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나. 추석이 다가왔는데
아직도 밖은 후덥지근하다.
나는 요즘 외출을 거의 안 해서,
고양이들이 창밖을 볼 수 있도록 창문을 열 때
훅 들어오는 뜨거운 공기로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덥구나.
건강을 위해서 산책도 나가보려 마음먹고 나갔다가,
3초 후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현관 밖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찜기 속의 만두가 된 느낌이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작가가 되겠다고 사방팔방 외치고 다닐 땐 언제고
막상 수많은 창작자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나를 상상하니,
'잘 팔려야' 하는 이야기가 도무지 안 나왔다.
단 한 글자의 글도, 단 한 점의 그림도 그릴 수 없었다.
인간 삶이 다 그렇다지만,
이 모든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 생각이 들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작가란 뭐지? 자신의 책을 출간한 사람?
책을 내고 나면 또 뭐? 그 뒤에 뭐가 있는데?
작가 소리를 들으면 또 뭐? 뭐가 대단한데?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세상에 작가가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하는지 알겠다.
왜 거금을 주고
결혼정보 회사에까지 가입해서
결혼을 하려는지 알겠다.
왜 그렇게 배 아파가며 제 몸 상해가며
비합리적인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지 조금은 알겠다.
자식을 잘 키워놓고
손자 손녀 재롱떠는 맛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반면 다 늙어서
허리는 굽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한
백발의 외로운 할머니가
혼자서 그간 출간한 책을 끌어안고
"이게 내 가족이야.
이게 내 아들, 딸이고, 손주고, 내 손녀야."
노망났다고 하겠지.
하긴, 사주팔자 보는 사람들은
그간 쓴 책과, 논문까지도
'아이'로 가정하고 해석한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노년의 나는 어떠할까.
'아이'가 많은 할머니일까.
여전히 미래를 걱정하는 늙은이일까.
그때가 되면,
다가올 미래란 죽음밖엔 없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