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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센트 Apr 01. 2024

희생에 대한 씁쓸함

정확히는 의사 파업 전에 생긴 이야기이다. 그날은 유독 평소와 다르게 매우 조용한 날이었다. 오죽하면 책을 가져와서 읽거나 아님 이렇게 글을 써도 괜찮을 정도로 내원객들이 적었다. 느슨해진 근무에 뭔가 재밌는 일이 있을까 하면서 구급차가 온 지 모르고 계속 멍 때리고 있었는데 응급실 정문에 구급대원과 경찰관님 같이 있는 거였다. 순간 당황해서 무슨 일인가 가봤더니 어느 한 여성분이 헬맷을 쓰고 바닥에 앉아있었다… 헬맷을 왜 썼는지 궁금했지만 그거보다는 일단 접수부터 도와주려고 했더니 인적사항을 모른단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래서 환자분께 여쭤보자 자신도 모른다 했고 그 부분에 직감했다. 이 사람은 단순 기억상실 아니면 정신질환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그나마 이름하고 전 날에 응급실에 왔다고 하니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원무과 가서 접수해 달라고 했으나 내가 말한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쌤이 말한 환자 있잖아요. 어제 내원 기록도 없는데요?”



진짜 난감했다. 아니 그냥 막막했다. 일단 다시 환자분께 가서 인적사항을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고 그 외에 보호자분 연락처도 물어봤으나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보호자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환자는 기겁하기 시작했다.


“남편만은… 남편만은 부르지 말아 주세요..”


구급대원님께 듣자 하니 보호자인 남편분이 조현병 환자인데 가정폭력에 당했다고 하며 헬맷을 쓴 이유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썼다고 했다. 나 또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고 그 부분에 대한 상처와 트라우마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일단 환자부터 진정시켰다. 아무래도 대상이 하필 제일 가까운 사이인 남편이다 보니 남자 선생님들이 다가오면 다가오지 말아 달라고 양해를 구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원무과 쪽에서는 기다리다가 답답했는지 접수를 할지 말지 답을 달라는 재촉이 있었으나 경찰관님께서 지금 신원 조회 중이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하셨고 급한 대로 환자분을 진료 센터로 안내해 드렸다. 원무과 쪽에서 접수 문제는 해결되었는지 차트에 올라와있고 나중에 뒷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름이 달랐다고 한다. 경찰관님께서 조회되었던 이름으로 접수했더니 내가 말한 대로 전날에 내원하신 이력이 있었다고 했고 그저 이름만 달랐다고 했다. 여하튼, 진료센터에 안내하고 나니 환자는 침대에 누워야 하는데 계속 바닥에 앉거나 누워있어서 침대에 앉으라 해도 여기가 편하다면서 고집을 부리고 내가 다가가려고 하면 다가오지 말라고 거부를 했다. 그저 보호자가 오길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히 보호자는 왔다. 시어머님께서 오셨고 얘기를 듣자 하니 새벽에 환자의 남편분께서 오신다고 했다. 이걸 들었을 때 환자가 남편분을 보호자로 거부하셔서 나중에 모를 일을 대비해서 민감한 부분인걸 감안하고 환자분께서 남편분이 오시는 걸 거부하시는데 무슨 일이 있냐 물어보았고 상황에 따라서 남편분은 못 들어갈 수도 있다고 사전에 미리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욕먹을 줄 알았으나 시어머니분께서는 오히려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씀해 주셨다. 요약하자면 조현병이 있는 남편을 위해 여러 가지 심리 공부를 하면서 케어해 주다가 이렇게 된 거라고 한다. 물론 케어하다가 중간에 해프닝은 있었지만 노력 끝에 다행히 남편분의 증상은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일단 환자분과 문제가 생기면 그때 퇴실 조치해야겠다 하고 시어머니분께서 하신 말씀을 일단 참고하기로 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남편분께서 와도 아무런 일이 없었고 혹시 모르니 그때 있었던 일들을 인수인계를 하고 하루를 마쳤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에 한편으로는 대단하게 보였었지만 반대로는 그 희생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잃었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게 느껴졌고 씁쓸함이 느껴졌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건 무엇보다도 대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접수부터 풀리는 일이 없었다 보니 안 좋은 표정으로 응대한 부분에 대해서 그 환자분께 미안한 감정이 들었었다. 그날이 있고 퇴근길에 나는 문득 생각해 봤다. 나도 과연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뭐 겉으로는 당연하다는 말을 하겠지만 그 상황이 되어봐야 내 자신의 답을 알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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