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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Feb 25. 2024

전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 특별했던 홍콩의 볶음밥

Yat tung heen in Hong Kong, 2024

우리는 흔히 '점심에 짜장면 먹을까?' 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아마 한식을 제외하면 가장 친근한 요리가 중식이 아닐까 싶다. 햄버거 가게가 없는 아주 작은 동네라도 중국집 하나쯤은 있는 곳이 많을 만큼 친근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최고급 호텔에도 중식당이 하나씩 들어가 있을 만큼 폭이 넓다.


폭이 넓다는 의미는 단순히 가격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 요리를 크게 4대 요리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표현 자체가 비교적 근래의 표현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추운 내몽고 지역과 사실상 열대성 기후에 가까운 운남성에서 같은 재료를 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연히 조리법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사실 운남성만 하더라도 그 해발고도에 따라 아열대성 기후부터 온대기후, 심지어 냉대기후까지 나타난다고 하니 중국 전체를 놓고 보면 그 기후의 다양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재료의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오리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북경의 오리는 추운 기후로 인해 지방층이 발달하였고, 남쪽 오리는 상대적으로 지방질이 덜 발달하여 똑같은 방법으로 일명 '베이징 덕' 을 조리해도 북쪽의 오리로 만드는 것이 훨씬 맛있다고 한다. 대신 남쪽에서는 '남경 오리' 내지는 '광동 오리' 라는 이름의, 재료에 맞는 조리법이 등장하였다.

(여담으로, 남쪽에 위치해 있지만 베이징 덕으로 유명하다는 홍콩의 모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자신들의 오리는 북경에서 가지고 오는 오리라고 선전한다. 또 역시 오리가 유명한, 타이베이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는 자신들의 오리는 북쪽 지방의 품종이라고 한다. 그만큼 식재료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게 폭이 넓은 중국요리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광동요리' 라고 한다. 광동요리 자체가 오래 전부터 중국요리의 최고로 꼽혀왔던 것은 아니다. '먹을 것은 광주에 있다' 는 '식재광주'라는 표현이 유명하지만, 4대 요리로 꼽히는 광동 요리의 명성이 높아진 것은 명나라 시절의 일로 알려져 있다. 일명 월나라 요리로 불리는 광동 요리는 산동 요리, 강남 요리(회양 요리를 포함했다), 사천 요리에 이어 그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광동에 서양 세력이 밀려들어 오면서 원래도 풍부했던 광동의 물산에 서양의 다양한 조리법과 식재료가 융합하게 되었고, 점차 광동 요리가 중국 요리 내에서도 가장 고급 요리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는 중국 역사의 아픈 대목인 문화대혁명도 한몫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타 지역에서 화려한 고급 요리의 전통이 사라지는 동안 광동 요리의 전통은 조계지와 홍콩에서 그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 요리 중 최고의 요리는 광동 요리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광동 요리가 그만큼 큰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광동 요리의 전통을 잇고 있는 미식의 도시, 홍콩에는 그에 걸맞는 평가가 매겨져 있다. 절대적인 가치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미식의 전통으로 유명한 이 도시에는 무려 70여 개나 되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전부 다 광동 식당은 당연히 아니다.)


수 많은 셰프들의 꿈이라는 미슐랭의 별을 따 낸 식당은 전 세계에 3,461개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전 세계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2% 정도가 작은 해안을 따라 밀집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러다 보니 홍콩에서는 미슐랭 가이드가 다소 후한 기준으로 식당들을 평가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생각해 보면 전 세계의 수 많은 식당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미슐랭 가이드의 별이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70여 개나 되는 식당이 별을 따 냈다고 하면 '하늘의 별만큼 많다' 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특정 건물 안의 식당들 중 별이 없는 식당이 없다거나, 호텔 안 레스토랑의 절반 이상이 스타 레스토랑이라거나 하는 홍보 문구를 보면 더 그렇게 느껴진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훌륭한 셰프들 중 스스로 별을 거절하거나 반납하는 셰프들도 있으며, 가이드의 평가를 거부하는 식당도 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 받지 못한 레스토랑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관광객의 입장에서 '이 옆 식당보다 맛있다' 가 아니라, '내 입에도 맛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도로 해석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무튼, 미슐랭 레스토랑이 별처럼 많은 홍콩이어서 그런지 이런 식당들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대부분 예약 없이 당일 워크인 방문은 가능하지 않다. (정확히는, 내가 아는 곳 중에는 없다.) 하지만 홍콩에서 본 1스타 레스토랑 두 곳은 모두 굳이 '워크인'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편하게 방문할 수 있었다. 가격 또한 인당 최소 10만원 이상을 각오해야 하는 서울과 달리, 점심 특선이기는 해도 번듯한 코스 메뉴를 2인 기준 10만원 조금 넘는 가격으로 즐길 수 있었다.

