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 공무원 3편
- 이 인터뷰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반말로 진행되었지만, 여러분이 읽기 편하도록 존댓말로 재구성했습니다. 또한, 직업별로 1편과 2편으로 나누어 연재될 예정입니다. 전문적인 직업 분석이나 심층 취재가 아니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가벼운 인터뷰입니다.
- 특정 직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삶을 살고, 이런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구나." 하는 점을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결국, 이 인터뷰는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은 모두 제 지인들입니다. 인터뷰이의 신상 정보(이름, 근무지 등)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기록이며, 허락 없이 다른 곳에 가져가거나 재사용하지 말아 주세요.
면접관님 중 한 분이 이렇게 물으셨어요. ‘이전 보건소에서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여기에 지원하셨는데, 만약 또 다른 더 나은 포지션이 생긴다면 이동할 수도 있겠네요?’라고요. 솔직히 약간 시니컬하게 느껴지는 질문이었어요.
그때 저는 이렇게 답했어요. ‘맞습니다. 사실 이전 근무지는 도보로 출퇴근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어요. 그런데 그 장점을 포기하고도 이곳에 지원한 이유는 더 안정적으로, 더 오래 일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어요. 만약 앞으로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면 지원할 수도 있겠죠. 다만, 그럴 경우 인수인계는 철저하게 해서 조직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절대 가지 않겠다’라고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린 건데, 그게 점수를 깎았을지 올렸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웃음) 그래도 제 입장에서는 가장 진심을 담은 답변이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지금은 딱히 옮기고 싶은 부서는 없어요. 임기제다 보니 다른 부서에서 간헐적으로 채용 공고가 올라오기도 하고, 최근에도 지금 제 직급보다 한 단계 높은 직급의 채용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잠깐 고민도 했어요. 근데 제가 감염병 업무를 맡은 게 2024년 4월부터라, 이제 막 1년 조금 넘었거든요. 그동안 공부해 왔던 것들에 대해 지금 더 배우고 싶은 의욕이 있어서 결국 지원하진 않았어요. 아마 예전 같았으면 ‘좀 더 좋은 포지션을 가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더 컸을 텐데, 지금은 ‘조금 더 이 업무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이 업무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라는 마음이 더 커요. 사실 예전에 다른 일을 할 땐 ‘이제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지’라는 생각이 들면 새로운 도전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감염병 업무는 아직 ‘할 만큼 했다’는 느낌이 오지 않아요. 아직 더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 더 배워야 할 게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지금은 옮기는 것보다는 현재 자리에서 더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저는 제 성격이 지금 업무랑 꽤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것도 좋아하고, 일하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MBTI는 ENFJ랑 ENTJ 사이를 오가는 편인데요, 기본적으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뭔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내는 걸 즐기는 성향이에요. 사실 저는 정규직은 아니어서 어떤 업무를 주더라도 ‘내가 이걸 유연하게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이건 이렇게 해보면 재밌겠다, 저건 저렇게 해보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어떤 일이든 재미있게, 성심껏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년에 ‘예비 방역 인력 교육’이라는 걸 받았는데, 그게 정말 기억에 남아요. 서울대학병원 감염관리내과에서 주관한 교육이었는데요, 각 의대 교수님들이 하루 종일 전일 교육을 진행해주셨어요. 평소에는 실무 위주의 업무만 하다 보니 이론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그 교육에서 감염병 전반에 대한 기본 이론을 한 번씩 짚고 넘어갈 수 있었거든요. 특히 교수님들이 실제 케이스를 많이 소개해 주셔서 실무와 이론을 연결해서 들을 수 있었던 게 정말 유익했어요.
그날 교육을 들으면서 ‘아, 지금까지 내가 했던 업무에 이런 이론적 배경이 있었구나’ 싶었고, 더 든든한 바탕이 생긴 느낌이었어요. 사실 하루만이 아니라 이틀, 사흘 더 듣고 싶을 만큼 아쉬운 교육이었죠. 무엇보다도 ‘내가 서울대 의대 교수님들의 강의를 직접, 그것도 유튜브도 아닌 현장에서 듣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더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업무 만족도는 8.5점? 9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깎인 점수는 사실 업무 자체에 대한 문제는 아니에요. 저는 정규직이 아니라서 고용의 안정성이라는 부분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거든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떤 사정으로든 근무가 종료될 수 있다는 점, 또 그런 위치에서 오는 사회적인 불안정함 같은 걸 생각하면 1점 정도는 감점이 되지 않나 싶어요.
업무 자체만 놓고 본다면 거의 10점이에요. 다만 굳이 한 0.5점 정도를 깎자면, 질병관리청과 현장 간의 소통이 조금 더 원활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어요. 우리는 현장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데, 정책 결정이나 중간 과정과의 연결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거나 잘 안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 점이 개선되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직업 만족도는 8.5점 정도요. 사실 이건 제가 아까 말씀드린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에요. 정규직이 아니다 보니까, 아무리 잘해도 고용 안정성이라는 부분은 제 힘으로 메울 수 없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완벽하게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걸 빼면 전반적으로는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어요.
물론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게 가장 기본이겠지만요,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넓은 의미의 목표가 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사람마다 나이를 먹는 속도나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60세인데도 이미 노인처럼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80세인데도 젊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들도 있잖아요. 저도 후자처럼 되고 싶어요. 몸이 건강해야 여러 가지 일도 해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체력 관리도 하면서 나이가 들어도 신체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잘 조절하고 싶어요. 그리고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젊은 사람들과 유연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결국 그런 것들이 제 남은 목표인 것 같아요.
음…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글쎄요. 지금 이 일을 하는 건 정말 좋은데, 그때 나이대—그러니까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쯤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더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떤 자격증이나 시험 준비 같은 걸 해서 정규직으로 입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좋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고용의 안정성이라는 부분이 늘 걸리거든요. 그래서 일은 좋으면서도 ‘아, 그때 좀 더 준비해서 안정적인 자리를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솔직히 있어요.
지금으로서는 특별히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거나, 다른 직업을 생각하고 있진 않아요.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한, 이 일을 최대한 오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요. 당장 다른 방향을 고민하기보다는, 현재 하는 일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더 잘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쭉 내 인생을 돌아보거나, 내가 해온 일들을 정리해 볼 기회는 사실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은 생각을 해도 그냥 추상적으로 지나갔는데, 이렇게 직접 말로 풀어내다 보니 훨씬 더 내 생각이 정리되고,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된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 점에서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사실 직업이라는 게, 자신이 직접 하고 있거나 가까운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예전에 남편 친구 중에 도시 기획하는 일을 하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도시도 하나의 유기체처럼 긴 호흡으로 기획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아, 그런 직업도 있구나’ 하고 신선하게 느낀 기억이 나요. 저도 그렇지만,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직업들의 이야기들이 이런 인터뷰를 통해 조금 더 세상에 알려지면 좋겠어요. 그리고 직업마다 고충도 있고 보람도 있잖아요. 이런 이야기들이 나누어질 수 있는 장 자체가 참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