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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턴 2 속 공중전화 시퀀스에 관해

공중전화 시퀀스가 명장면인 이유

by 조형준 작가


우선 오늘 제가 월레스와 그로밋에 이어서 좋아하는 패딩턴 시리즈의 신작인 '패딩턴: 페루에 가다'의 국내 개봉일이 확정된 기념으로 패딩턴 2의 명장면인 공중전화 시퀀스에 대한 저의 해석을 담은 글을 브런치스토리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패딩턴 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선 제가 패딩턴 2를 4번이나 N차관람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공중전화' 시퀀스였습니다. 이 시퀀스는 아동 학대 피해자이자 감정이 매마른 저마저 눈물이 나오게 만들었을 정도로 굉장히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아마도 패딩턴 2를 보신 다른 분들은 팝업북 시퀀스나 기차에서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를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공중전화 시퀀스에 대해 비평하고 싶은 점들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먼저 공중전화 시퀀스가 무엇인지를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이 장면은 너클스가 누명을 벗어주겠다는 게 거짓말임을 알아차린 뒤 위험을 무릎쓰고 거리로 나오며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이후 거리를 걷는 패딩턴은 경찰차의 사이렌에 한 골목 안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공중전화를 만나죠. 하지만 눈 앞에 나타난 공중전화는 패딩턴의 마음처럼 완전히 낡아진 상태였습니다. 공중전화의 유리는 깨지지 않는 부분이 없었죠. 그렇지만 패딩턴은 자신의 귀에 있는 동전으로 전화를 걸려고 한 것을 보며 말했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에서라면 브라운 가족과 연락이 되겠지?

저는 당연히 이 장면에서 가족들과 연락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의 상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도망자 신세가 된 패딩턴에게 남았던 것은 조나단 브라운과 주디 브라운이 녹음한 부재중 메세지 알람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패딩턴은 이에 굴하지 않고 메세지를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패딩턴이 전화하려고 온 공중전화의 반대쪽인 브라운 가족의 집 내부를 비치는 빛이라고는 분홍색 조명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저 패딩턴의 매우 공허한 목소리만 울러퍼질 뿐이었다. 이제 인용문으로 패딩턴 2를 여러 번 봤었기 때문에 패딩턴이 브라운 가족에게 남긴 메세지를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예요, 패딩턴. 전화해서 죄송해요. 탈옥했다고 알려 드리려고요. 지금 도망치는 중인데... 이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너클스가 누명을 벗겨준다고 해서 집에 가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혼자네요.

저는 패딩턴의 심정이 곧바로 이해되었습니다. 패딩턴이 브라운 가족이 자신을 잊어버렸다는 생각에 좌절했지만 한 번이라도 브라운 가족을 믿어보려고 한 마음에 공감이 되어서 제 마음이 감정적으로 변해서 마음 속으로는 이미 울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겉으로 울게 만든 세 개의 대사가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이 세 개의 대사에는 울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제 가족은 콩가루 집안에 '아동 학대 가해자'과는 견원지간이었기 때문에 제게는 브라운 가족과 패딩턴간의 관계가 부러웠습니다. 왜 제게는 마음의 상처를 준 가해자와 같이 지내야 하고 패딩턴은 이렇게 좋은 가족을 얻었는지 부러움과 동시에 질투심까지 들었지만 그 덕분에 제가 패딩턴이라는 캐릭터를 정말 좋아했는데 패딩턴의 이와 같은 세 대사가 감정적으로 변한 제게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더라고요.

제가 왜 전화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이 말이 하고 싶었나 봐요.
잘 있어요.

이렇게 말한 뒤 패딩턴이 다시 위험을 무릎쓰고 거리로 나가려고 하는 순간, 마침내 브라운 가족이 메세지를 듣고 연락을 하며 패딩턴을 잊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을 보고 나서야 겨우 감정적으로 변했던 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먼저 이 비평에서 말하고자 하는 세 가지 원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공중전화

2. 밴 위쇼의 연기력

3. 탁월한 프로덕션

먼저 공중전화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공중전화는 스마트 폰에 밀려서 이젠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의 공중전화는 특유의 빨간색의 박스에 공중전화가 있어서 매우 이국적으로 느껴지는데 패딩턴 2의 이 장면에 있는 공중전화도 앞서 말한 영국의 공중전화의 특징과 동일하지만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공중전화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는 겁니다. 이건 패딩턴의 마음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는 것을 한번에 비유하는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만약 이 장면이 공중전화가 아닌 스마트 폰이었다면 아마 그때 제가 느꼈던 감흥을 느끼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 장면을 보며 저는 말했습니다.

