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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예림 Oct 19. 2024

쿠르반 바이람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튀르키예

우리가 튀르키예를 방문한 또 다른 이유는 이슬람 최대 명절인 ‘쿠르반 바이람’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매번 뉴스나 무슬림 친구들에게 들었던 이 명절을 직접 볼 수 있다면, 나와 아이에게 특별한 기억이 될 거라 생각했다. 무슬림들에게 쿠르반 바이람은 한 달 동안 금식을 해야 하는 라마단만큼이나 중요하다. 명절을 앞두고 튀르키예 대도시에서 동부 지역으로 넘어가는 국내선 비행기 티켓은 오픈하자마자 매진될 정도다.


쿠르반 바이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절을 위한 제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먹고사는데 큰 문제가 없거나, 다른 이유로 제물을 구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무슬림들은 경제 수준에 따라 양, 소 또는 낙타를 제물로 준비한다.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같은 대도시에서는 양을 직접 고른 후 정부 허가를 받은 시설에서 동물들을 도살하지만, 남편의 고향처럼 작은 도시이거나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보통 직접 동물을 잡는다. 올해 아버님은 두 마리의 양을 잡기로 하셨다.


“지금 양 시장에 갈 건데 따라올 사람 있어?”


나와 아이는 진귀한 광경을 놓칠 수 없어 아버님의 뒤를 바싹 붙어 따라나섰다. 으드르 사람들은 모두 중앙 시장에 모인 것인지, 엄청난 인파에 놀라 아이의 손을 꽉 붙들었다. 시장에 들어서니 중앙 통로에 리어카를 대고 체리, 살구, 석류 같은 과일을 산처럼 쌓아두고 팔고 있었다. 명절 때 친척집에 방문하거나 방문을 받을 때 건네는 사탕과 초콜릿도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그 사이로는 나이키, 아디다스, 구찌, 샤넬 등 온갖 유명한 브랜드의 로고가 찍힌 짝퉁 신발과 옷들을 두고 사람들이 흥정을 하고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이었다.


아버님은 그대로 시장을 빠져나와 시장 옆길을 따라 공터 쪽으로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인지라, 그곳에는 양을 거래할 수 있는 비공식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시장보다는 좀 더 싼 가격에 거래가 가능했다. 커다란 공터에는 양을 싣고 온 트럭이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있었고, 양들은 트럭이 만든 작은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양을 고르고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은 전적으로 남자들의 일이었는지, 그날 시장에 있던 여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본격적인 양 찾기가 시작됐다. 아버님은 우선 양들이 몰려 있는 장소들을 느린 걸음으로 돌며 가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앵그리버드처럼 화나고 깐깐한 표정이었다. 어느 정도 사이즈면 어느 정도 가격이겠거니 파악한 아버님은 마음에 드는 몇 군데를 여러 차례 오가며 흥정을 시도했다.


아버님이 상인에게 다가가면 상인들은 으레 양의 입을 쫙 벌려 이빨을 내보였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양의 머리를 잡고, 두 손가락을 벌려 양의 눈동자를 확인시켰다. 품질 좋은 양을 찾으려는 아버님과 쿠르반 명절이 오기 전에 가져온 양을 팔아치우려는 상인 간에 지루한 기싸움이 이어졌다. 보통 제물로 삼는 양은 한 살이 지난 성인 양으로, 털이 깨끗하고 살도 어느 정도 붙어 있으며 움직임에 생기가 있는 양으로 고른다. 양의 이빨을 확인하는 건 치아 상태를 보면 나이를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양을 피하려면 필수로 거치는 과정인 듯싶었다.


아버님은 마치 중대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 같았다. 38도의 땡볕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것도 죽겠는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오줌과 똥 냄새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제는 제발 집으로 가요! 아버님!!’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칠 즈음, 아버님은 양 두 마리를 골랐다. 시장에서는 젊고 건강한 양 한 마리가 400달러 정도에 거래되고 있었지만, 아버님의 부지런한 발품 덕에 우리는 한 마리당 350달러를 지불했다. 양 두 마리를 트럭에 실어 집으로 갔다.


양들을 정원에 풀어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 킁킁대기 시작했다. 어머님이 정성 들여 가꾼 토마토와 고추밭을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갔고, 얄밉게도 완벽하게 얼굴을 내민 꽃봉오리만 쏙쏙 골라 따 먹었다. 참다못한 어머님이 마당으로 나와 아버님께 투덜거렸다. 당신이 사 온 양들이 내 소중한 꽃밭을 망치고 있는 게 보이냐고. 아버님은 공처럼 동그란 배를 쓰다듬으며 대꾸하셨다.


“여보, 너그럽게 생각해 줘. 딱 하루만 양들에게 양보하는 거잖아. 원래 쿠르반에 사용될 양은 죽기 전에 무엇을 하든 우리가 간섭할 수 없어. 이건 양들의 권리니까.”



아이는 마당에 나가 양들에게 인사했다. 양은 동물원에서, 그것도 멀찍이 떨어져서나 봤지 집에서 돌아다니는 건 처음이었다. 아이는 조심스레 양의 털을 손가락을 콕콕 쑤셔보거나, 연한 풀이나 살구 열매를 가져와 양들에게 건넸다. 아이도 내일이면 양들이 이 세상을 떠날 운명이라는 걸 알아서인지, 처음 보는 동물들에게도 마음이 쓰이는 듯했다.


저녁 식사를 하며 나는 쿠르반 명절이 왜 중요한지, 왜 동물을 도살하는지, 동물이 아닌 다른 제물로 대신할 수는 없는지 물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양의 도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행위가 합당한 이유를 확실히 하고 싶었다. 이야기는 치열하게 흘렀다. 가족들은 나를 이해시키려고 서로 시합을 벌이는 것 같았다. 시동생 오메르가 말했다.


