지, 환경은 어때야 하는지, 빛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어떤 색깔의 꽃을 피우는지, 내부의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무엇이 그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무관심 속에서 머리맡에 놓인 그의 뒤통수는 썩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리 오래 살지 못하였다. 가정용 선인장의 경우 보통 10-20년은 산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나와 함께한 지 1년 만에 속이 썩은 체 죽어버렸다. '함께'라는 말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외로웠을 것이다. 많이도 외로웠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물며 그의 죽음마저 보지 못했다. 나의 어머니는 가끔 나의 자취방에 찾아왔다. 그녀는 청소 도중 그의 뒤통수가 썩어 있는 것을 보고 햇빛이 잘 드는 땅에 묻어주었다. 나는 그의 뒤통수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조그마한 그를 들어서 한번이라도 훑었다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집에 와서 그를 무심히 두지 않고 잠시라도 시간을 냈다면 금방 알아차렸을 텐데.


그 일 이후로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화살이 자기애가 넘치던 나에게 향하는 것을 느꼈다. 그 화살을 피하려 들어간 나의 방에서 거울에 비친 나의 오만을 마주했다. 병들고 나약한 나체가 있었고 그는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의 뒤통수도 누군가처럼 썩어있었을 것이다. 나와 함께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 거울을 보면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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