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 court in Hong Kong, 2024
해외 여행을 계획할 때, 보통 두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편이다. 첫 번째는 현지의 다양한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음식이다. 특히 마지막 날 저녁은 가능하면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같이 기억에 남을 만한 곳으로 정하는 편이다.
(물론, 예산을 아득히 초과하거나 대단히 외진 곳에 있다면 포기하거나 날짜를 바꿔 보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어떻게든 넣어 보려고 하다가는 여행 계획표가 터진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 여행지에서 가장 맛있는 레스토랑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누군가 내게 서울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레스토랑을 골라 달라고 하면, 모든 사람에게 서울의 유일한 3스타인 '모수'를 추천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의 취향과 상황, 원하는 기대에 따라서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홍콩/마카오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여행지에 나의 취향을 반영해 음식을 골라 줄 만한 지인이 없다. 그래서 다소 미심쩍을 때가 많기는 해도, 미슐랭 가이드를 믿고 가는 편이다.
먹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식당도 가득한 미식의 도시 홍콩. 마지막 저녁 식사는 홍콩의 관광 중심지인 침사추이의 랭함 호텔에 위치한 광동 요리 레스토랑, 탕 코트(T'ang court)로 정했다. 탕 코트를 한자로 쓰면 당각, 즉 당나라 집이라는 의미다. 다분히 서양 관광객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홍콩의 미슐랭 레스토랑 중 이 당각 외에도 명각, 밍 코트(Ming court)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려나 조선 등의 명칭을 활용한 식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 아무래도 특별한 것은 없는 이름이다.
미식의 도시답게, (도시 면적 대비 다소 과하다는 평은 있지만) 홍콩에는 총 7곳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 있다. 영국의 통치 역사와 국제적인 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듯, 오늘 방문하려는 탕 코트와 전설적인 셰프 영쿤얏의 레스토랑인 포럼을 제외하면 다섯 곳은 프렌치, 이탈리안 등 다국적 요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요리들을 맛보는 것도 즐거웠겠지만, 아무래도 홍콩에 왔으니 중식을 먹어보자 하는 다분히 관광객적인 발상으로 탕 코트와 포럼 중 한 곳을 고민했고, 위치가 더 좋다는 이유로 탕 코트를 선택했다.
다른 글에서도 짧게 적었지만, 중국은 그 넓은 땅만큼이나 요리의 종류가 다양하다. 또 중식은 다른 나라로 나가면 빠르게 현지화되는 특징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중국요리 또한 그렇다. 다만 굳이 따지자면 우리나라의 중국요리는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산동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다. '중식' 하면 떠오르는 대표주자인 짜장면과 탕수육이 모두 산동 요리의 영향권 아래 있다.
한편, 최고의 요리라고까지 하긴 어렵겠지만 현재 중식에서 가장 고급 요리로 손꼽히는 것은 바로 광동 요리이다. 원래부터 다양한 물산이 집중되던 지리적 특성에 서양 요리의 영향까지 받아 풍부한 재료와 조리법이 발달하였다. 또한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로 전 세계에 널리 소개되기에도 유리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고급 요리이자 중국 요리의 대표 요리로서 알려진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딤섬, 샥스핀, 제비집 등이 광동요리에 속한다.
이 광동 요리로 미슐랭 가이드를 검색하면, 총 다섯 곳의 3스타 레스토랑을 만나볼 수 있다. 각각 마카오에 두 곳, 홍콩에 두 곳, 대만 타이베이에 한 곳이다. (다만 완전히 믿기는 어려운 것이 분명 광동 지방에서는 광동 요리 레스토랑이 '클래식 퀴진' 내지는 '모던 요리' 등으로 분류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브런치 북에서는 이 중 세 곳, 이 글의 소재인 홍콩의 탕 코트와 마카오의 '제이드 드래곤', 그리고 '디 에잇'을 다룰 예정이다.
