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질투 속에 숨어 있는 마음
우리는 종종 타인을 통해 나를 알게 된다.
점심시간, 몇몇 여학생들과 상담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학생들이 상담실을 찾는 이유는 절반쯤은 그냥 놀러 오는 재미로, 절반쯤은 선생님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다.
그중 한 학생이 옆 반 남학생을 좋아하게 됐다며 수줍게 고백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학생은 “이제는 다른 애가 좋아졌어요”라며 웃으며 찾아왔다.
마음의 방향이 금세 바뀐 것이 스스로도 신기한 듯, 수줍고 들뜬 얼굴이었다.
아이들을 보며 문득 대학 시절의 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몇몇 친구들과 가까이 지냈고, 복학한 남자 선배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 무리 중 한 선배가 내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선배가 고백을 하겠다며 나섰고 우리는 자리를 피해 줬다. 유리창 너머로 그 장면을 몰래 지켜보며 우리는 예상했다. 사귀거나, 거절하거나. 그런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친구는 울고 있었고, 선배는 그런 친구를 안아주며 토닥이고 있었다.
들어보니, 친구는 전 남자친구와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졌고, 아직 마음이 남아 있다고 했다. 선배는 그런 친구를 이해했고, 그렇게 그들의 관계는 ‘썸’처럼 애매하게 이어졌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그 친구가 싫어졌다.
그 미움은 상담 공부를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실은 부러웠다는 것을.
결국 질투란, 부러움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우리는 종종 미움이나 질투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 친구, 동료 심지어 가족에게서도 그런 감정을 경험한다. 그런데 질투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던 건,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부러움일 때가 많다. 타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나의 부족함이나 바람을 발견한다.
나는 항상 딱 잘라서 생각했다.
연락을 계속하면 정이 드니까, 사귈 게 아니면 연락하지 않는 게 맞다고.
그게 마음을 덜 아프게 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애매한 사이를 불편해하지 않았고, 감정을 숨기지도 않았다.
감정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유연함이 있었다.
나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어장관리하는 사람'이라며 속으로 비난했지만, 사실은 내가 할 수 없던 걸 해내는 그녀가 부러웠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또 하나를 알게 됐다.
그 친구가 부러웠던 큰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의 전폭적인 사랑과 보호 속에 자랐다는 점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늘 조심스럽고 눈치를 보며 자랐지만, 그녀는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지와 관심을 받으며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운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보게 됐다.
그녀 역시 부모님의 강한 개입 속에서 자신의 선택보다 부모의 결정에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 선택하는 경험이 부족했고, 부모님의 판단이 모든 기준이 되는 삶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 SNS 속 반짝이는 삶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그걸 알게 된 뒤로 내 감정은 조금씩 정리되었다.
누구의 삶이든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연애사를 들으며 가끔 그 친구가 떠오른다.
누군가를 좋아했다가 실망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면서 마음이 편해진다.
관계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꼭 정답만 있을 필요는 없겠다고, 이제는 생각하게 된다.
내가 불편해했던 사람들을 통해 나는 내 감정의 뿌리를 배웠다.
내가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다뤄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상담자로서도 느낀다. 우리가 성장하는 순간은 관계 속에서 부딪히며 나를 새롭게 발견할 때라는 것을.
아이들이 “그 친구가 싫어요”라고 말할 때, 그 안에는 질투, 동경, 부러움이 얽혀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상담자의 역할은 학생이 스스로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다.
그래서 상담은 ‘관계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질투와 부러움조차도, 언젠가는 나를 성장시키는 또 다른 선생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