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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by Feb 18. 2024

홍콩에서 만나는 상해 요리와 그 역사

Ye Shanghai in Hong Kong, 2024

홍콩은 좁은 면적에 비해 대단히 화려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홍콩섬과 구룡반도간 서로 마주 보는 구간은 매일 밤 여덟 시마다 해안을 빽빽하게 둘러싼 마천루들이 펼치는 빛의 오페라, 심포니 오브 라이트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구룡반도 쪽에서 이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비롯한 홍콩섬의 마천루들을 잘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는 해안가를 따라 조성된 스타의 거리다.

스타의 거리, 그리고 K11 MUSEA

스타의 거리는 홍콩의 전설적인 배우인 브루스 리, 이소룡의 동상을 비롯하여 홍콩의 명배우들과 영화제작자, 감독 등의 핸드 프린팅이 있는 해안 산책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항구가 있는 곳 답게 모래사장은 아니고, 잘 포장된 길이다. 그리고 번화가 답게 대형 쇼핑몰이나 고급 호텔들이 스타의 거리 뒷편으로 입점해 있는데, 리젠트 호텔과 새롭게 조성되었다는 명품 쇼핑몰 K11 MUSEA가 대표적이다.


 이 글의 주제인 Ye Shanghai, 예 상하이는 우리나라 식으로 읽으면 '야상해' 그러니까 상해의 밤이라는 의미다. 마천루가 빚어내는 화려한 야경으로 유명한 홍콩에서, 그것도 야경의 명소로 손꼽히는 스타의 거리에서 정작 상해의 밤이라니 약간 의아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당분간 상해에 가 볼 것 같지는 않으니 홍콩에 온 김에 상해 요리를 즐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식당은 홍콩에 두 곳 이외에도 대만이나 상해에도 지점이 있으며, 스타의 거리에 있는 지점은 미슐랭 1스타를 획득하고 있다. (그러니까 홍콩이어도 제대로 된 상해 요리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방문했다.)




상해 요리의 역사


우리에게 광둥 요리, 사천 요리 등의 명칭은 비교적 익숙한 반면, 상해 요리라는 명칭은 그렇게 자주 들어볼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상하이 시 자체도 열강의 침략에 의한 조계지 설치 이전까지는 한적한 어촌 마을 수준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역사에 등장하던 곳도 아니다. 이 일대에는 우리에게 삼국지의 오나라 수도로 알려져 있는 건업에서부터 내려오는 역사적인 대도시 난징을 비롯하여 쑤저우나 항저우 같은 역사적 대도시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건륭제 시절이 되어서야 조금씩 주목을 받던 상하이는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그야말로 대 격변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이전까지 한적한 어촌이었던 상하이의 요리가 특별히 '상해 요리' 로 호칭될 만한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상하이 요리는 음식이 유명한 인근 지역인 닝보, 쑤저우 등의 요리들이 합쳐지면서 생겨났는데, 상하이 방언 또한 닝보와 쑤저우 등의 방언이 합쳐져서 생겨난 것으로 본다. 상하이 요리의 특징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농유적장' 이라 하여 기름이 많고 단맛과 농후함이 느껴지는 특유의 간장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상해 요리의 대표 중 하나로 알려진 홍소육 같은 간장 조림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홍소육은 굳이 따지면 돼지고기 간장 조림이니까 당연히 다른 지역에서도 맛볼 수 있다.


