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사랑은 타고나는 걸까, 배우는 걸까?
나는 늘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한 아이였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다.
어릴 적 부모와의 애착 경험은 사랑을 주고받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안정애착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평생 사랑을 꺼내지 못하는 건 아니다.
성인이 된 뒤에도, 새로운 관계와 학습을 통해 사랑은 충분히 배울 수 있다.
나는 책에서, 또 타인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 하나가 ‘사랑을 표현하는 법’이었다.
어릴 때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살아가면서도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릴 적 나는 부모님께 손 편지를 수없이 썼다.
편지마다 사랑이 가득했다. “성공해서 꼭 부모님을 모시겠다”는 다짐, 아버지, 어머니의 고생에 대한 감사. 그리고 미안해 울면서 쓴 고백까지 담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표현은 멈췄다. 25살 이후로는 부모님께 사랑의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왜 그랬을까.
나는 사랑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니라, 받고 싶었던 것이다.
상담을 받으며,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스물다섯의 나이에 처음으로...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말했다.
내 기억 속 엄마는 “사랑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물론, 가끔 잠든 내게 뽀뽀를 하거나 엉덩이를 토닥여준 적은 있었지만,
깨어 있는 나와 사랑을 주고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많은 아이들이 ‘사랑해’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털어놓을 때, 나는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친구에게, 선생님에게, 그리고 언젠가 자기 자녀에게 따뜻함을 건네는 법을 배워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사랑은 표현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엄마가 딸을 꼭 안으며 “공주님, 일어났어?”라고 말해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말은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다.
나는 사랑을 건네는 방법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웠다.
아기를 낳고 혼자 육아를 하면서는, 입을 꾹 다문 채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다.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뿐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선배 엄마들을 관찰하고, 동료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해”를 내뱉었고,
매일 밤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주며 그 말에 익숙해졌다.
오래 걸렸지만, 결국 내가 원했던 ‘존재 자체로의 사랑’을 아이에게 매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로서도 그 사랑을 돌려받았다.
지금은 나의 부모님께도,
아직은 어색하지만 “사랑해요”라는 말을 건넬 수 있다.
혹시 당신도 사랑을 표현하는 게 서툴더라도 괜찮다.
나는 마음속에 늘 사랑이 있었지만,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건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며 익히고 새겨가는 것이다.
사랑을 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건,
내가 스스로를 돌보며 얻은 가장 큰 힘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해주려 한다.
사랑이 서툴더라도 괜찮다.
우리 모두, 자신을 돌보며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