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안녕...뉴칼레도니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뉴칼레도니아 누메아에서는 '모든 버스는 모젤광장(Place Moselle)에서 만난다'란 말이 딱이다.
누메아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아메데 등대 투어를 계획했지만, 투어 프로그램이 없어지면서 오전에 호텔 주변에서 셀프스냅을 찍고 오후에 누메아 시내를 돌아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아내와 함께 잠깐 리조트 앞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짧은 산책인 만큼 씻지 않은 상태에서 다이소에서 오천 원 주고 장만한 일명 '그리핀도르 모자'를 눌러쓰고 나왔다.
호텔에서 앙스바타 해변까지 걸어갔는데 마침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자기야. 버스 타고 누메아 아침시장이나 가볼까?"라고 하니 아내도 좋다고 했다. 짧은 산책이 '버스 타고 누메아 돌아보기'로 급변하는 순간이었다.
현금을 챙겨 나오지 않아 근처 ATM기에서 1000프랑을 찾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외국인 커플이 다가와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못한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커플 중 남자분이 영어로 "이길로 쭉 걸어가면 시내로 갈 수 있냐"라고 묻는다. 어제 이미 아내와 '걸어서 누메아 속으로'를 찍었기 때문에 답하기가 너무 수월했다.
"당연히 가능하지만 거리가 엄청 멀어서 상당히 많이 걸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자 "두 사람 여기서 버스 타고 시내에 갈 거냐?"라고 묻길래 "그렇다."이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N3번 버스가 왔고, 우리 부부와 외국인 커플은 사이좋게 버스에 올랐다.
모젤 광장에서 내린 우리 부부는 어제 휴무라 보지 못했던 누메아 아침시장을 둘러봤다. 과일도 있고, 생선도 있고, 각종 기념품도 있었다. 시장 안에서 300프랑을 주고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셨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시장구경을 마치니 슬슬 배가 고팠다. 어제 꼬꼬띠에 광장을 찾다가 봐 뒀던 길거리 식당에서 한국식 BBQ비빔밥을 먹었다. 유일한 한식당인 '르 서울'에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여기 현지인이 만든 한국식 BBQ 비빔밥의 맛은 어떨지 궁금했다.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데 현지인 아저씨가 다가와 주먹을 부딪히는 인사를 할 것을 청하길래 흔쾌히 주먹을 내줬다.
그런데 이 아저씨 나에게 "일본인이야?"라고 묻는다. 바로 "한국인입니다"라고 했더니 미안하다면서 자기 친구 중에 한국인이 있는데 뉴질랜드에 산다고 했다. 그러면서 뉴칼레도니아에서 좋은 추억 만들고 가라고 하면서 쿨하게 떠나갔다.
식사 후 어제의 강행군에 얼굴이 많이 탄 아내와 함께 약국에 들러 피부를 진정시켜 주는 화장품을 샀다.
약국을 나와 조금 걷다 보니 어제와 다른 까르푸를 만났다. 어제 까르푸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다. 여기서 뉴칼레도니아 맥주인 넘버원 맥주 5개, 만타 맥주 2개, 뉴칼레도니아 산 원두커피와 바나나잼을 구입했다.
온 김에 저녁거리도 사기로 했다. 잡채 비슷한 것도 사고, 햄도 사고, 뉴칼레도니아 산 참치캔도 샀다. 물, 주스, 탄산음료까지 사고 나서야 까르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까르푸를 나온 우리 부부는 호텔로 돌아갈지 아니면 치바우 문화센터를 갈지 갈림길에 섰다. 까르푸에서 워낙 많은 것을 구입해 가방이 무거 웠지만, 호텔로 돌아가면 안 나올 거 같아서 치바우 문화센터를 가기로 했다.
잠시 까르푸 앞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는 버스노선도를 분석해 보니 뉴칼레도니아 누메아에서 운행하는 대부분의 버스가 모젤광장을 거쳐간다는 걸 알게 됐다.
까르푸에서 N1번 버스를 타고 모젤광장으로 간 뒤 치바우 문화센터로 가는 N2번 버스로 갈아탔다. 치바우 문화센터에 내려 걸어가는데 버스기사 아저씨가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길래 나도 힘차게 손을 흔들어줬다.
치바우 문화센터는 파리의 퐁피두 센터와 일본 간사이 공항을 설계한 이탈리아의 세계적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
세계 5대 근대 건축물인 치바우 문화센터는 디자인부터가 매우 독특했다. 이곳 원주민들의 전통가옥인 '까즈'를 형상화한 것으로 뉴칼레도니아 판 민속촌이라 하면 될 것도 같다.
웅장함을 자랑하는 건축물이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멜라네시안 전통문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남태평양 문화의 조각, 공예 등 다양한 소장품도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르메르디앙 누메아 호텔에 묵으면 관람료가 무료. 입구에서 호텔 카드키를 보여주니 즐거운 시간 보내라면서 바로 입장시켜 주었다.
치바우 문화센터 탐방을 끝낸 우리 부부는 N2번 버스를 타고 다시 모젤광장으로 돌아와 N3번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오전 7시에 시작된 산책이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호텔 앞 바닷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나와 아내는 우리 앞에 어떤 시련과 풍파가 불어닥쳐도 흔들림 없이 함께 이겨나갈 것을 약속했다.
특히 욕심과 질투가 넘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우리의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지만 죽는 날이 아깝지 않도록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보자. 뉴칼레도니아 와서 느낀 평화로움과 여유로움 그리고 안정감, 행복감을 잊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여행 마지막날 아내와 두 손을 꼭 잡고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자기야... 나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떠나보내면서 느꼈던 감정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해."
"뭔데?"
"아마도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즐겁게 사는 게 인생이라는 말씀을 해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러니까 앞으로 평생 서로 아껴주면서 많이 웃고 즐거운 추억들 많이 쌓아가자."
"과거에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해. 우리 두 사람의 인생소풍은 이제 다시 시작이야. 우리만의 인생소풍 도화지에 예쁜 그림 많이 그려나가자."
"오빠가 옆에 있어서 너무 고마워. 오빠랑 정말 행복하게 잘 살 거야."
뉴칼레도니아 여행은 나와 아내가 가족을 잃은 슬픔을 떨쳐내고 우리 두 사람이 새로운 인생소풍 일기장을 만들어가는 시작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