상하이는 갓 태동하던 젊은 도시였으므로, 그 요리가 처음부터 고급 요리로 인정받는다던가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중화민국, 그러니까 청나라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시대에 이미 상하이는 번성하고 있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상하이 요리보다는 닝보 요리 등이 더 고급 요리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1930년대에 이르러 황푸강 기슭의 덕흥관(1878년경 창업) 등의 식당들이 상해 요리를 고급화 및 특색화하고, 당대의 유명인인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 같은 인사가 상하이 요리를 즐겨 찾으면서 별도의 요리 분류로서 대접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최근 왕가위가 감독한 드라마 '번화' 가 중국에서 대단히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고도성장기의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중국 사람들이 그 때의 고도성장기를 회상하며 향수에 젖는다고 하는데, 중일전쟁 직후의 상하이 사람들 또한 비슷한 심리가 있었던 것 같다. 전쟁 이전의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풍토가 있었는데, 이러한 그리움을 달래주던 것 중 하나가 상해 요리였다.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 또한 이러한 상해 요리를 즐겼다고 한다. 이 때 형성된 상해 요리는 이후 국부천대 등 혼란기에 많은 상하이 사람들이 홍콩, 대만 등지로 이주하면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홍콩의 노스포인트에는 상하이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아 상해 요리 식당들이 번성하였으며, 이민자들 중 상당수가 부유한 자들이 많아 호화로운 연회 요리로도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물론 오늘 방문하려는 예 상하이는 이러한 것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식당의 분점이 있는 곳이 홍콩과 대만, 상하이라고 하니 왠지 의미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이후 상하이 시의 급격한 경제적 성장에 따라, 상해 요리는 번영을 상징하는 요리가 되어 1990년대 말 개혁개방 정책과 함께 중국 전역에 보급되었다고 한다.





스타의 거리에 위치한 K11 MUSEA 쇼핑몰은 각종 명품으로 가득한 것이 왠지 화려한 홍콩과 상하이 모두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7층으로 나가면 별도의 작은 옥상정원이 있고, 그 정원을 통과하여 다시 들어가면 세 곳 정도의 식당이 모여 있다. (다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정원을 통과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중 한 곳이 예 상하이인데, 입구는 사실 우리나라 쇼핑몰 레스토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장식 등이 여기가 중국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정도.

스타필드라고 해도 넘어갈 것 같다.


1930년대 상하이를 '동양의 파리' 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와 유사하게, 번영과 또 그 특유의 시대적 분위기가 있었던 도시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내부에는 당시 스타일의 흑백사진들과 중국 스타일의 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만 식사를 할 수 있는 홀의 경우, 아무래도 쇼핑몰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테이블 당 간격이 그렇게 넓지 않다. 다만 이는 홍콩이 워낙 부동산 가격이 비싸 대부분의 고급 식당이 겪는 어려움이라고 한다. 인근 마카오만 하더라도 공간을 여유있게 쓸 수 있지만, 홍콩은 그렇게 썼다가는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발코니에서는 야경을 바라보며 주류를 마실 수 있는데, 앞 쪽으로 홍콩예술관과 돔 형태의 홍콩과학관 등이 내려다 보인다. 홍콩과학관 우측의 건물은 유명한 페닌술라 호텔이다.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더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예약을 굳이 하지 않아도 식사가 가능할 것 같은 분위기이기는 했다. (토요일 저녁 시간으로 거의 만석이기는 했으나, 예약 없이 찾아온 워크인 고객을 돌려보내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고급 중식당의 가장 기본적인 셋팅. 두 개의 젓가락이 나왔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보통 중식당은 큰 접시에 요리가 가득 나오고, 그것을 덜어 먹도록 되어 있다. 젓가락 하나는 큰 접시에서 요리를 가져오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덜어온 음식을 입 안으로 가져가는 개인 젓가락이다.


여의도의 모 중식당을 갔을 때, 작은 볼 형태의 개인 그릇이 어색하여 식사하는 인원들 모두 그 밑에 받침으로 나온 접시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중식에서는 개인 그릇이 이렇게 볼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 게가 그려진 접시는 보통 치운다.)


많은 메뉴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중식 특유의 스타일답게 메뉴판은 거의 책처럼 두툼하다. 하지만 이 메뉴판만 들여다 보고 있으면 식사 진행이 될 리가 만무하니, 보통 추천 메뉴를 별도로 표시해 둔다. 미슐랭 1스타라는 점을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과하지 않은 가격의 세트 메뉴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예상하지 않았던 스페셜 디너 세트 메뉴를 추천 받았는데, 구성을 보니 생각보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예산은 상당히 초과될 것 같지만, 구성을 보니 전복과 제비집 수프를 포함해서 다양한 가짓수의 요리가 포함되어 있다. 요리 하나하나의 양이 상당히 많은 중식 특성상 세트 메뉴가 아니면 이렇게 다양하게 먹어볼 수 없기 때문에, 이 메뉴로 하기로 했다.



