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1

12 장인어른과의 이별

by 쫑무다리

장모님은 독실한 불교신자는 아니었지만 불자합창단 활동도 하시고, 절에 가시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그런 장모님을 위해 나와 아내는 장모님이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49일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재(齋)를 지내는 49재를 하기로 했다. 1~6재는 집에서, 마지막 7재는 친지분들과 함께 은평구에 있는 진관사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49재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어느덧 6월이 됐다.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장례절차를 마무리한 뒤 나는 아내의 심리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야 했다. '이제는 장모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데 따른 상실감과 우울감에 빠지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지난 2년 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장모님이 쓰러지셨던 2년 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던 아내는 더 이상 없었다.


운동도 열심히 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나와 함께 안양천길도 열심히 걸었다. 회사 업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내 앞에서 크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애써 밝은 모습을 하면서 모든 일에 열심인 아내를 보면서 '지금 아내는 최선을 다해서 아픔을 극복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최선을 다해 아픔을 극복하는 데 남편인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거라 생각했다.


코로나19도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고, 지금까지 계속해왔던 국립공원스탬프투어와 등대스탬프투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성을 느꼈다.


국립공원스탬프투어를 위해 제주도를 다녀왔고, 2박 3일 완주를 목표로 등대스탬프투어에 나서 충청남도 서산 삼길포항방파제등대를 시작으로 강원도 양양 물치항방파제등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를 U자로 돌아보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기에 아내와 함께 정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아내의 마음이 회복되고 있던 2022년 11월 11일 새벽, 또 한 번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겨버렸다.


11월 11일 새벽 4시쯤 아내의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지는 장인어른이 계시는 논산의 요양병원이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논산 OO병원인데요. 아버님이 위독하셔서요.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계시는데 바로 내려오셔야 할 것 같아요."


장인어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논산으로 출발했다. 그동안 잘 버텨오셨는데 직감적으로 이번 고비는 넘기지 못하실 것 같았다.


논산을 목전에 둔 탄천휴게소를 지나고 있는데 병원으로부터 다시 한번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쯤 오시고 계신가요? 아버님이 많이 힘들어하세요."


"지금 탄천휴게소를 지나고 있어요.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할게요."


떠나기 전 딸의 얼굴을 보고, 딸의 목소리를 듣고 싶으셨는지 장인어른께서는 아내가 도착할 때까지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마지막 사투를 벌이고 계시는 듯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장인어른은 마지막 가뿐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아빠 나 왔어. 아빠 조금만 힘을 내봐. 나는 아빠가 누워만 있어도 좋으니까 지금 이대로 있어주면 안 될까? 아직 아빠랑 이별하기 싫단 말이야."


아내는 장인어른의 머리를 쓰다듬고, 팔과 다리를 어루만지면서 장인어른이 위기를 극복하기를 바랐다.


아내의 이런 간절한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생을 마무리하기 전 정말 사랑했던 딸의 얼굴과 목소리가 보고 듣고 싶으셨는지 나와 아내가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인어른은 2008년 쓰러지신 이후 14년 간 이어온 투병생활을 마무리하셨다.


"아빠, 일어나 봐."


"아빠, 내 말 들리지. 내 말 들리면 눈 좀 떠봐요..."


아내는 쉽사리 아버님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장인어른의 팔과 다리를 계속 주무르면서 장인어른의 귀에 대고 계속해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아마도 14년 간 이어온 아내의 간병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장인어른의 주치의와 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 분들도 아내를 지켜보면서 매우 안타까워했다.


"이제 그만 아버님을 보내드려야죠."


주치의 선생님이 울고 있는 아내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네..."


"아빠...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그리고 많이 힘들었지? 이제는 정말 편하게 쉬세요..."


"아빠 딸이어서 너무 행복했고, 아빠의 사랑 듬뿍 받고 자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엄마가 아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엄마랑 만나서 행복하게 지내요. 나도 씩씩하게 잘 살아갈게... 응원해 주고 지켜봐 주세요..."


"아빠 사랑해... 그리고 안녕..."


2022년 11월 11일 오전. 아내는 장인어른께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아내의 마지막 인사 이후 장인어른을 서울로 모셔야 했다. 상조회사와의 연락을 통해 나와 아내의 모교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장모님 때와 마찬가지로 제일 친한 친구 녀석과 언론사 후배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전 회사에서 또 한 번 장례용품을 지원해 줬다.


그리고 발인 당일. 상조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서울시립승화원으로 가기에 앞서 처갓집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2008년 아침에 출근하신 후 14년이 지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장인어른께 짧게나마 집안 구석구석 보여드리고 싶어서였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후 아무도 살지 않아 온기가 사라진 집이었지만 마지막 길을 떠나는 장인어른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했다.


14년 만에 돌아온 집과 작별인사를 마친 장인어른은 모든 장례절차를 마치고 장모님 옆에서 영원한 안식에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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