“누나, 아브라함 사도의 이야기 알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려고 첫째 아들이었던 이스마엘(성경에서는 이삭)을 희생하라고 명령하셨고, 아브라함이 아들을 죽이려는 순간 하나님이 이스마엘을 대신할 양을 보내주셨던 사건이요.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무슬림들이 양을 도살하는 거예요.”


“그래, 나도 그 이야기는 알지. 그런데 엄청 오래전에 있던 일이잖아. 왜 지금까지 그 전통을 지켜야 해? 지금은 양 말고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버님은 내 질문을 이해하신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딸아, 쿠르반 바이람 때 양을 도살하는 건 무슬림의 의무 사항은 아니야.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든 그 말씀을 따르겠다고 결심하는 거지. 그러니까 쿠르반 명절을 보내면서 내가 내려놓아야 할 나의 고집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동물을 도살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고기를 사 먹을 수 없는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기 위한 것도 있어. 우리 가족만 먹을 거라면 왜 양 두 마리를 샀을까? 그리고 꼭 고기가 아니어도 괜찮아. 돈이나 물건으로 기부해도 되거든. 중요한 건,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결심이야.”


쿠르반 명절의 아침이 밝았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양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뛰쳐나갔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양들은 그저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나와 아이를 제외한 시댁 식구들은 칼, 도마, 매트, 스테인리스 대야 같은 것들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나는 양의 희생이 진행되는 동안 꼼짝없이 집 안에만 있을 계획이었다. 죽음이란 나에게 아직은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어서 생과 사의 현장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양의 죽음을 보거나 괴로워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 양으로 만든 음식은 결코 입에 댈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에게도 밖에 나가지 말고 안에 머무르라고 말했다. 트라우마로 남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아이는 그 장면을 보고 싶다며 멀리 서라도 볼 수 있느냐고 오히려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남편과 상의한 후 그러도록 했다. 대신 무서워지면 언제든 내 곁으로 오라고 했다. 물론 아이는 단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알라 후 아크바르!”


아버님의 기도 소리와 함께 희생 의식 시작됐다. 나는 양이 바둥거리거나 신음 소리를 낼까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막았지만, 고요했다. 마음의 짐이 툭 하며 내려앉았다.


무슬림들이 동물을 잡는 때에는 몇 가지의 기준을 따른다. 하나, 유일신을 믿는 신자(이슬람교, 기독교, 천주교, 유대교)가 현장에 있어야 하고, 둘, 고통 없이 빠르게 도살되어야 하며, 다른 동물이 죽는 모습을 보아서도 안 된다. 셋, 몸에서 피를 전부 빼내야 한다. 시댁 식구들은 이러한 방법대로 엄격하게 양을 도살했다. 죽은 동물의 몸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고, 양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허투루 버려지는 부위가 없도록 알뜰하게 분리해 나누었다. 이 작업은 5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작업이 끝난 후 가족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고된 수행을 막 마친 수행자들 같았다.



아이는 어느새 집에 들어와 있었는데,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소파에 박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자는 건가 싶어 살짝 흔들었더니,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 왜 이렇게 하고 있는 거야?”


“나 기도하는 중이야.”


“기도를 한다고? 무슨 기도를 하는데?”


“나 하나님한테 기도하고 있지. 양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어. 그리고 양한테도 기도 했어. 나에게 고기를 줘서 고맙다고. 이제 고기 남기면 안 되겠다 엄마.”


아이의 말을 듣자 내 머릿속에서 작은 폭죽 같은 것이 터졌다. 나는 한동안 우리가 소비하는 고기에 대한 꺼림칙한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고기를 먹을 때마다 이 고기가 나에게 어떻게 왔는지 자꾸만 상상했다. 그렇다고 단번에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채식주의자가 환영받지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데, 고기를 먹일 수 없다면 내 육아는 몇 배 더 힘들어질 것이었고, 가끔 고기를 먹는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도 마냥 유쾌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아이의 기도는 나에게 대안적 시선을 열어주었다. 고기에 대한 나의 거부감이 어떤 방식으로 죽어나갔을지 모를 동물들로부터, 고기를 대량 생산해 내고야 마는 불투명한 방식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동물들이 어떤 조건에서 성장하고, 어떻게 죽는지 그 과정을 투명하게 알 수 있다면, 우리는 고기를 함부로 소비하거나, 지금보다 덜 버리지 않았을까. 게다가 어쩔 수 없이 고기를 소비해야 한다면, 동물들이 더 건강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동물이 희생되는 장면을 마주하며 우리가 얻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생명의 소중함이었다. 우리가 먹는 것, 누리는 것에 대한 시선의 각도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자, 이제 이 고기를 나누러 가자!”



어머님은 신선한 양고기를 부위별로 골고루 섞어 몇 개의 봉투에 담았다. 우리는 이웃들의 집을 찾았다.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자식들은 모두 다른 도시로 떠난 이웃의 집도, 혼자 명절을 보내야 하는 독거 할머니의 집도, 양을 구매할 돈이 없어 양을 도살할 수 없었던 이웃의 집도 찾았다.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이웃들은 따뜻하게 안아주며 왼쪽, 오른쪽 뺨을 맞대며 인사를 해주었다. 고기를 나눠주는 우리를 위해 두 팔을 벌려 하나님께 축복의 기도를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음식을 남기고 싶은 유혹에 휩싸일 때마다 나와 아이는 쿠르반 명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동물의 희생을 기억한다.


“엄마, 나 배부른데, 오늘도 다 먹어야겠지?”


“응, 그럼. 알면서 뭘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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