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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eping Feb 13. 2024

장마

밑동이 잘려나간 나무는 죽은 나무인가 살아있는 나무인가.

이 물음에 순간적으로 답을 하자면 나는 아마 죽은 나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아무도 모른 체 뒤통수가 썩어간 선인장을 키우고 있었다. 선인장을 처음 방으로 들인 이유는 시장 바닥의 많은 선인장 중 유일하게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흰색 사각형 화분에 담긴 그의 이름은 'Peeping'이었고 이름이 마음에 들어 5000원에 그를 구입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나의 머리칼이 선인장을 닮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뾰족하게 자란 가시는 한껏 나의 머리칼과 유독 닮아있었다. 나는 선인장을 받아 들고 어린아이의 엉덩이를 다루듯이 조심스레 집으로 향했다. 지켜야 것이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나는 그렇게 하나의 책임을 돈으로 지불하였다.


선인장을 처음 방에 들인 날 집 안 곳곳에 정적이 감돌았다. 창문은 북서쪽에 위치하여 해가 거의 들지 않았고 중간은 베란다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로인해 지는 햇빛마저 나의 방에 서슴없이 들어오지 못하였다. 그날 생명체와 나는 조용한 암실 속에서 첫날을 보냈고 책임은 나에게 어떠한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에게 위로를 받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나를 가엾이 여기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반대는 성립했다. 가엾은 나는 5000원에 팔린 선인장을 가엾이 여겼다.


처음 그가 내 방에 들어오고 한주가 지나 나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그를 데려갔다. 나의 자취방은 구미시의 외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은 게으른 나체와 행동이 없는 노력들이 얼룩진 비참한 장소였다. 마찬가지로 빛이 들지 않았던 나의 방에는 동측으로 거의 건물을 맞대고 작은 창이 나있었고 그곳이 보금자리의 유일한 환기구였다. 직사광선은 들지 않았다. 나의 방에 들어오는 빛들은 모두 맞은편 건물에 몇 번 튕기고 들어온 빛이었다. 빛이 들지 않는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꺼지지 않는 모니터의 불빛과 백생들의 인위적인 하얀빛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죽은 공간 속 의지할 곳이 없던 나는 매번 그에게 말을 걸었고 부드러운 솜털 같은 그의 가시를 어루만졌다. 솜털 같은 가시는 지난날의 기억에 의해 각색된 철없는 비유가 아니다. 그의 가시는 정말 부드러웠고 부드러움은 끔찍한 나를 안고 멀리로 떠나려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를 보살피겠다는 나의 책임은 거짓이었다. 마치 어린아이의 고집과 질투 같은 감정이었다. 나는 그를 어루만지지 않고 그저 만졌을 뿐이며 그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속박한 것이었다. 기세등등하게 잡아챈 먹이를 나의 연민에 의한 구원이라 착각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나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없었다. 그것이 거짓된 책임의 방증이다.


그의 자리는 그나마 빛이 들어오는 창가였다. 아침에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저녁에는 돌아와 그를 만지는 게 나의 일상이 되었다. 부드러운 그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나는 아침이 되면 어른이 되는 가면을 쓰고 자정이 되어 집에 돌아왔을 때 그 가면을 벗었다. 집의 문을 열 때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그에게 인사하였다. 집을 나설 때면 가면을 쓰고 돌아오면 가면을 벗었다. 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저 오만한 어린아이가 그 방에 있었다.


8월의 장마가 이던 날, 오후 세 시경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쇼윈도 건너편으로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을 본 그날 같은 시각 창틀에 놔둔 그에게로 무수한 비가 내렸다. 나의 작은 방 유일한 배출구는 항상 열려있었고 그는 항상 그곳에 있었다. 자정이 되어도 그칠 줄 모르던 비는 집에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의 부드러운 가시와 몸체는 반쯤 물에 잠겨있었다. 미안한 감정이 앞섰지만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게 미안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를 창과 멀리 떨어진 책상에 옮겼다.


비를 잔뜩 맞은 나도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시작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세시부터 했던 걱정은 그를 만난 후 일순간 사라졌다. 나는 왜 비를 맞은 그를 보며 안심했던 것일까.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보며 나는 안심을 했던 것일까. 그에 대한 걱정마저 그저 가면에 불과한 것일까. 정말로 그를 사랑하는가. 비 맞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는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빗방울이 만들어낸 자신에 대한 혐오가 샤워기의 물줄기에 담겨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을 맞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마가 끝날 때까지 그는 창가와 멀리 떨어진 책상 위에 자리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 방의 유일한 배출구인 창문을 닫지는 않았다. 창문은 유일한 통로였다. 나는 그 창문을 통해 좋은 공기가 들어오고 탁한 공기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덩어리진 나의 탁한 공기를 배출시키기엔 너무나 작은 창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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