오늘 글의 소재가 된 식당, '얏퉁힌 Yat tung heen' 도 사실은 이런 배경 덕분에 편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2017년부터 7년 연속 미슐랭 1스타를 획득한 레스토랑임에도 방문하기 며칠 전까지 예약에 전혀 무리가 없었고, 방문해서 느꼈지만 예약 없이 왔어도 아마 식사가 가능했을 것 같았다. 자리는 조금 덜 좋았겠지만. 그리고 딤섬이나 세트 메뉴로 식사를 구성하면 상대적으로 과하지 않은 가격으로 다양하게 식사를 할 수 있어 보여 큰 고민 없이 예약을 잡았다. 약간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코스면 한국에서는 못 먹을 것 같은데?'


의 느낌이었다. 위치는 고급 식당들이 즐비하게 몰려 있는 침사추이나 홍콩 섬의 센트럴, 코즈웨이 베이 일대가 아닌, 조금 떨어진 조던 역 근처의 이튼 호텔에 위치하고 있다. 사실 조금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홍콩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침사추이에서 걸어 가도 충분하다. 홍콩이라는 도시의 관광 포인트 중 하나가 같은 듯 다른, 영화 속에서 보던 홍콩의 도심 거리 자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걸어가는 것이 더 매력적이다. 

'얏퉁힌 Yat tung heen' 이라는 이름은 사실 단순하다. Yat tung은 호텔 이름인 '이튼' 을 한자로 적고, 다시 그 한자를 발음 그대로 읽은 것으로 보이고, heen 은 집 헌자를 썼다. 생각해 보니 홍콩의 레스토랑 중 -heen 이라는 식당이 제법 있었다. 홍콩 내에서도 고급 레스토랑으로 손꼽히는 '룽킹힌'이라거나, 102층에 위치한 것으로 유명한 '틴룽힌' 등. 그러니까 사실 이름 자체는 특별하지 않은 심심한 이름이다. 간판 옆에 작게 쓰여 있는 한자는 우리 색으로 그냥 읽으면 '오채' 정도로 읽히는데, 월나라 요리라는 의미이다. 위에서 살펴 보았듯, 월나라 요리는 현재의 광동요리를 의미한다. 결국 정리해 보면 광동 요리 하는 이튼호텔 식당 정도. 여러모로 평범하다. 광동요리는 분명 고급요리지만, 광동지역에서 광동요리하는 식당이 특별할 것 까지는 없다. 사실 굳이 따지면 가장 서민적인 요리 중 하나인 딤섬 또한 엄연한 광동요리 아닌가.



글의 순서가 약간 엉키는 것을 감수하고 이 대목에서 적고 싶은 것이 있다. 여러모로 평범해 보이는 식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는 '볶음밥' 이었다. 그것도 중식의 여러 볶음밥 중 가장 기본이라는 양주볶음밥. 친근한 우리나라 중국집에서도 '짜장, 짬뽕, 볶음밥' 으로 친근하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그 볶음밥이 맞다. 게다가 '짜장, 짬뽕' 은 논란의 여지가 다소 있긴 하지만 한국식 중식으로 타국에서 만나기 어려운 반면, 볶음밥은 화교의 세계 진출에 따라 전 세계 어느 중식당에 가도 먹을 수 있는 메뉴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중식당에 가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볶음밥 자체를 '별 것 아닌' 음식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중국 정부는 2015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중국 요리' 등재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 범위가 광대한 중국 요리를 대표하여 선보이기 위해 중국 정부는 '8대 요리'를 선정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양주 볶음밥' 이었다. 여담으로, 이 대표 요리 중에는 오리 요리도 포함되었는데, 모두가 짐작하는 '베이징 카오야' 가 아닌 '광스 카오야' 즉 광동 오리가 올라가 있었던 점도 재미있다. 이래저래 실패하기는 했으나,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8대 요리 중 하나로 이 볶음밥을 꼽은 것을 보면 단순해 보이는 볶음밥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사실 다른 화려한 요리들에 비해서는 단순하기 그지없고, 만들려고 마음 먹으면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볶음밥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볼 수 있는지, 이 식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해 본 것이 이 글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넓은 외부 홀