예산을 상당히 오버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의아한 것이, 별도로 차에 대한 이야기 없이 스파클링 또는 미네랄 워터만 물어보고 가져다 주었다는 점. 외국인이어서 그랬을까? 우리도 첫 식사여서 큰 생각을 못했는데, 먹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를 곁들였다면 좀 더 좋은 식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전채는 총 다섯 가지가 작은 그릇에 준비되어 나왔다.

Drunken chicken, Sliced pork terrine with Zhenjiang black vinegar, Jelly fish in spring onion oil and cucumber, Tea leaf smoked egg, Crispy eel.



찻잎에 훈제한 오리알은 노른자의 반숙 정도가 딱 좋아하는 정도였고 은은한 향이 입혀져 있었다. (egg라고만 표현했는데, 한문을 읽어보면 오리알이다) 그 옆은 우리 식으로 하면 해파리 냉채인데, 해파리 냉채 하면 생각나는 새콤달콤한 양념이 아니라 파기름을 썼다고 하더니 약간 고소한 정도의 양념만 하였다. 옆에는 아주 약간의 겨자를 곁들여 주었는데, 그 맛이 강하지 않아 전체적으로 고소한 맛과 꼬들거리는 식감, 아삭한 오이의 식감을 즐기도록 구성했다. 새콤달콤한 맛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윗쪽의 편육과 같은 것은 포크 테린으로 번역했는데, 난징 인근의 전장(진장)시의 음식이다. (익산시의 자매결연 도시라고 한다.) 3대 특산품이 진강식초, 돼지다리 누름고기, 진강소면이라고 하는데 식초와 돼지고기를 낸 것으로 보인다. 상해 음식이 근대에 형성되면서 인근 지역의 영향을 다양하게 받았다고 하는데, 그런 설명이 생각나는 메뉴. 부드럽게 녹는 듯 한 식감이 인상적이며 감칠맛 또한 좋다. 옆에 곁들인 진강식초는 전반적으로 맛이 무겁고 중후한 느낌을 준다.


드렁큰 치킨은 주취계라고 적었는데, 차갑게 먹는 닭고기 냉채 같은 느낌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다른 곳에서 먹어본 닭고기는 중식 특유의 향이 강하게 올라오는 느낌이 있었는데, 예 상하이의 닭은 술을 사용하여 중국 술의 향이 과하지 않게 올라온다. 약간 달달한 맛과, 술이 들어가긴 확실히 들어갔다는 맛을 느끼게 해 주는 향과 맛이 남아있으면서 닭고기의 껍질과 그 밑의 지방을 살려내어 기름기 있는 맛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크리스피 일은 겉모양과 맛이 가장 일치하지 않는 음식이다. 거무튀튀하여 손이 잘 가지 않게 생긴 모양과 다르게 바삭바삭한 것이 김과자 같은 식감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 맛은 새콤달콤한 양념을 입혀서 역시 또 한번 기대와 다른 맛을 내며, 얹어져 있는 채 썬 생각이 정확하게 포인트를 잡아주어 여러 가지 맛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복합적으로 어렵게 조합한 맛이 아니라 그냥 달고 바삭하고 그 와중에 생강의 매운 맛이 살짝 그 맛을 더하는 느낌인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다.


다음 요리는 게 살을 곁들인 제비집 수프.

청대를 배경으로 한 중국 사극을 보면, 이 제비집을 후식으로 먹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제비집 자체는 특별히 맛이 난다기 보다는 식감으로 먹는 것이며, 맛은 이 제비집과 함께 낸 다른 재료들이 결정한다. 이 요리는 신선한 게 살을 사용하였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도 이 게살 스프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이 게살 스프는 좀 더 인상적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국물을 별도로 우려 내고, 그 안에 게 살을 별도로 조리해서 넣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 삼계탕집에서도 볼 수 있는 방법인데, 국물 내는 닭은 푹 고아 내고 고기 먹을 닭은 따로 조리해서 넣는 것이다. 이 스프도 그렇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게 살에서 나오는 향과, 살 자체에 들어 있는 달달한 게 맛이 전혀 빠지지 않았기 때문. 그렇다고 스프에서 게 맛이 나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역시 향을 가득 머금고 있다.