(참고로, 대부분 비싼 코스 요리를 선택해야 하는 서양식 레스토랑에 비해 광동식 레스토랑은 단품 주문으로 얼마든지 생각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근사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념일에 갈 만한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 뷔페 가격이면 충분하다.)
오늘의 목적지인 탕 코트는 랭함 호텔에 위치해 있다. 호텔 외벽에도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보유하였음을 선전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이러한 고급 레스토랑이 호텔 내에서 가지는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홍콩과 마카오에서는 랭함 호텔처럼 3스타 레스토랑을 보유한 곳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탕 코트는 엄밀히 말하면 으리으리한 느낌은 아니다. '당각' 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당삼채 스타일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고, 식당은 총 2층으로 나뉘어 있다. 1층은 좀 더 캐주얼한 느낌이고, 2층이 조용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세련된 느낌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세월이 느껴지는데, 집기가 낡았다기보다는 인테리어가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이다. 전설적인 홍콩 영화, 영웅본색2 를 보면 초반부에 장국영이 잠입한 연회가 나오는데, 딱 그 연회장 같은 느낌이다. 이웃 마카오의 3스타 레스토랑들, 제이드 드래곤이나 디 에잇의 휘황찬란한 인테리어와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테이블과 집기 모두 깔끔하지만, 으리으리하다거나 화려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바깥쪽 젓가락으로 음식을 가져와서, 안쪽 젓가락으로 먹으면 된다. 사실 좀 궁금했던 것이, 이렇게 되면 아무리 젓가락이라도 음식을 덜어 오는 바깥쪽 젓가락에는 이런저런 양념이 묻게 되는데, 의외로 이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나 싶은 생각도 조금 들었다.
메뉴판은 세 가지를 가져온다. 중국에서는 하나의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요리사보다, 약간 전문성이 떨어지더라도 여러 가지 요리를 할 줄 아는 요리사를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메뉴판에도 여지없이 반영되어, 거의 책 한 권을 가져온다. 마치 프렌치 레스토랑들이 자랑스럽게 두꺼운 와인 북을 가져오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 가지 메뉴판은 각각 단품 메뉴, 코스 메뉴, 그리고 음료 메뉴다. 음료는 차를 주문했기 때문에 추가로 다른 음료를 주문하지는 않았다. 코스 메뉴보다는 단품 메뉴를 주문하는 것이 좀 더 가성비가 좋을 것 같아, 단품 메뉴로 주문하기로 했다. 다른 후기를 찾아보면, 간단히 요리 하나와 식사 메뉴만 주문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다. 다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이것저것 요리를 먹어보기로 했다.
이 날 꼭 먹어보려고 했던 것은 흔해 보이는 크리스피 치킨. 미식의 도시 홍콩에서, 그것도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까지 가서 치킨을 주문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실 영어로 적으면 크리스피 치킨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치킨과는 조금 다르다. 북경의 베이징 덕에 대항하듯, 광동에서는 크리스피 치킨이 있다고 할 만큼 유명하다고 하고, 또 이 탕 코트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라고 하여 선택했다.
그리고 또 빠질 수 없는 것이 광동식 바베큐 중 하나인 애저, 새끼돼지. 새끼돼지는 광동요리 하면 가장 먼저 꼽힐만한 대표 요리다. 약 5kg 정도 되는 어린 새끼돼지를 통으로 장작불이나 숯불 위에서 구워낸다고 한다.