이 이야기는 볶음밥이 나올 때 마저 하기로 하고, 얏퉁힌의 내부로 들어간 시점부터 다시 이어가면 내부 홀은 상상 이상으로 넓었다. 지하에 위치한 식당은 그 규모에 걸맞게 입구도 두 곳으로 나 있었고, 홀은 굉장히 큰 편이었다. 홀에 앉아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지인으로 보였는데,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어떤 식당들은 사전 드레스 코드를 안내하며 경우에 따라 처음 방문하는 입장에서는 다소 주눅 들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곳은 여러모로 부담 없이 들러 식사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1930년대 상하이 풍이라는 인테리어는 과하게 화려하거나 부각되지는 않으나, 충분히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다 정도의 인상을 주었다. 한편으로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홍콩영화를 연상하게 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낭만적이라고 느끼는 반면, 홍콩에서는 또 1930년대 상하이가 소위 '분위기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내부의 작은 홀

내부에는 작은 홀이 몇 개 갖추어져 있었다. 홀을 한 팀이 쓰고 할 정도의 규모는 아니고, 여러 테이블이 있긴 하지만 좀 더 테이블간 공간이 넓어 조용한 식사가 가능해 보였다. 사전 예약을 했기 때문인지 홀 가장 안쪽의 소파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구석 자리라는 느낌보다는 가장 편안한 자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2인 기준으로 볼 때 원형의 테이블도 넓은 편이었다.


안쪽 자리에 앉으면 식사는 조용하게 할 수 있으나, 서버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불편함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 식당의 시스템과 서버들의 노련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의외로 정신없이 합석하는 작은 동네 식당에서도 홍콩의 서버들은 귀신같이 내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경험에서 나오는 내공이라고 해야 할지. 식당의 서빙 분위기는 우리나라처럼 친근감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해 주었다. 왠지 동유럽이 생각나는 부분이기도 했다. 서유럽에 비해 동유럽의 식당에서는 무뚝뚝하다는 인상을 받기 쉽지만, 막상 필요한 것이나 요청한 것은 특유의 무표정으로 다 가져다 준다.



얏퉁힌은 홍콩을 찾는 우리나라의 관광객들에게도 제법 유명한 식당이다.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이라는, 제법 가격대가 있을 것 같은 간판에도 불구하고 딤섬을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중 점심 기준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하가우를 포함한 10여 종의 딤섬을 38홍콩달러, 약 6,500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조금 가격이 높은 딤섬도 58홍콩 달러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인데,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딤섬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정도 가격이면 전통 방식으로 딤섬을 제공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홍콩 섬의 '린흥귀' 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딤섬으로 이름 높은 식당들의 하가우가 대략 12,000원 정도 하는 듯 하다. 그렇다면 거의 절반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홍콩에서도 이렇게 계속 저렴하게 딤섬을 즐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식당들이 딤섬에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이유는 인건비 때문이라고 한다. 딤섬이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인건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딤섬을 하는 식당들은 딤섬에서 이익을 취하기 보다는 다른 요리나 식사류에서 이익을 내는 구조라고 한다. 특히 딤섬을 구색 맞추기 용으로 한다면 모를까, 제대로 하려면 그 종류도 충분히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보통 한 셰프가 노련하게 만들 수 있는 딤섬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 이 얏퉁힌처럼 수십 종의 딤섬을 내려면 요리사 한 두 명으로는 어렵다는 이야기가 된다. 홍콩의 저렴한 딤섬 가게는 보통 수십 년 내공을 가진 노장들이 지탱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들이 은퇴한 다음에도 이런 가격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딤섬만큼이나 좋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던 점심 코스 메뉴. 탕 한 가지와 세 가지 요리, 식사, 후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688홍콩달러로 약 12만원 정도. 인당 6만원 정도의 코스지만, 선택할 수 있는 요리 구성이 다양한 편이다. 특히 꼭 먹어보고 싶었던 광동 바베큐를 별도 섹션으로 구성하고 있어 마음에 들었다.