아마 공중전화가 아닌 스마트 폰이었다면 그저 그런 장면이 되었을 거야.

두 번째는 벤 위쇼의 연기력입니다. 개인적으로 벤 위쇼를 처음 알게 된 영화는 007 스카이폴인데 그 영화에서는 한동안 보기 어려웠던 Q를 맡아서 제게 인상적으로 남았는데 나중에 이 영화의 전작인 패딩턴을 본 다음에 제작진 목록을 보니 패딩턴의 모션 캡처와 목소리를 맡은 배우가 벤 위쇼임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 패딩턴 2에서 벤 위쇼의 연기력을 흠잡기는 어렵더라고요. 특히나 그 연기의 정점을 보여준 게 바로 공중전화 시퀀스였습니다. 특히나 벤 위쇼가 패딩턴을 통해 브라운 가족에게 메세지를 보낼 때 보여준 좌절과 체념이 담긴 표정을 보고서는 벤 위쇼의 연기력에 감탄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밴 위쇼라는 배우를 기억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처음 공중전화 시퀀스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렇게나 멋진 연기력을 보유할 줄은 몰랐는데 연기력이 좋네!

마지막으로 탁월한 프로덕션에 대해 간단하게 말하며 비평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공중전화 시퀀스 속 공간에 대한 프로덕션에 대해서 간단하게 평하면 '이보다 적절한 데를 떠오르게 어려울 정도로 패딩턴의 심리 상태를 공간에 굉장히 잘 녹아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당 장면에서 빛이라고는 거의 없습니다. 고작해야 패딩턴이 공중전화를 하기 위해 들어갈 때 나오는 빛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그 밖에도 공중전화 시퀀스에는 한 가지 더 멋진 장치가 있었습니다. 바로 공중전화를 둘려싸고 있는 담쟁이입니다. 담쟁이는 패딩턴 2의 후반부에서 중요한 장치 중 하나입니다. 공중전화 시퀀스가 나오기 직전 패딩턴이 브라운 가족이 결국 자신을 잊었다고 생각하자 독방에 있는 브라운 가족과 같이 찍은 사진에서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흘린 눈물이 바닥에 떨어진 순간에 독방에 담쟁이로 뒤덮이는 장면이었는데 이와 함께 공중전화에 있는 담쟁이를 보며 저는 한 가지를 걱정했습니다. 이게 설마 패딩턴의 상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절규했었습니다.

제발 이게 패딩턴의 상상이 아니라 현실의 공중전화이길.

다행히 이런 걱정과 반대로 패딩턴 앞에 있었던 공중전화는 현실의 공중전화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결론을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공중전화 시퀀스는 '공중전화라는 아날로그적인 소품과 벤 위쇼의 완벽한 감정 및 표정 연기에 패딩턴의 감정을 공간으로 풀어낸 훌륭한 프로덕션이 저를 울리게끔 만든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패딩턴 2는 극장 개봉을 마치고 VOD를 통해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2월 19일에 패딩턴: 페루에 가다!가 개봉합니다. 제게 있어서 잃어버렸던 감정을 되찾게 해줬던 소중한 영화의 속편인 만큼 영화가 개봉하면 바로 달려갈 겁니다. 아쉽게도 국내 공식 포스터를 보니 패딩턴 2 때와는 달리 롯데시네마 단독 개봉이네요. 물론 저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영화는 볼 겁니다. 참고로 이건 광고가 아니라 제가 2018년에 올린 글을 리마스터로 다시 올렸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다음주 월요일에 '두 놀이동산과 나' 11화로 뵙겠습니다.

원본: https://extmovie.com/movietalk/3147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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