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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ee Sep 22. 2024

'Being Me'

'being'이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번역하기 참 힘들다.

혹자는 '그게 뭐가 어려워'라고 말하겠지만

내게 있어 being 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에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유학하며 보냈다. 

2년 반에서 3년 정도 되는데, 7년 10년 다녀온 사람들이 수두룩해서 내세우긴 부끄럽다.

오래됐기도 하고.


99%의 인구가 백인으로 이루어진 규모가 작고 응집된 마을에서

전교생이 백 명이 채 안 되는 아주 조그마한 미국 사립학교를 다녔고

미국인 호스트 가정에서 생활하다 보니

'강제로 영어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영어를 꽤 자연스럽게 배웠다.

대학마다 딸려 있는 ESL 어학원에서

한국인들끼리만 어울리고 시험 족보를 공유하고

일상에서 쓰는 영어라고는 yes or no뿐이라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귀국하는 사람들을 꽤 목격한 나로선,

오히려 고립되었던 그 환경에 감사한다.


호스트 엄마가 물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기분이 어떠니?"

나는 대답했다.

"아예 다른 행성으로 가는 것 같아요."


미국에 호스트 가족이 있다.

미국 학교도 다니고 미국인 친구들과 얘기한다.

그 나라에 맞는 애티튜드를 익힌다.

그 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는다.


여름방학마다 한국에 머물렀다.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거리를 거닌다.

한국의 예의범절에 따른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드라마, 아이돌에 대한 얘기를 한다.

그냥 다른 삶이다. 말투도 성격도 표정도 달라진다.

두 개의 자아가 생긴다.

이제 와서 이러한 차이를 나열하는 건, 

미국에서의 나는 'being' 이 뭔지 감이라도 잡았던 것 같아서다.


미국에 머무르며 느낀 게 아니라,

한국으로 돌아와 십 년가량 살아가면서 느끼게 된 거다.


한국은 길이 하나다.

공부 - 대학 - 취업 - 결혼 - 임신 - 육아까지.

몇 살에 졸업하고 몇 살에 결혼하고

몇 살에는 돈 이만큼을 모아야 하고

그 정도 나이 됐으면 집 하나 있어야 하고...

여기서 방향을 틀면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린다.

도태된다.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불안해한다.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은 상태'를.

정답은 오로지 하나고 나머지는 전부 오답인 세상.


미국에선 정해진 답이 없었다.

삭발을 하고 싶으면 하고, 대학을 나중에 가고 싶으면 나중에 가고,

결혼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되고...

화장을 안 해도 되고, '관리'도 안 해도 된다.


한국에선 빼빼 마른 몸에, 승모근 없는 일자 어깨, 

팔자주름을 필러로 관리해 줘야 하고 

흉통이 크네 작네, 바디쉐입과 퍼스널 컬러...

얼굴이 늙어가는 걸 두려워하며

허벅지의 지방을 빼서 이마에 채워 넣는다.

'늙지 않는' 4~50대 여자 연예인을 동경하며

'관리'하는 삶을 평생 살아간다.


미국에서는 내 쌍꺼풀이 짝짝이인지 아닌지,

내 눈썹 모양이 어떻든지, 내 피부색이 어떻든지,

내 입술색이 어떻든지, 내 종아리에 알이 있는지 없는지

내 승모근이 솟아 있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지 않았다. 

바로 이걸 'Being'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어떤 것에도 영향받지 않고 염려하지 않으며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그런 너도 한국에 살면서 화장하고 다이어트하고 할거 다 하잖아?"

라고 말하겠지.


맞다.

맞아서 문제다.

난 아직 'Being' 을 이루지 못했다.


모두가 네모인 세상에서 나 홀로 어떤 모양으로 있어야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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