이 코스를 선택하고, 차슈와 두 가지 방식으로 요리한 새우, 버섯과 제철 야채를 선택했다. 식사로는 양주식 볶음밥, 후식은 망고 디저트를 골랐다.






세 가지 요리와 한 가지 탕으로 구성된 코스는 나름 의미가 있는 구성이다. 중국은 여러모로 정부의 입김이 민간에 미치는 영향이 강한 곳이 아닌가. 중국 정부의 공식 연회에서 요리를 구성하는 기준이 '싼차이이탕' 이라 하여 세 가지 주요리와 한 가지 탕이다. 얏퉁힌 코스 메뉴와 같다. 이 정부 공식 연회 메뉴 구성은 당대 최고권력자의 성향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져 왔다. 청나라와 이후 민국 시기 화려했던 연회는 마오쩌둥 시기에 간소화되었다. 마오쩌둥 본인부터 별로 화려한 연회에 관심이 없었고, 먹는 것도 서민적인 요리를 즐겼기 때문이다. (서민적인 홍소육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부인인 장칭이 흉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마오쩌둥은 화려한 연회를 줄여 '쓰차이이탕', 네 가지 요리와 한 가지 탕으로 연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본인의 평소 식사는 대부분 '싼차이이탕' 으로 구성하였다. 물론 이 요리는 주 요리를 제한한 것으로, 과일이나 딤섬 등 곁가지로 내 오는 음식은 모두 갯수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니 이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화려한 연회가 가능했을 것이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화려한 식재료에 관심이 없던 그의 취향을 반영하여 공식 연회석상의 광동 요리도 고급 재료인 샥스핀이나 건전복 등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덩사오핑으로 권력이 넘어가자 새로운 권력자의 취향을 반영하여 고급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지금도 홍콩에서 영업 중인 '선퉁록', '푹람문' 등의 식당이 샥스핀이나 전복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특히 미슐랭 3스타를 받은 '포럼'의 영쿤얏 셰프는 덩사오핑에게 직접 전복을 대접하고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이러한 요리를 즐기며 극찬한 덩사오핑에게는 전임자와 자신을 차별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 전복의 맛이야말로 '개혁 / 개방 정책 덕분에 즐길 수 있는 맛' 이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차 메뉴판은 따로 보여주지 않고, 우롱 티, 자스민 티 하는 식으로 원하는 차를 물어본 후 가져다 주었다. 메뉴판을 달라고 하면 보여주었을 것 같기는 한데, 대충 알아들을 수 있는 이름들이라 무난하게 선택했다. 보통 우리나라 중식당에서는 물이나 차를 무료로 주니까 찻값을 받는다고 하면 조금 아까운 느낌이 들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물 한 병도 칼같이 계산해 청구하는 유럽 레스토랑들을 생각하면 따뜻한 물이라도 제한 없이 계속 부어 주는 차가 차라리 더 저렴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처음 나온 것은 오늘의 탕.

나오자마자 닭곰탕이 생각나는 진한 향이 느껴진다. 국물 또한 상당히 묵직하고 맛과 향에서 한약재의 느낌도 어느정도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메뉴판을 따로 요청해 확인해 보니, 닭이나 오리가 아닐까 했던 당초 생각과 달리 돼지 정강이로 끓인 스프였다. 요일별로 바뀌는 탕에는 각각의 약효가 적혀 있었는데, 약식동원, 음식과 약의 근본은 같다는 중국 요리의 오랜 주제가 새삼 느껴진다.


