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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슬 Oct 26. 2024

5. 인생 첫 실패

괜찮아, 스물넷이야

괜찮아, 스물넷이야

5. 인생 첫 실패







솔직히, 떨어질 줄 몰랐다.


나는 대학교에 재학하며 공부해 초수로 임용고시에 합격한 초수 합격생이었다. 그것도 커트라인이 늘 전국 1, 2위를 다투는 경기도 지역 초수 합격생. 아주 없진 않지만 매우 드문 경우다. 게다가 초수인데도 100명 중 10등 초반대의 등수를 받았다. 만약 경기도가 아니라 서울에 지원했더라도 합격권인 점수였다.


그래서 정말 떨어질 줄 몰랐다.


첫 번째 서울 재임용 시험의 1차 발표가 있던 날, 교무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노트북 밝기를 최하로 낮추고 화면을 보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글귀를 눈에 담았다.


1차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잠시 머리가 멍했다. 손발이 약하게 떨렸다. 심장은 미친 듯이 울렁거렸다.


화장실에 가서 가만히 손을 씻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냈다.


떨어졌어요.


가족 대화방에 그렇게 보내고 잠시 고민하다 몇 마디 더 덧붙였다.


컷보다 2점 낮아요. 그때 말했던 2점짜리 하나 때문에 똑 떨어졌네요.


일부러 밝은 말투로 말했다. 아주 기초적인 난이도의 단답형 문제를 틀린 것에 대해 그동안 ‘이거 때문에 떨어지면 엄청 억울하겠다’하고 농담처럼 말해왔었다. 그런데 그 농담이 정말로 현실이 된 것이다. 이래서 말은 씨가 된다고,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건가 보다 싶었다.


괜찮아요. 우리 딸 파이팅!

아깝다. 고생했다.

수고했어! 우리 딸. 힘내!


아빠, 오빠, 엄마가 간격을 두고 차례로 답장을 보냈다. 학교에서는 괜찮았다. 어쨌든 나는 그 순간도 여전히 교사였고, 당장 다음 교시에 들어가야 할 수업이 있었고,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었으니까. 내가 재임용 시험에 응시했다는 사실조차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학교에서 무뎌졌던 딱 그만큼, 퇴근 후 자취방에 홀로 남았을 때 완전히 무너졌다. 시험을 보고 온 후 구석에 뒀었던 시험지를 펼치고 인터넷에 올라온 모범 답안과 내 답을 대조해보았다. 더듬거리며 기억을 되짚었다.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틀린 문제가 없는데. 어디서 그렇게 감점된 거야? 이상해. 억울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전화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그토록 참았던 울음이 형편없이 왈칵 터져 나왔다.


“아빠, 이거 이상해. 진짜 이상해.”


나 그렇게 감점받을 정도로 틀린 건 크게 없는 것 같은데. 채점위원이 이상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나 억울해. 나 열심히 했는데, 진짜 힘들었는데. 너무 억울해.


“이제 어떡해?”


눈물과 함께 마음이 찬찬히 부서져내렸다. 이제 어떡하지? 평생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버티듯 일하며 지내야 하는 건가? 다시 도전한다고 해도, 또 떨어지면? 그동안 나는 내가 영어를 잘하는 건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으면? 첫해에 합격했던 건 순전히 운이었다면?


앞으로 나는 어떡하지? 평생 실패자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내 스물둘의 마지막 순간들을 무겁게 짓눌렀다. 내 생일은 12월 말이다. 그렇게 끝없는 암전인 것만 같은 절망 속에 침전된 채 최악의 스물셋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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