새끼돼지 통구이는 만화 같은 것에서 다소 코믹한 이미지로 묘사되지만, 이 요리는 생각보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고급 요리다. 가장 고급진, 호화로운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청나라 황제를 예로 들어 보자. 청나라 황제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수라간처럼 어선방이라는 조직이 존재했다. 어선방 안에는 각기 훈국, 반국, 점심국, 포합국 등 부문을 나누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뚜막과 냄비를 활용한 요리를 하는 훈국이었으나, 직화로 굽는 고기를 준비하는 포합국, 일명 괘로국 또한 중요했다. 이 포합국에서 만드는 요리는 사슴이나 양도 있었지만, 돼지와 오리가 가장 발달했다고 한다. 즉, 황제가 먹는 가장 고급 요리 중 하나로 돼지 직화 구이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돼지 통구이는 만석, 즉 만주족 요리에서 대단히 귀중한 요리로 높은 대접을 받았다. 만주족의 전통에 따르면, 이 요리는 연회의 장에서 잘라 나누어 먹는 최상급의 접대 요리였다. 만주족의 지배에 따라, 이 돼지 통구이 요리는 광동까지 침투하여 청명절의 제사 음식이나, 혼례 등 성대한 연회에 빠질 수 없는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광동에서는 이 때 새끼돼지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규모 있는 광동요리 레스토랑이라면 빠지지 않고 볼 수 있는 요리로 자리 잡았다.
여담으로, 흔히 우리는 돼지고기는 훨씬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식인지라 이 새끼돼지 통구이가 그렇게 귀한 최고의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고, 제비집 요리 등을 더 귀한 요리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음식점에서도 새끼돼지 통구이가 돼지고기 치고는 상당히 비싸지만, 제비집이나 샥스핀 등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청대에는 지배 민족인 만주족의 요리인 '만석' 이 한족의 요리인 '한석' 보다 높은 등급의 요리로 대접받았기 때문에, 만주족의 대표 요리인 이 새끼돼지 통구이나 오리 통구이 등이 오히려 최고급 요리였다. 청나라 최후의 권력자였던 서태후도 이 새끼 돼지 요리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요리의 격을 엄격히 나눈 이유는, 이것이 궁중에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나라는 이러한 요리를 엄격히 규정해서, 각각의 행사의 등급에 따라 요리를 결정했다. 최고 등급의 요리는 황실의 제사, 가장 큰 제후국이었던 조선의 사신이 방문하면 그 다음 등급의 요리를, 류쿠 사신에게는 그보다 낮은 단계의 요리를 내놓는 식이었다.
크리스피 치킨과 새끼 돼지를 먼저 고른 다음, 몇 가지 요리를 더 고르고 담당 서버에게 혹시 우리가 고른 요리가 너무 많은지를 물었다. 중식의 요리는 통상 여러 명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양이 나오기 때문에, 주문한 음식이 어느 정도 양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담당 서버는 혹시 배가 아주 많이 고픈지(Very, very, very) 물었고, 우리는 배가 고프긴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우리가 고른 요리 중 새끼돼지 요리를 절반으로 줄여 주겠다(Half size)고 제안했고,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총 네 가지 요리와 한 가지 식사, 한 가지 디저트를 주문했는데, 결론적으로 음식 양은 다소 많았다. 다만 요리가 많았다기보다는 식사가 문제였다. (하나만 주문했는데, 아무리 봐도 4인분이었던 것 같다.)
홍콩이나 마카오에서는 식당에 따라 소스도 추가 요금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탕 코트는 소스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 나라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차에는 가격이 있다. 아마 물을 주문했어도 가격이 부과되었을 것이다. 소스는 각각 두반장, 간장 소스, 칠리 소스였는데, 두반장이 맛이 과하지 않고 두부같은 건더기들이 들어가 있어 사실 그냥 집어 먹어도 맛이 좋았다.
