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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ee Sep 15. 2024

추석


세상에나. 추석이 다가왔는데

아직도 밖은 후덥지근하다.

나는 요즘 외출을 거의 안 해서,
고양이들이 창밖을 볼 수 있도록 창문을 열 때

훅 들어오는 뜨거운 공기로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덥구나.

건강을 위해서 산책도 나가보려 마음먹고 나갔다가,

3초 후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현관 밖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찜기 속의 만두가 된 느낌이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작가가 되겠다고 사방팔방 외치고 다닐 땐 언제고

막상 수많은 창작자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나를 상상하니,

'잘 팔려야' 하는 이야기가 도무지 안 나왔다.

단 한 글자의 글도, 단 한 점의 그림도 그릴 수 없었다.



인간 삶이 다 그렇다지만,

이 모든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 생각이 들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작가란 뭐지? 자신의 책을 출간한 사람?

책을 내고 나면 또 뭐? 그 뒤에 뭐가 있는데?

작가 소리를 들으면 또 뭐? 뭐가 대단한데?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세상에 작가가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하는지 알겠다.

왜 거금을 주고

결혼정보 회사에까지 가입해서

결혼을 하려는지 알겠다.

왜 그렇게 배 아파가며 제 몸 상해가며

비합리적인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지 조금은 알겠다.

자식을 잘 키워놓고

손자 손녀 재롱떠는 맛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반면 다 늙어서

허리는 굽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한

백발의 외로운 할머니가

혼자서 그간 출간한 책을 끌어안고


"이게 내 가족이야.

이게 내 아들, 딸이고, 손주고, 내 손녀야."


노망났다고 하겠지.


하긴, 사주팔자 보는 사람들은

그간 쓴 책과, 논문까지도

'아이'로 가정하고 해석한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노년의 나는 어떠할까.

'아이'가 많은 할머니일까.

여전히 미래를 걱정하는 늙은이일까.

그때가 되면,

다가올 미래란 죽음밖엔 없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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