건더기로는 고기와 박이 들어 있는데, 메뉴판에 박을 fuzz melon으로 번역해서 적었다. 그대로 다시 검색하면 모과가 나오는데, 아마 우리가 흔히 접하는 모과는 아니지 싶고 박이나 애호박류의 채소가 아닌가 싶다. 고기는 굉장히 부드러운 편인데, 국물을 낸 고기는 아닌 것 같고 고기를 따로 조리하여 넣은 것 같다. 아마 설명을 읽지 않았다면 닭 육수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다음 메뉴는 광동 바베큐를 하는 식당이라면 대부분 메뉴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차슈. 돼지고기 겉면에 꿀을 발라 구웠다. 맛 자체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단 맛과 짠 맛이 조화를 이루는, 단짠단짠 조합이다. 다만 이 맛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먼저 꼽고 싶은 것은 단 맛의 정도다. 설탕이나 시럽을 사용하지 않고 꿀을 사용해서 상대적으로 단 맛의 강도를 좀 더 은은하게 표현한 느낌이 든다. 사실 꿀을 쓰더라도 양 조절에 실패한다면 단맛이 너무 과해 요리의 전체적인 인상을 망쳤을 것이다. 단 맛은 잘못 사용하면 혀가 아릴 정도로 먹기 어려운 맛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요리에서는 그런 과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음으로 꼽고 싶은 것은 고기의 굽기 정도다. 스테이크도 아니고 돼지고기를 가지고 굽기의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해 보일 수도 있지만, 겉면에 바른 꿀 이상으로 요리의 완성도를 좌우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기름기가 아주 많은 부위라는 느낌이 없음에도 퍽퍽하지 않고, 육즙이 충분히 느껴질 정도로 구웠다. 과하게 익혔다면 전체적인 식감이 퍽퍽해지고 건조해져 이를 무마하기 위해 양념을 잔뜩 바르게 되고, 결국 맛이 너무 과해서 요리를 망치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차슈는 충분한 육즙을 보존하고 있어 고기 자체에서 충분히 맛과 촉촉함을 느낄 수 있었고, 굳이 양념에서 맛과 수분을 끌어올 필요가 없다. 


다음 요리는 셰프 추천 요리 중 선택한, 두 가지 방식으로 요리한 타이거 새우.

가운데는 중식에서 빠질 수 없는 (막상 생각보다는 잘 못 본) 청경채를 모양내어 놓았다. 흰 색으로 보이는 새우는 다른 양념 없이 적은 기름으로 살짝 볶아 냈다. 새우 자체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가볍게 요리한 느낌을 준다. 식감 또한 별도로 튀김옷을 입히지 않고 볶아 새우 자체의 표면이 살짝 바삭한 듯 한 느낌을 주는 정도다. 전반적으로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는 조리라는 느낌을 준다.


다른 하나는 Sweet and sour 라는 표현을 썼는데, 사실 이 표현을 우리나라 중식당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탕수육에 이 표현을 쓴다. (홍콩 식당에서도 Sweet and sour pork 라고 써 있으면 탕수육이다.) 다만 이 새우는 탕수육보다는 닭강정 쪽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다.


바삭바삭 코팅된 듯 한 새우의 표면, 그리고 달달하면서 살짝 매콤한 듯 한 맛이 영락없이 닭강정이 생각나는 맛이다. 사실 같은 중식 중에서는 칠리새우가 좀 더 가까울 듯도 한데 왠지 모르게 닭강정 쪽이 좀 더 생각나는 맛이다. 아마 튀김보다는 당류에 코팅된 듯 한 표면의 식감 때문일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재료인 새우의 맛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맛의 강도를 적절히 조절하였다. 이 양념이 워낙 맛있는 양념이라 맛을 강하게 내려면 얼마든지 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닭을 쓰던 새우를 쓰던 모두 같은 요리가 되어 버린다.



다음은 야채 섹션에서 고른 표고버섯과 제철 야채. 전복 소스와 함께 냈다. 색만 보면 경양식 집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전형적인 브라운 소스의 느낌을 준다. 많은 식당에서 'Abalone sauce' 라는 표현을 만날 수 있었다. 혹시 굴 소스나 XO 소스를 전복 소스라고 쓰나 라는 생각도 잠깐 해 보았지만, 국숫집 등에서 야채와 함께 나오는 소스는 명확히 오이스터 스소라고 적혀 있으니 아니고, 또 XO 소스는 XO 소스라고 따로 쓰니까 단순 번역 차이도 아니다. 나중에 찾아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전복 굴소스' 등의 이름으로 판매하는 소스가 있었고, 예전에 홍콩 기업인 이금기의 전복 소스도 시판되었던 것 같다. 다만 지금은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맛은 굴소스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고 하면 맞지 않을까 싶지만, 달달한 맛도 좀 있기도 하고 생긴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브라운 소스 생각이 난다. 