전채 격으로 나온 요리는 작은 전복. 살짝 튀긴 것 같은 양념들을 올려 식감도 좋고, 기본으로 주는 메뉴임을 감안하면 맛도 좋았다. 다만 요리로 주문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말린 전복의 엄청난 감칠맛을 기대할 수준은 아니다. 보통 새콤한 스타일의 전채를 주는 경우가 많은데, 살짝 생소한 느낌.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 보니 찻잔이 오히려 독특하다.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 중국 스타일의 손잡이 없는 잔을 주는데, 커피잔 형태의 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첫 요리는 일종의 건새우 볶음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 'Stir-fried dried shrimps with squid, peanuts, whitebait, leek and spicy sauce' 를 가져다주었다. 말린 새우와 오징어, 땅콩, 작은 치어와 파를 살짝 매콤한 소스에 볶아 내었다는 의미다. 새우는 우리가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새우는 아니다. 아마도 중하 정도 크기의 살아 있는 새우를 찐 다음 껍질을 제거하는 등 무언가 사전 조리를 한 다음 건조한 느낌인데, 바짝 말라 바삭바삭한 느낌이 아니라 쫄깃한 느낌의 식감이다. 홍콩에서는 이렇게 말린 해산물을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광동의 습한 기후 때문에 상하는 것을 방지하려고 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말림으로써 그 감칠맛이 극대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고소한 견과류와 작은 치어를 가득 넣어 고소한 맛과 감칠맛이 입 안 가득 느껴진다. 하지만 요리 자체가 과하게 무겁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데, 살짝 매콤한 맛을 주어 요리에 산뜻함을 더해 주었다. 무엇보다 '중식 볶음 요리' 하면 생각나는 무겁고 기름진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첫 요리에서부터 만족도가 높았다.
다음 요리는 탕 코트의 시그니처 중 하나라고 하는 Crab shell이다. 사실 어지간한 광동 레스토랑에 가면 비슷한 요리를 만날 수 있다. 게 살과 양파, 크림 소스를 넣고 고로케처럼 튀겨 냈는데, 하나씩 주문 가능하다. 두 명이서 하나만 주문했더니, 요리를 보여준 후 나눠 먹을 건지 물었다. 그러겠다고 했더니 담당 서버가 다시 가지고 가서 절반을 잘라 각각 담아 주었다. 이러한 서비스는 중식 레스토랑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타이베이에서는 디저트로 나온 치즈 페스트리를 반으로 나누어 가져다 주기도 했다.
같이 먹도록 새콤하고 짭짤한 간장 류의 소스가 같이 나왔다. 고로케같아 보이는 겉면과 달리, 기름기가 특별히 느껴지지 않는다. 포슬포슬하게 익혀내어 바삭보다는 폭신하다는 느낌이 강하고, 안에는 게 살과 크림 소스가 적절하게 잘 어우러지며, 양파는 살짝 아삭한 식감을 낸다. 전반적으로 좀 묵직한 맛을 내는데, 크림 소스의 맛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편이다. 하나 다 먹으면 살짝 느끼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봤는데, 같이 나온 소스의 새콤함이 이러한 부분을 잘 잡아 주는 편이다. 다만, 먹다 보면 비주얼 때문인지 잘 만든 고로케 같은 느낌도 좀 든다.
오늘의 메인 메뉴인 크리스피 치킨. 한 마리를 전부 주문하면 베이징 덕과 유사하게 껍질 쪽 고기와 나머지 부분을 양배추 쌈으로 하는 식의 두 가지 방식으로 나온다고 하는데, 반마리는 그냥 닭 반마리로 나온다. 닭은 생각보다는 제법 큰 편으로, 한 마리를 주문할까 해서 사전에 물어봤더니 한 마리는 4명이 먹기에 적합하다고 하여 반마리를 주문했다. 사진으로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데, 생각보다 양이 작지 않다.
나오자 마자 먼저 드는 생각은 자르는 방식이 독특하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치킨을 만들기 위해 절단하는 스타일이 아닌, 좀처럼 보지 못한 방식으로 자르는데 닭다리를 기준으로 보면, 다리를 가로로 뼈까지 통으로 잘라 내었다. 그러면 먹을 게 거의 없을 것 같지만 살이 많아 먹을 만 하다. 홍콩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요리 중 하나가 구운 거위인데, 역시 이런 식으로 뼈까지 잘라 준다.
