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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슬 Oct 27. 2024

9.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 찾아야만 했다

괜찮아, 스물넷이야

괜찮아, 스물넷이야

9.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 찾아야만 했다






새 학교, 새 동료, 처음 맡아보는 학년과 업무.

2024년의 봄은 이것들만으로도 숨이 차고 마음이 무거웠다.


더 이상은 도망칠 곳도 없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2년이면 다른 학교로 근무지를 옮길 수 있는 경기도와 달리 서울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5년 동안 한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우리 학교는 비슷한 규모의 타 학교에 비해 교원 수가 적어 1인당 업무량과 수업 시수가 많다. 올해는 그나마 신규여서 배려를 많이 받은 것이었단 사실을, 5월쯤 되고 주변 선생님들을 보며 깨달았다. 내년부터는 도대체 어떻게 4년을 버텨야 한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정말 막막하고 토할 것 같았다.


사기업도 아니고 고작 학교인데, 그까짓 업무 정도로 뭐 그러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애초에 행정 업무 처리에 있어서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대기업 임원직까지 마치고 퇴직하신 아빠가 어릴 적부터 나에게 걱정을 담아 이런 말을 달고 살았을 정도이니. “넌 회사 일하면 오래 못 버텨. 다른 능력을 발휘하고 살 수 있는 직업을 생각해보자.”


그게 교사였다.


다른 능력이라고 함은 또래보다 조금 더 좋았던 내 영어 실력이었고.


모든 걸 만족하는 영어교사라는 완벽한 직업을 찾았는데도, 나는 여전히 왜 이렇게 힘이 들까.



초임 시절부터 ‘교실에서의 나’라는 자아에 대하여 미묘하게 어떠한 어긋남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하고 서울 재임용에만 열정을 쏟았었다. 그렇게 모든 환경적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올해, 여전히 어긋남은 계속되었고 나는 드디어 적극적으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매일 밤, 다음 날 학교에 가는 것이 싫고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났다. 아침에는 출근 준비를 하며 옷을 입으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대체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 나를 위해서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스스로 들여다보며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의 상당 부분은 심리상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몇 년 전부터 늘 상담을 받아봐야겠다고 생각만 해오다가 실제로 실천에 옮긴 것은 올해 3월 중순이었다.


학교도 힘들고, 사적으로도 힘든 일이 겹쳐 새벽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베갯잇에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충동적으로 전에 찾아두었던 상담 센터에 예약을 잡았다. 날짜는 당장 이틀 뒤였다. 첫 상담 날, 나는 50분 내내 울었다.


말이 술술 나왔다. 하고픈 속 얘기가 정말 많았구나. 사실 놀라지 않았다. 말이 술술 나올 줄도 알고 있었고, 울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저 이 이야기들을 온전히 털어놓을 상대가 없었던 거라고 늘, 늘 혼자 생각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총 25회기 정도 꾸준히 상담을 받았다. 학교 일에 관해서도 선생님과 함께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째서 나는 학교라는 공간이 그리도 숨이 막히는지, 왜 그곳에서는 진정한 나로서 존재하지 못한다고 느끼는지,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떠한 곳에서 어떠한 나로 존재하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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