표고야 특유의 향과 깊은 맛을 예상과 같이 가지고 있고, 야채는 과하게 익히지 않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살도록 익혀 내어 말캉한 표고와 대비되는 식감을 준다. 다만, 표고가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닌지라 잘라주거나 잘라 먹을 수 있도록 칼을 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한 입씩 베어먹자니 아무래도 좀 불편한 감이 있다.



세 가지 요리가 모두 끝나고, 식사가 나올 차례. 서두에서 적은 바와 같이 가장 맛있게 먹은 '양저우 차오판', 양주볶음밥이다. 양주볶음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대단히 단순하다. 야채와 잘게 자른 바베큐 포크, 새우 정도. 게다가 잘게 썰어 넣었기 때문에 큰 존재감을 느끼기 어렵다. 이 볶음밥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철저하게 잘 볶은 쌀밥과, 파를 비롯한 기본적인 향신료와 불이 만들어 낸 특유의 향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볶음밥을 즐겨 먹는데, 처음 볶음밥이 나오면 가장 먼저 향을 맡아 본다. 특유의 향이 가득 느껴지면 맛에 대한 기대감이 올라가는데, 얏퉁힌의 볶음밥은 굳이 코를 가져다 댈 필요 없이 식탁에 올라오자마자 강한 향이 느껴져서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높혀주었다.


거의 클리셰 수준의 진부한 말이지만, 처음 가 본 중식당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요리가 볶음밥이라는 말이 있다. 중식에서 요리사의 불과 웍을 다루는 기술은 정말 중요한데, 가장 눈속임 없이 정직한 실력이 드러나는 요리가 바로 볶음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화려한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볶음밥보다, 최소한의 재료만 넣은 볶음밥이 더욱 실력을 보여준다는 말도 있다. 재료를 많이 넣을수록 맛이 없어진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굳이 볶음밥으로 만들지 않아도 충분히 화려한 재료들을 넣고 만들면, 볶음밥으로서 맛있다기 보다는 일종의 요리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었음에도 불과 웍의 조화로 절묘하게 볶아내 그 맛을 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볶음밥의 매력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볶음밥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짜장, 짬뽕, 볶음밥' 중 늘 볶음밥을 고르는 편이고, 특히 갓 볶아낸 특유의 향과 고슬고슬함을 느낄 수 있는 밥을 정말 좋아한다. 이렇게 잘 볶은 볶음밥에는 짜장을 곁들이는 것이 아깝다. (물론 대량으로 볶아 놓았다가 데워서 내 놓는 떡밥 스타일의 볶음밥은 예외다)



이번 여행에서 한 번 더, 정말 좋은 재료를 많이 넣은 볶음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날의 두근거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밥의 고슬고슬한 맛과 향 외에 좋은 재료들이 내는 다양한 맛들이 섞여 있어, 차라리 하나의 요리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맛있었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볶음밥이구나!' 하는 느낌은 조금 덜했던 것 같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점심에 볶음밥을 먹었다. 아주 비싼 고급 중식당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인근에서는 잘 한다고 알려져 점심에 예약을 하고 가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역시 볶음밥을 주문했는데, 전반적으로 고슬고슬하게 볶아진 느낌은 있었으나 먹다 보니 목이 막힌다. 같이 내어 준 국물을 두 번이나 더 달라고 해야 했는데, 고슬고슬하게 볶았다는 것이 건조하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얏퉁힌의 볶음밥은 국물을 따로 준 것이 없었으나, 따로 목을 축일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 없이 맛있게 먹었다. 물론 두 식당 주방의 실력 차이다 라고 말하기에는 쌀의 차이, 주력 메뉴의 차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감안점이 있을 것이니 오늘 내가 방문한 식당의 실력이 떨어진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먹는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중국 전역에 있을 법한 볶음밥 중, 양주의 볶음밥이 특별한 이름을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양주는 고대 한나라 시절부터 이어져 온 도시로, 특히 수나라 대운하로 인해 번성하게 된 도시이다. 양쯔강과 대운하의 교차점이라는 절묘한 입지 조건으로 인해 교통과 물류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당나라 시기에 절정을 이루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쓰촨의 비단이나 광저우의 물산 등이 정치의 중심이었던 화북 지방으로 올라가기 전 집결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특히, 이미 화북 지방의 식량 생산으로는 화북 인구를 지탱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므로, 대운하를 통해 올라오는 강남 지방의 곡물과 소금이 대단히 중요했다.