겉면이 굉장히 바삭해 보이는데, 이 크리스피 치킨은 보통 다양한 향신료를 넣은 물에 한번 삶아 낸다고 한다. 그런 다음 새콤달콤한 소스를 바르고, 그 소스가 완전히 마를 때까지 둔다. 소스를 바른 다음 말리는 과정은 언뜻 보면 베이징 덕과 비슷하다. 그런 다음 끓는 기름을 계속 끼얹어 가며 익히는데, 닭 껍질이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익혀 낸다고 한다.
잘라져 온 크리스피 치킨의 겉면은 대단히 바삭바삭해 보이는데, 튀김옷으로 인한 바삭함이 아닌, 껍질 자체가 바삭하게 익혀진 것이다. 얼핏 보면 전기구이 통닭같아 보일 수도 있는데, 전기구이 통닭의 껍질이 건조하듯 바삭한 느낌이라면 크리스피 치킨은 소스의 맛도 있고, 기름에 담근 것이 아니라 끼얹어 가며 익혀서 자체의 지방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겉 표면만 바삭하게 익었다는 느낌을 준다. 미리 바른 소스 때문인지 표면은 반질반질하니 윤기가 돈다.
살은 굉장히 촉촉하다. 여러 가지 조리 방법이 결국 바삭한 껍질의 표면과 촉촉한 살, 진부한 표현이지만 '겉바속촉' 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보통 닭을 한마리 먹는다고 하면, 쫄깃한 부분이 있고 아무래도 퍽퍽한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탕 코트의 크리스피 치킨은 퍽퍽한 부분이라고 느낄 만한 부분이 없이 모두 촉촉한 느낌이었다. 이 촉촉함은 아마도 닭 자체가 가지고 있는 지방질과 수분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도록 조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점 떼어내면, 얼핏 보기에는 기름기 많은 흰 살 생선을 구워 놓은 것 같아 보인다.
유럽에서는 닭 가슴살을 고급 요리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 중국에서도 닭고기를 돼지고기보다 더 고급 고기로 친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고급 코스 요리의 메인으로 닭 요리가 나오는 것을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의외로 이렇게 정성들여 조리되어 나온 닭고기를 먹어보면 정말 맛있는데, 품종도 다르겠지만 부위별로 조리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삼계탕이나 우리가 보통 먹는 치킨처럼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조리하는 방식은 부위별로 최적의 익힘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늦게 익는 부위에 조리 과정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소위 '오버 쿡' 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부위별로 나누어 조리하는 것에 익숙한 유럽 사람들은 부위별로 최적의 조리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다만 이 크리스피 치킨은 우리가 흔히 먹는 방법처럼 한 마리를 통으로 익혀 냈음에도 마르거나 퍽퍽한 부위가 없어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바비큐 요리, 애저는 원래 총 여덟 조각이 나온다고 한다. 절반이기 때문에 이렇게 네 조각으로 가져왔는데, 바싹 구워 겉면이 바삭바삭해졌다. 아까 크리스피 치킨의 껍질보다 더 두껍고, 그래서 더 바삭하다. 바삭바삭한 과자 같은 느낌이다. 청나라 황실이 즐겼다는 바로 그 새끼 돼지 바비큐인데, 보통 32조각 정도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정량인 여덟 조각은 1/4인 셈. 돼지는 보통 4-5kg 정도의 새끼 돼지를 쓴다고 한다. 새삼 인간이 다소 잔인하다는 생각도 드는 부분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청대의 시인 '원매'의 수원식단에 따르면, 애저구이는 3.6kg-4.2kg의 새끼돼지 한 마리를 재료로 한다. 털을 제거한 다음 통째로 숯불 위에 굽는다. 겉면이 이 요리와 같이 짙은 황색이 될 때까지 네 면을 고루 굽고, 껍질에 버터를 바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버터와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버터를 바른 다음 또 굽고, 다시 바르기를 반복하여 완성한다. 재미있는 것은 먹을 때 가장 으뜸은 연한 것, 다음이 바삭바삭한 것, 마지막이 딱딱한 것이라 하여, 껍질을 즐기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크리스피한 껍질 밑에는 바로 고기가 붙어 있지 않다. 고기와 비슷한 식감을 가진 쫀득한 전병과 달콤짭짤한 첨면장을 깔고, 그 다음에 고기 부분이 얇게 들어가 있다. 전병과 고기 때문에 생각보다 포만감이 든다.
