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내 마음을 먼저 봐야 할 때
얼마 전, 동료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 견디기가 어렵다.”
몇 년 전부터 교직 현장에서도 교권 침해, 학부모와의 소통 문제, 복잡한 학생 상담 등으로 고통받는 선생님들이 부쩍 많아졌다. 게다가 대부분은 워킹맘으로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쉼 없는 줄다리기를 한다. 직장에서 쌓인 피로가 가정까지 번지고,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마음이 한계에 닿는다.
내 주변에서도 상담을 받거나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는 동료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예전에는 조심스럽게 숨기곤 했던 상담도 이제는 오히려 서로 권유하는 모습도 종종 보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순간, ‘너무 버겁다’는 신호를 받는다.
어떤 이는 몸의 피로로, 어떤 이는 마음의 공허함으로, 또 다른 이는 설명할 수 없는 눈물로 그것을 감지한다.
나 역시 그랬고, 그 과정이 이 글들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상담실의 문을 두드렸다.
나의 두 번째 상담 선생님은 임상심리전문가였다. (이전의 학생상담센터 상담은 횟수에 넣지 않았다.)
30대의 끝자락에서 만난 그분은 퇴직 후 개인 상담소를 운영하셨고, 매번 그곳에서 나를 기다려주었다. 상담은 편안했지만 동시에 적당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들었다.
그 당시 나는 인간관계에 지쳐 있었다. 육아와 직장, 주변 사람들과의 소진 속에서 내 사고는 엉켜버렸고, 무의식은 어린 시절의 응어리를 끊임없이 소환했다. 부모님의 말 한마디에도 쉽게 뒤흔들리고, 내 경계선은 자꾸 희미해졌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나이 마흔이 다 돼서도 부모에게 휘둘리지 마라.
이 순간, 너는 너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늘 학생을 상담할 때는 신중하게 말과 질문을 고르지만, 내담자가 되었을 땐 감정이 휘몰아치며 엉켜버렸다.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알게 됐다.
나는 오직 ‘나’로 살고 싶다는 것을.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늘 ‘자신을 먼저 돌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 그 말을 적용하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나를 대신해 나를 돌봐줄 사람은 없다.
가족의 문제도, 직장의 일도, 관계의 갈등도. 각자의 이유는 달라도 감당하는 건 결국 내 몫이다.
누구나 삶의 무게에 주저앉을 수 있다.
내 주변의 한 지인은 직장의 인간관계에 크게 지쳐 결국 이직을 선택했다. 하지만 새 직장에서도 다시 같은 벽 앞에 서야 했다. 환경을 바꿔도 마음의 짐은 여전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힘든 상황에서 전학을 바라지만, 새로운 학교에서도 비슷한 어려움에 부딪히곤 한다.
나 역시 버티다 못해 무너진 순간에야 ‘이젠 나를 챙길 때구나’라는 느낌을 감지했다. 그 작은 자각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곧 다시 일어서는 시작이었다.
혼자서는 버거울 수도 있다. 그럴 땐 상담이나 치료, 친구의 지지를 받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나를 돌보는 건 결국 나의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돌볼 때, 그 힘은 내 곁의 사람들에게도 흘러간다.
내 삶을 짊어지는 것은, 언제나 나다.
타인을 돌보고,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늘 다른 이들을 먼저 챙기느라 정작 나 자신을 가장 뒤로 미뤄 두진 않았는지 돌아볼 시간이다.
내 안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고, 맑은 내 모습을 다시 만나는 것.
그것은 마치 뿌연 유리창을 깨끗이 닦아낸 듯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나를 돌보는 일은, 내 삶을 맑게 정화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