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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그러모아 쥐어봅니다

3-7. 사랑은 왜 원망과 닮아 있을까

by 이 순간



어머니를 그러모아 쥐어봅니다.


많은 아이들 속에서 만난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가 봅니다.






어머니께서 집을 나가신 어느 날은

짙은 새벽까지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웁니다.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 어머니를 맞이하지요.


돌아오지 않을까 떨리던 그 깊은 밤.

어머니도 저와 떨어진 어느 곳에서 많이 우셨겠지요.

늘 어머니를 기다리며,

밤은 저를 두고 가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어머니의 삶이 고될수록

저는 당신을 지키는 기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닮은 저는,

당신의 눈동자 안에서 가끔 악마였을지도 모릅니다.


책가방이 불타던 어느 날,

저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고 싶던 이에게 태워졌습니다.

책 한 권이 타는 불꽃에

제 마음은 잿빛이 되었고,

공책 한 장이 타는 불씨에

제 사랑은 흔적만 남았습니다.


불은 금세 사그라들었지만,

안의 그날은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습니다.






열여덟의 문턱에서,

어머니는 비밀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낳은 아이야.”


그 한마디는 제 어깨에 얹혀

당신과 나, 우리의 관계를 이해하게 했지만

동시에 저를 저로 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낳지 않은 아이를 품으며 살았지만,

낳은 자식에게는 더 차가우셨지요.

사랑은 언제나 모순의 얼굴을 하고 다가왔습니다.






어린 날의 저는 오롯이 어머니를 향해 살았습니다.

그 목마른 사랑은 가시지 않는 허기가 되었지요.


“너만이 삶의 이유라,

이 삶을 버리지 못한다.”

그 말에 그때의 저는

이 한 몸 바쳐 어머니를 위해 살고 싶었지만,


커버린 뒤에는

아버지에게서 단 한 번도 저를 지켜주지 못한

유약한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애정과 집착이 뒤섞인 그 모호한 손길은

저로 하여금 사랑과 허기조차

구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다 커버린 저는

날카로운 비수로

당신의 가슴을 수없이 멍들게 한, 못난 딸이었지요.

타버린 사랑은 원망과 미움이 되어

당신의 눈물샘을 막아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낳은 자식에게

온전히 기대고 싶어 하십니다.


저는 버텼던 시간만큼

한 걸음 물러서

온전한 ‘나’로 서 보려 했지요.


아직 다 맑진 않지만,

멀어진 만큼

한 줌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멀리 있어도

제 마음은 늘 당신을 향합니다.


끝내 강하진 않지만

이제는 어머니를 조금 안아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손을 모아,

어머니를 그러모아 쥐어봅니다.







청소년기의 나는,

축 처진 어깨, 바닥만 보는 느린 걸음의 아이였다.

누군가와 함께 할 땐

밝고 쾌활했으나, 혼자가 되면 마음에 고인 슬픔이 배어 나오곤 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내가 만난 수많은 아이들의 이야기와 닿아 있다.

사랑과 상처가 공존하는 자리에서, 아이들은 부모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멀어지고 싶으면서도 기대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순을 안고 자란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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