입 안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과자같이 바삭한 식감이다. 크리스피 치킨 대비 훨씬 두툼한데 바삭바삭함이 잘 느껴진다. 그 뒤로는 달달한 첨면장의 맛과 폭신한 전병이 씹히고, 마지막으로 고기의 부드러운 맛이 입 안에서 같이 어우러진다. 사실 이 요리를 특별하게 해 주는 가장 큰 부분은 과자같이 바삭한 껍질의 매력이다.
다음 요리는 식사로 주문한 Fried noodle with prown. 우리나라에서 자주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규모가 있는 중식당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초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팔진초면 등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기름에 지지듯 튀긴 면에 뜨거운 소스를 부어 먹는 요리다. 면이 눅눅해 질 것 같지만, 특유의 식감이 있어 맛이 괜찮았다. 누룽지탕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했는데, 약간 전분기가 있는 소스는 비슷한 느낌이 있지만, 누룽지탕과 달리 이 초면의 식감이 생각보다 오래 간다. 그리고 새우 하나 하나의 크기가 상당히 큰 편이라 먹을 것이 많다. 한 입에 새우 한 마리를 다 넣기 쉽지 않다.
면은 네 조각으로 나누어 나왔다. 절반 사이즈 주문이 가능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새우는 크기도 크지만 쫄깃한 식감을 잘 유지하고 있었고, 갑각류의 달달한 감칠맛 또한 잘 느껴졌다. 의외로 새우의 향과 함께 버섯 향이 강하게 나는데, 작은 동고버섯이 몇 조각 들어 있는데 요리의 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식사의 양이 상당히 많아 디저트는 배가 부르지 않을 것 같은 메뉴로 하나만 주문했다. 보통 중식의 디저트는 유럽식의 화려한 여러 가지 메뉴가 나온다기보다는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의 간단한 입가심 메뉴가 나오는 편이다. 후식으로 주문한 것은 코코넛 젤리인데, 이 세 조각이 1인분으로 상당히 양이 많은 편이다.
맛은 메론 맛과 코코넛 맛이 적절히 섞여서 느껴지는 것이, 부드러운 단 맛을 가진 고급진 메로나 맛이다. 식감도 위의 젤리 부분은 좀 더 탱글탱글하고, 아래 부분은 좀 더 부들부들하고 밀도가 느껴지는 식감이어서 위 아래의 맛과 식감이 모두 조금씩 다르다.
기본 디저트는 두 가지가 나왔는데, 배 모양의 디저트는 펑리수다. 젤리는 안쪽에 약간 매콤한 느낌의 재료들을 넣어 깔끔한 맛을 느끼도록 하였다.
엄밀히 말해, 탕 코트의 시설이나 분위기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에서 연상되는 것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홍콩의 레스토랑' 이라는 표현을 붙으면 꽤 잘 어울린다. 식사하는 데 있어서 불편함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이런 덜 부담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부담 없이 식사하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대가 컸던 크리스피 치킨과 새끼 돼지 구이는 충분히 맛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래봐야 닭고기와 돼지고기 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런 평범하다 할 수 있는 식재료로 이렇게 맛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하고 싶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음식 자체의 향이나 기름이 과하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도 잘 맞을 수 있는 맛이라는 점이다. 도통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처음 먹어보는 외국 요리가 아니라, '아 이 맛 대충 아는데 이렇게까지 날 수 있다고?' 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곳이다. 만약 홍콩을 다시 방문한다면, 특히 이 치킨을 위해 다시 찾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