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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상상 May 27. 2024

병원 탈출기

“뛰어!!”


덜거덕거리는 링거와 거치대를 부여잡고 아빠와 나, 엄마는 무작정 달렸다.

병원 입구에서 큰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성공이었다.     


“냄새도 똑같고 맛도 똑같다.”     


입원생활 동안 병원밥에 질린 엄마의 한 마디가 발단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지긋지긋한 병원, 여기 입원하면서부터 잠 한 번 편히 자본적이 없어.”


대공감이었다. 엄마 옆에 좁디좁은 간병인 침대를 펼치고 쪽잠을 자던 나도 병원에선 도저히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나가시면 안 됩니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약 거르시면 안 돼요.”

“혼자 돌아다니시면 절대로 안 돼요.”

“혈압 잴 때는 잠들어계시면 안 돼요.”(심지어 때는 새벽 4시였다.)     


온갖 종류의 통제와 금지 속에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이렇게 답답한데 엄마의 속은 오죽했을까 싶다. 입원하면서부터 엄마는 자신이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휴식 없는 삶이 옥살이처럼, 쳇바퀴처럼 똑같이 흘러가는 병원 생활에서 하루라도 엄마를 탈옥하게 해주고 싶었다.      


“멀리는 못 가더라도 요 앞에 한정식집에서 엄마 좋아하는 돼지고기나 먹고 오자.”


아빠의 제안에 엄마 얼굴에도 오랜만에 미소가 번졌다. 우리 세 사람은 숨죽여 병실을 나섰다. 병실에서 병원 입구까지는 태연한 척 천천히 걸었지만 출구가 보일 때부터는 누군가 우리를 통제할까 싶어 못내 불안했다. 병원 경비인이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는 듯했지만 우리는 무사히 병원 입구를 빠져나왔다. 어쩌면 모른 척해준 것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그때까지 엄마의 식욕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나는 환자복을 입으면 진짜 환자가 된 양 그렇게 힘이 빠지더라.”     

‘엄마 진짜 환자 맞는데.’      

속으로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대신 엄마가 입던 카디건-환자복이 아닌-을 엄마의 야윈 어깨에 걸쳐주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오랜만에 정말로 맛있는 가족 식사를 했다. 밍밍한 병원 급식 대신 오색의 밑반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식탁을 엄마에게 선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일상이었던 외식이 그때는 그리도 감격스러웠다. 세 가족이 마주 보고 웃으며,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은 장소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때 우리 가족의 작은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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