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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나를 지켜준 한 사람

3-6. 18년 만에 다시 만나는 선생님

by 이 순간



선생님을 18년 만에 만난다.

나는 오랫동안 선생님을 만날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나와 상담했던 아이들을 떠올리다 보면, 짧게 상담하거나 동아리에서 스쳐간 아이들은 오히려 연락을 해오거나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상담하고 깊이 만났던 아이들은 감감무소식이다.


그게 한편으로 서운했는데, 곰곰이 돌아보니 그건 딱 ‘나’였다.

선생님도 나를 그렇게 기억하셨을까. 혹시 서운하지는 않으셨을까.






그 시절의 나는, 단단한 껍질 속에 웅크리고 있던 아이였다.

상담실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선생님의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버거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공간에서는 억눌렀던 말들이 스르르 흘러나오곤 했다.

선생님은 내 고통을 재단하거나 해석하지 않았다.

그저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나는 네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전해주셨다. 그 시간들이, 단단한 내 마음에 조금씩 온기로 느껴졌던 것 같다.






처음으로 긴 상담을 마친 뒤, 타 대학원 조교였던 동기에게 그 이야기했을 때, 그는 말했다. “이제는 상담(교육분석) 받을 교수님도 잘 골라야 해”


아마 그 말은 심리·상담 학계를 잘 모르던 나를 위한 진심 어린 충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상담자의 이름값보다 그분이 내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주었는가가 더 중요했다.

선생님은 상담료의 일부만 받으시면서도, 나에게 진심을 다해주신 감사한 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배려해주시지 않았다면 학생이었던 나는 상담을 이어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에겐 그 따뜻한 마음만으로 충분했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결혼도 했지만 단 한 번 찾아뵙지 못했다.

그건 내가 못돼먹어서이기도 했고, 그 시절의 나를 외면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지금 상담자가 된 나로서 그때를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내가 안타깝다.

하지만 오랜 망설임 끝에 상담실 문을 열었던 그 순간에, 내 삶의 방향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선생님을 찾아가 부탁드린 건, 아마 내 안의 어떤 소리를 따라간 것이겠지. 그때의 용기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아이들을 상담할 때, 문득 선생님의 눈빛을 떠올릴 때가 있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그때 선생님이 내게 주셨던 그 ‘괜찮다’는 눈빛을 건네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가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릴 때, 나의 상담실과 내 눈빛을 함께 기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사실 살아가면서 문득, 선생님이 그립기도 했다.

힘든 어느 날엔, 책이 빼곡히 꽂힌 상담실, 따뜻한 차 한 잔, 포근했던 소파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엔 늘, 편안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시던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너무나 감사하고, 미안하고, 그리운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서 전해드리려 한다.

내 마음의 한 부분을 오래 지켜주었던 그분께,

이제는 나도 한 줌의 온기를 돌려드리고 싶다.





선생님께

어린 날의 제가 선생님께 상담받았던 것을 기억하실까요?

선생님은 그대로시더군요. 인터넷에 영상이 있어서 뵈었답니다.

반갑고 그리웠으면서도, 고마움 한 마디 전달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때의 저에게 손 내밀어주시고 따스하게 맞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그 마음을, 당시에는 저의 고통에 매몰되어 온전히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담을 하며 매 순간 떠올리게 됩니다.

저만의 좁은 세상에 갇혀 있던 저를 다그치지 않으시고 묵묵히 기다려주셨던 그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상담교사로 지내며 아이들을 기다려줄 때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줄 때마다, 저는 그 시절의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그때의 저는 선생님이 계셨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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