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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슬 Oct 09. 2024

4. 그곳에서 나를 괴롭혔던 건 (2)

괜찮아, 스물넷이야

괜찮아, 스물넷이야

4. 그곳에서 나를 괴롭혔던 건 (2)








서울로 재임용을 결심한 두 번째 이유는, 평생 무연고지인 곳에서 넓게 돌고 돌며 근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점점 더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 여긴 너무 답답하다! 서울로 가자! 7월 중순, 임용고시 전 가티오가 발표되고 올해 서울이 50명을 뽑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8월부터 본격적으로 재임용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2학기 개학 후 슬슬 전에 공부했던 임용 책들을 들춰보고 있던 때였다. 아직 8월인데도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전보 내신’이었다.


“부장님, 부장님도 내신 쓰실 거죠?”

“그럼. 집이랑 더 가까워져야 좀 살만하지, 원. 여긴 교통이 너무 안 좋아서 출퇴근 때마다 죽겠어. 관내로 쓰려고.”

“저는 관외로요. 집이 수원이라 수원으로 써보려고요.”

“그래? 점수는 몇 점인데?”

“3점이요.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요.”

“그치.”


급식을 먹을 때마다 이런 얘기가 오고 갔다. 이상하게 나는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점점 더 울고 싶어졌다. 시험에 합격하고 첫 발령을 받은 기쁨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였다. 관내는 뭐고 관외는 또 뭐야. 전보 내신이란 거, 대체 얼마나 어렵고 머리 아픈 거길래 저렇게 경력 많으신 부장님들도 한숨 푹푹 쉬시면서 걱정하시는 거야?


용어가 낯선 독자들이 많을 테니 짚고 넘어가겠다. 전보 내신이란, 공립학교 교사들이 근무 학교를 옮기는 것을 말한다. 시도별로 자세한 기준은 다르지만 경기도의 경우 한 학교에 2년 이상만 근무하면 자유롭게 내신서를 제출할 수 있다.


관내 내신이란, 같은 교육지원청 안에서 학교를 옮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남교육지원청의 A학교에서 B학교로 옮기는 것과 같다. 관내의 경우 가고 싶은 학교를 지정하여 1, 2, 3순위까지 작성할 수 있다.


관외 내신이란, 아예 다른 교육지원청으로 학교를 옮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남교육지원청의 A학교에서 부천교육지원청의 B학교로 학교를 옮기는 것과 같다. 관외의 경우 가고 싶은 학교를 지정할 수 없고, 옮기고자 하는 목표 교육지원청의 기존 교사들이 관내 전보를 마친 뒤 자리가 남는 학교로 발령을 받는다.


관내든 관외든 전보 성공과 실패의 판가름을 하는 것은 해당 교사의 내신 점수이다. 내신 점수는 현 소속교에서의 근무 기간으로 계산한다. 김 교사가 A학교에서 3년을 일했다면, 내신 점수는 3점이다. 만약 김 교사가 수원교육지원청으로 관외 내신을 신청하였는데 수원교육지원청의 빈자리가 20명이고, 수원 근무를 희망하는 30명의 교사들 중 내신 점수가 20위인 교사가 3.5점이라면, 점수가 3점인 김 교사는 아쉽지만 실패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떨어지면 여길 또 한 시간 반 넘게 매일 출퇴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네.”


머리가 희끗희끗한 부장님들도 이런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 엄청난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나도, 저 나이대가 되어서도 저런 스트레스를 정기적으로 받고 살게 되는 건가? 그제야 수험생 시절 사람들이 임용 카페에서 수없이 질문하던 ‘도 지역 어떤가요? 너무 넓어서 힘들진 않나요?’의 의미를 알게 됐다. 생각보다 정말 중요한 문제였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도 혹여 집에서 너무 멀리 발령받진 않을까, 하는 고민을 매 전보 때마다 해야 한다니. 서울이나 인천, 부산 등 전체 면적이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는 시 지역에서는 크게 고민되지 않는 지점이 도 지역에서는 꽤 심각한 생존의 문제였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더더욱 더 늦기 전에 서울로 떠나는 것이 맞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그렇게 생각한 날 자취방에서 홀로 저녁식사를 하고 책장을 넘기는 내 손에는 조금 더 다부진 힘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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