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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상처를 마주하는 순간

3-2. 나를 위한 알아차림

by 이 순간


나는 나만이 치유할 수 있다.

이건 내가 자주 되뇌는 말이다.


부모와 자식의 사이는 오래된 강물처럼

흐름은 달라져도, 그 물줄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녀가 셋인 상담교사 동료가 말했다.

친정엄마가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대해줄 때면, 자신은 어릴 적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 괜히 아이들에게 화를 내게 된다고 했다.


친정엄마 보라고, 자신이 예전 엄마처럼 아이들을 혼내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행동은 늘 아이들을 향했다.

그녀는 상담자이기에 자기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고, 과거의 조각과 현재의 감정을 소화해 내려고 애썼다.

사실 이런 노력은 상담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자연스레 내 부모님과의 관계를 떠올렸다.

그 당시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었지만, 그 감정의 결은 이해할 수 있었다.


상담을 배우며 나 역시 부모님께 품고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 이야기해 보았지만, 어머니는 늘 내 눈을 피했고 아버지는 “나는 그런 적 없다”며 부정했다.

울며 이야기해도 외면당했고, 몇 번은 말로 서로를 공격하다가 관계에 금이 가기도 했다.

그 후로는 꺼내기 어려웠다.






결혼과 출산 후, 나는 부모님과의 거리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복직을 앞두고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고민했다. 물리적으로 가까워지는 일이 내 마음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게 걱정이었다.


가까이 지내면 나는 평소의 내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를 챙기며 과하게 행동하거나, 과거 부모님께 받았던 감정을 아이에게 투사할까 두려웠다.


내 안의 깊은 응어리를 꺼내지 못한 채, 과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수없이 자문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선택지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친정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고,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가까운 생활이 시작됐다.


부모님이 아이를 봐주시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자식이기에 가능한 무조건적인 사랑, 말 그대로 ‘내리사랑’이었다.

하지만 감사함과 동시에 힘들었다.


가까이 지낼수록 어린 시절의 슬픔이 다시 떠올랐다.

목 끝까지 차오른 감정을 꾹꾹 눌러야 했고, 몇 번은 참지 못하고 내뱉기도 했다.





아이를 돌보며 부모님은 손녀들에게 모든 걸 퍼주었다.

갖고 싶다는 건 다 사주고, 심지어 팔지 않는 물건까지 어떻게든 구해다 주셨다.


그 모습을 보며 어느 날은 내 아이가 부럽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동네 주민이자 직장 동료였던 선생님이 “친정아버지가 너무 다정하시다”며 나도 그렇게 자랐을 거라고 부러워했을 때, 나는 웃었지만 내 안의 어린아이는 울고 있었다.


그 마음은 복잡했지만 치유하고 싶었다.

아마 많은 이들이 부모와의 관계 앞에서 같은 마음을 품지 않을까.






얼마 전, 한 전문가 동료가 말했다.

조부모가 손주에게 퍼주는 사랑은 젊었을 적 자식에게 미처 주지 못했던 걸 손주에게 투사해 퍼주는 거라고.

그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이제는 70이 넘은 부모님께 내 상처를 꺼내 사과받고 대화로 치유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분들 역시 자신도 모르는 미안함을 손주에게 흘려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며 생긴 여유와 사랑을, 그렇게 대신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를 낳고 나니 부모님이 이해된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이해는 되기에, 그래서 더 서럽기도 하다.

부모님을 이해하는 순간, 내 안의 어린아이도 동시에 울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부모님도 그 시절,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이 아는 만큼, 배운 만큼, 본 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걸.






상처를 알아차리는 일은 부모와의 관계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과거의 그림자를 반복하곤 하기에,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나 자신을 위한 알아차림을 하려 한다.

과거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이 오늘의 나와 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누구나 부모와의 관계에서 받은 감정을 자녀에게 흘려보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상처가 되물려지지 않도록 애쓴다.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것이 내가, 내 삶에서 택한 치유의 방식이다.




앞으로 이어질 3장은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은 부분입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화요일과 목요일, 주 2회로 나누어 올리며, 제 안의 과정을 조금 더 차분히 나눠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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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