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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상상 May 27. 2024

Broca's Area

브로카 영역

좌반구 전두엽에 존재하는 뇌의 특정 부위로 언어 생성을 제어하고 말을 하는 기능을 한다. 1861년 프랑스의 외과 의사인 폴 브로카(Paul Broca)가 발견하여 그의 이름을 따 브로카 영역이라고 불린다. 특히 언어 표현을 담당하는 부위이기 때문에 이 부위가 손상되면 언어 수행이 저하되어 간단한 단어를 나열하는 수준의 발화로 표현이 제한되는데 이 증상을 '브로카 실어증'이라고 부른다.         


탁구장에서 엄마는 빛나는 코치였다. 한때 국가대표까지 할 정도로, 학창 시절부터 코피가 나도록 탁구만 쳤다는 엄마는 은퇴 후에도 탁구 코치로 당신의 커리어를 이어갔다. 엄마는 주로 퇴근 후 운동이 필요한 직장인들이나 주부들에게 탁구를 가르쳤다. 누구와 시합을 해도 자신만만해 보였다. 내심 그런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가끔 나는 탁구장에 놀러 가서 청소를 돕거나 엄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곤 했다. 그날도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그런데 회원과 상담을 하던 엄마가 갑자기 사무실에서 나와 내게 도움을 청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머리가 아프고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엄마는 혀가 어눌한 듯 발음이 이상했다.      


놀란 마음에 즉시 대학병원으로 달려가 진료를 받았는데 엄마를 진찰한 의사는 뇌종양이 의심된다며 정밀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브로카 영역에 이상이 생겨서 발화가 어눌해진 것인지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며 의사는 내 전공이 무엇인지 되물었다. 언어학을 배울 때 들었던 브로카 영역에 대한 지식을 이런 식으로 다시 접하게 될 줄이야...


그 와중에도 엄마의 얼굴에는 내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듯한 표정이 스쳐갔다. 내가 임용에 최종 합격했던 날 보았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당신이 생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여있다는 통보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딸이 똑똑하다고 좋아하는 바보 같은 엄마. 


임용 시험에 붙은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이런 일이 일어나니 마치 엄마가 그동안 힘겹게 부여잡고 있던 생의 끈을 놓아버린 것 같아 한없이 허탈하고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한데 겹쳐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두통 이야기를 한지는 꽤 된 것 같은데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 후회스러웠다. 


왜 엄마는 항상 건강하게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엄마의 안녕과 건강이 그때처럼 간절했던 적은 없었다. 브로카 영역이건 무엇이건 제발 엄마를 괴롭히는 그것이 악성 뇌종양만은 아니기를. 엄마의 일상이 회복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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