제비집 요리에 대한 기록은 청대에 이미 많이 발견되는데, 청 황실은 황실 요리를 만석, 한석 등으로 만주의 요리와 한족의 요리로 나누어 체계를 잡았다. 그 중 한석, 즉 한족 요리의 대표 메뉴 중 하나가 바로 이 제비집이었는데, 황실 또는 정부의 연회에도 빠지지 않고 올랐다. 이는 미국의 전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가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동행했던 저널리스트 존 영은 제비집에 대해 존중을 표하면서도 '단순히 맛이 느껴지지 않으며, 조미가 필요한, 불쾌하지는 않은 끈기가 있는 음식' 이라는 표현을 남겼다.


개인적으로도 아마 이 스프에서 게살의 맛을 제외한다면 비슷한 평을 남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불쾌하지는 않은 끈기' 인 식감이야말로 제비집 요리를 즐기는 이유라고 하는데, 제비집의 식감은 꼬들꼬들한 해초와 뭉근한 계란 흰자 사이의 어딘가 정도로 느껴졌다. 전반적으로는 흰자 쪽에 더 가까운 부드러운 식감인데, 살짝살짝 느껴지는 젤라틴 같은 느낌이 해초의 식감을 준다.


그 다음은 말린 전복. 중식에서는 여러 가지 비싸고 귀한 재료가 있지만, 아마 그 중 최고로 치는 것이 말린 전복이 아닐까 싶다. 홍콩에서 말린 전복으로 유명한 Forum 식당 같은 경우 전설적인 셰프 영 쿤 얏이 덩사오핑에게 전복을 대접한 것으로 유명한데, 메뉴판 첫 머리의 전복은 '싯가'. 전복의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으나 가장 비싸게 기재되어 있는 가격은 7200 홍콩달러로 120만원을 호가한다. (아마 더 큰 것은 싯가의 영역일 것이다.) 역시 또 다른 Sun tung rok 식당은 200만원이 넘는 전복이 있다고 한다. 물론 하나당 가격이다.


중국인들의 전복에 대한 사랑은 예전부터 이어져 와서, 오래 전부터 나가사키에서 건전복, 건해삼 등을 수입해 왔다고 하며 지금도 일본의 전복을 최상품으로 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만 월급쟁이의 소득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가격이라 군침만 삼키며 한 수 아래라는 아프리카 전복 등을 먹어볼 수 없을까 하던 차에, 코스 메뉴에 포함된 전복이지만 이게 어디랴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예 상하이에서도 단품으로 전복을 주문하면 하나당 7만원 정도를 받는다. 역시 방문 예정이었던 홍콩의 3스타 레스토랑 탕 코트도 남아프리카 전복 가격이 이 정도. 이 코스의 절반은 이 전복 값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전복을 잘 먹지 않는데, 전복의 가격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전복과 같은 가격에 먹을 수 있는 다른 음식들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왕 홍콩에 왔으니 중국인들이 그토록 최고의 맛 중 하나로 치는 전복 맛을 보자 라는 생각이었는데, 먹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요리를 통틀어 가장 감칠맛이 입 안에서 터져 나오는 맛. 계속 씹고 싶어서 목으로 넘기기 아쉬운 수준의 맛이었다. 물론 더 좋은 전복은 더 맛있겠지만, 이 처음 먹어본 맛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전복의 맛을 농축하고 또 농축한 맛이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생각해 보면 생 오징어보다 말린 오징어의 감칠맛이 더 뛰어난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엄밀히 따지면, 예 상하이의 서빙이나 전반적인 분위기 등은 냉정하게 말하면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서빙 시간은 다소 일정하지 않아 한참 기다린 요리가 있는 반면, 아직 앞 요리를 다 먹지 않았는데 뒷 요리를 가져오기도 했다. 테이블 간격이 넓지 않고 공간 자체가 협소한 느낌이 있다 보니, 술을 다소 과하게 마시면서 시끄럽게 이야기 하는 테이블이 바로 옆 테이블이라면 신경이 쓰일 법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복의 맛은 이 식사에 대하여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설령 이것이 식당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식재료 자체의 맛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2시간 이상 지속되는 식사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힐 만 한 맛이었다.




