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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 없는 선택의 순간

3-9. 내 삶을 바꾼 작은 일탈

by 이 순간


나는 학생들에게 “선택은 자신이 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정작 나는 늘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가치관도 주변인에게서 배울 수 있다.

나에게는 삶을 바라보는 틀을 바꿔준 사람이 있다.


나보다 열한 살 많은 그녀는, 나와는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온 동료이자 친구다.

함께 근무했고, 함께 휴직했으며, 학교를 옮겼다가도 또 같은 학교에서 다시 만났다.

그만큼 자주 엮였고, 내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곁에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통제와 억압 속에 자주 갇히곤 했다.

상담을 통해 그 영향을 인식하긴 했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삶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았다.

무언가 달라지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마음을 놓는 순간, 나는 늘 과거의 패턴으로 되돌아갔다.

그런 시기에 그녀가 내 곁에 있었다.

그녀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나에게 큰 위로이자 현실적인 도움이 되어주었다.






나는 나와 자녀를 위해 부모님 집 근처에서 살았는데

가까이 지낸다는 건 너무 고마운 일이면서도, 편치만은 않은 일이었다.

끊이지 않는 간섭이 지금도 이어지는 건지, 아니면 과거의 그림자가 덧씌워진 건지. 나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때 그녀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허락은 어렵지만, 용서는 쉬워.

처음엔 그 말이 조금 도발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내게 꼭 필요했던 문장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 데 익숙했고, 허락받지 않은 뒤에 오는 벌이 무서웠다.

내 마음대로 선택하고 실행하는 건 늘 해명과 변명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녀의 말을 등에 업고, 나는 육아기간 중 큰 ‘일탈’을 감행했다.

친정아버지 몰래 10개월 된 둘째를 데리고 그녀와 부산으로 나들이를 떠난 것이다.

그녀는 “들키면 그냥 용서를 구하자”고 말했고, 우리는 그렇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그녀의 차를 타고 콧바람을 쐬러 다녀왔다. 아버지는 내 차에서 사라진 카시트를 보고 물으셨지만, 나는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넘겼다.


허락을 구하지 않은 첫 여행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삶의 방향을 조금은 다르게 잡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어떤 순간엔 곁에서 방향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작은 일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억눌린 삶을 살아온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곧 해방의 시작이 된다. 나에게는 그랬다.

부산에서 돌아온 뒤, 나는 처음으로 ‘허락 없는 선택’을 해본 사람이 되었다.

상담자로서 나는 그날의 경험을 내 삶의 작은 전환점으로 기억하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허락보다 용서”가 필요한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말이 된다.

중요한 건 그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통해 내가 생각하고 변화하고, 가치관이 전환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녀에게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그녀는 자신감이 있고, 호불호가 분명하지만 상처를 주지 않는다.

받은 만큼만 돌려주는 사람, 지나치게 친절하진 않지만 따뜻한 직관이 있는 사람이다.

학교라는 공간엔 똑똑한 사람이 많지만, 성격이 꼬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그녀는 그런 드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녀는 그녀 그대로였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장점을 알아보았다.

나는 먼저 다가갔고,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 덕분이었다.

지금도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면 그녀에게 묻기도 한다.

그런 그녀를 내 삶에 불러들인 건 결국 나의 선택이었다.

반짝이는 사람을 내 주변으로 끌어오는 것.

그게 안된다면, 내가 그의 곁으로 가자.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에도 그런 선택의 순간은 찾아온다.

누구를 곁에 두고, 무엇을 배울지. 그 작은 선택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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