이렇게 양주가 역사의 주목을 받던 시기에 양주 볶음밥 또한 등장하게 되는데, 수 양제가 대운하 건설을 위해 양주를 방문했을 때, 수행하던 신하가 자신의 집에서 해 먹던 볶음밥을 식사로 내어간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만약 이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다면, 양주 볶음밥은 당시에 양주에서는 이미 있었던 음식일 것이고, 황제에게 내 갔으면 제법 고급 요리 축에 들었을 것이다. (수 양제가 피난와서 먹을 것이 없어서 먹었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수 양제는 서기 600년 경의 사람이니 양주 볶음밥의 역사는 적게 잡아 1,400년이 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양주의 풍부한 물산으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 좀 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만드는 볶음밥이라는 점에서 유명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에야 전국 각지의 진귀한 식재료를 언제든지 접할 수 있지만, 고대에는 그것이 불가능했을 테니.






사실 배가 불렀지만, 옆 테이블에서 워낙 맛있게들 딤섬을 먹길래 하가우를 하나 주문해서 먹어 봤다.

예상대로 맛있는데, 특히 새우의 식감을 잘 살려 냈다. 새우의 탱글탱글한 느낌이 입 안에서 느껴지는 것이 더욱 맛이 좋다. 씹을 때 새우의 탄력이 잘 느껴지는데, 아마 과하게 익히거나 다질 때 너무 잘게 다져 버리면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디저트는 망고를 찹쌀떡처럼 감싸서 가지고 왔다. 머릿 속에서 연상되는 정확한 그 맛이다. 쫄깃쫄깃한 식감을 준 부드러운 망고.






얏퉁힌에서의 식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가 가장 기본 메뉴인 볶음밥이었던 것처럼, 전반적으로 맛의 균형을 잘 지켜서 요리를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바베큐 포크의 경우에도 양념을 아낌없이 올려 그 맛을 강조하는 방법도 있다. 일상적으로 간장치킨을 주문해서 먹을 때, 닭의 익힘을 생각하고 먹기보다는 양념 맛으로 먹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렇게 먹어도 맛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어설프게 양념의 양을 줄이게 되면, 닭의 튀김 상태나 재료의 맛이 고스란히 노출되게 된다. 심지어 맛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김치찌개 맛 없으면 라면 스프 넣으면 맛이 확 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라면 스프 넣으면 그 양념 맛으로도 충분히 먹을 만 한 음식이 되니까. 하지만 얏퉁힌의 바베큐 포크는 양념의 맛을 은은한 정도로 하여 돼지고기의 맛 또한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새우 또한 비슷한데, 역시 양념 맛으로 덮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 균형을 적당히 조절하여 새우의 맛도 함께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강한 양념과 향신료, 기름진 음식이라는 중식에 대한 선입견이 여러 의미로 깨진 좋은 식사였다. 각각의 재료의 맛을 잘 살려 주재료가 무엇이든 양념의 맛으로 덮어버린다는 느낌이 없었고, 평소에도 접하기 어렵지 않은 식재료(돼지고기, 새우 등)를 사용하면서도 각각의 맛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볶음밥에서 느낄 수 있었던 특유의 맛과 향은, 평범한 재료가 멋진 기술을 만났을 때 어디까지 맛을 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어디까지 맛있어 질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충실히 수행되었을 때 어떤 고급 재료를 넣은 것에 비교하더라도 결코 떨어진다 할 수 없는 멋진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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