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윤슬 Oct 26. 2024

7. 두 번째 성공

괜찮아, 스물넷이야

괜찮아, 스물넷이야

7. 두 번째 성공






다시 도전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얼마 뒤, 초수 시절 함께 경기도에 합격했던 대학 동기를 만났다.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진 동기는 내 이야기를 가만히 경청하더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었다.


“야 윤슬. 너 장수생 하기 싫으면 2월부터 얼른 공부 시작해라.”


예나 지금이나 인생의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친구의 날카로운 조언 덕에 겨울방학을 맞아 조금 해이해졌던 정신을 번쩍 차리고 2월부터 곧바로 다시 재임용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체력이 아주 약하다. 운동도 즐겨 하지 않는다. 남들이 하루에 열 시간을 공부할 동안 나는 다섯 시간도 겨우 겨우 해냈다. 그런 내 몸을 내가 제일 잘 알기에, 적절한 일 년 공부 전략을 세웠다. 바로 ‘무리하지 않고 하루 딱 한 시간만 공부하기, 그러나 휴일은 없이’였다.


교사의 퇴근은 빠르다. 4시 반에 교무실 문을 나서고 15분 정도 운전해 달리면 자취방에 도착했다. 씻고,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집안일을 한 다음 조금 쉬고 나면 금세 7시가 되곤 했다. 그럼 그때부터 책상에 앉아 딱 한 시간 공부를 하는 것이다. 머리가 잘 굴러가고 유달리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두 시간에서 세 시간도 하곤 했지만, 주로 한 시간만 정확하게 공부하고 푹 휴식을 취했다.


공부하는 동안 폭신한 침대의 유혹이 없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하지만 다행히 내 자취방은 복층 구조여서 마음만 먹으면 자기 직전까지 침대 매트리스가 있는 2층까지 아예 발도 들이지 않을 수 있었고, 실제로 나는 그렇게 했다. 하루종일 서서 수업을 하고 업무를 보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었지만, 나와 약속한 한 시간만큼은 꼭 공부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내 유리체력에 맞춘 이 루틴은 일 년 내내 성공적으로 이어졌다. 수험생이 하루에 한 시간밖에 공부를 안 한다니, 남들이 보기엔 턱없이 적은 시간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에겐 최고의 전략이었다. 정석이 어떠하든 간에, 각자의 상황에 맞게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보는 방법도 충분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는 젊은 선생님들이 많았다. 특히 퇴근 후에 함께 식사나 술자리를 통해 사적인 교류를 많이 가졌던 동료들에게는 반절쯤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나 요즘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한 달에 한 번씩만 모임 참석할게.”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어처구니없는 말인데도 당시의 내가 얼마나 피곤하고 비실비실해 보였으면 동료들이 흔쾌히 오케이를 해줬을까 싶다. 그렇게 반년 정도를 지내다 9월 즈음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나 사실 서울로 재임용 시험 보려고. 작년에도 봤는데 떨어져서 올해 다시 봐. 그래서 그동안 자주 못 나왔던 거야. 미안.”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간다는 듯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리던 동료들이 기억난다. 그 순간 그들에게 조금 더 끈끈하고 애정 어린 전우애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하면 과장인가? 초임 발령지는 나에게 분명 힘든 공간이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만큼은 정말 소중한 인연이 많아 감사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작지만 최선을 다했던 일 년을 보내고, 두 번째 서울시 재임용 시험을 치렀다. 1차 시험 결과는 2교시 수업을 마무리한 뒤 학생들에게 5분 정도 자유시간을 주고 교탁에서 몰래 노트북으로 확인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커트라인보다 5점이나 높았다. 학생들이 있어서 좋은 티도 대놓고 못 내고 얼마나 입꼬리를 씰룩거렸는지 모른다. 종이 치고 부랴부랴 교무실에 들어가서 옆자리 친한 선생님에게 귓속말로 소식을 알렸다. 나 합격했어!


선생님이 씩 웃으며 날려주던 따봉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이어진 1월, 한 달 동안 2차 시험을 위한 수업 실연과 영어 면접 준비에 매진했다. 겨울방학 전에는 2주 정도 학교 근무까지 병행해가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했다.


1월 말, 이틀간 2차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2월 초,



최종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문장을 보았다.

서울 지역 한 자리 등수대였다.



“저 합격했어요.”


방문을 열고, 내 결과를 기다리던 거실의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눈물까지 맺혀가며 웃었다. 나도 마주 웃으며 엄마를 꼭 안아줬다.


아빠에게도 메시지로 소식을 전하자 1초 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내 연락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나는 전화 너머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활짝 웃었다.


나에 대한 내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해내.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해내.


그건 앞으로 한없이 펼쳐질 내 인생의 뿌리가 되어줄, 견고하고 푸르른 씨앗 같은 것이었다.




이전 06화 6. 최고의 신뢰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