다음 메뉴는 XO 칠리 소스를 활용한 새우. 새우도 나쁘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마늘 맛이 강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칠리 소스보다는 조금 더 달착지근하며 새콤한 맛이 덜 한 이 소스의 맛이 취향에 맞았다. 옆에 칩을 몇 개 곁들여 내었는데, 소스에 공을 들인 만큼 이 소스를 다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 느낌.



그 다음은 게 살을 발라낸 다음 살짝 느껴지는 커리 양념 등과 함께 채워 구워 냈다. 오히려 앞에 선보였던 제비집 수프가 게 맛이 강하게 느껴진다면, 이 요리는 게 자체의 맛을 보여주기보다는 커리향을 곁들여 좀 더 다른 맛을 선보이는 느낌이다. 흑식초 느낌의 소스를 같이 곁들여 주었는데, 단짠한 느낌과 살짝 새콤한 느낌까지 겹쳐 맛이 괜찮았다. 사실 이 소스가 맛있다. 게 자체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앞서 제비집 수프를 더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


다음 요리는 Steamed cod with huadiao wine & fermanted rice.

Cod는 보통 대구를 의미하는지라 담백한 대구가 나올 줄 알았는데, 두툼한 살을 자랑하는 흰 살 생선이 나왔다. 메뉴판을 다시 읽어 보니 한자로는 은설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메로다. 우리나라에는 수입되는 양이 많지 않아 비싸다고 하며,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거의 대부분 소비된다고 한다.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심해어라고 하며, 완전한 성체는 1m가 넘는다고 하니 두툼한 살이 이해가 된다. 심해어라서 그런지 생선 자체의 기름기가 굉장히 많은 편이다. 결대로 생선 살을 쪼개면, 그 쪼개진 살 사이로 생선의 기름기가 배어 나올 정도. 


소스는 새콤하고 살짝 짭짜름한 느낌의 맑은 소스를 썼는데, 아마 생선 자체의 기름기가 대단히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품 기준으로는 세 피스가 하나의 요리라고 하는데, 한 사람이 한 피스 이상 먹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처음 한 입은 부드럽게 부서지는 살과 새콤한 소스, 기름기 농후한 살이 어우러져 그 맛이 좋은데, 두 개 먹기에는 솔직히 너무 기름지다.




요리 중 마지막은 Steamed pork belly. 한문을 읽어 보면 볏짚으로 감싼 고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작은 빵과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준비되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파육 내지 홍소육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비계가 있는 돼지고기 뱃살을 넉넉하게 잘라서 간장 등에 찐 느낌인데, 맛의 강도는 제법 강한 편이다. 그래서 작은 빵을 같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간장과 설탕을 넉넉하게 이용해 진한 맛을 내는 것 또한 상해 요리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하니 그 특성의 반영일지도.




저녁이지만 딤섬이 하나 준비되었는데, 유명한 상해소롱포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소롱포의 가운데 롱자는 농구 할때 농자와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헷갈리지 않는다. 대바구니 롱 자로, 대나무 바구니에 들어 있는 만두.) 딤섬이라는 말 자체는 우리 말로 읽으면 점심이고, 범위는 넓지만 엄밀히 따지면 광동 지방의 요리를 말한다. 한편 소롱포는 상해 요리이기 때문에 소롱포를 딤섬이라고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대부분 딤섬 메뉴에 포함되어 있다. 


가장 상해 요리라고 생각할 만 한 요리였으나, 생각보다는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보통 소롱포는 안의 육수가 너무 뜨거워 입 안에 화상을 입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국자같이 생긴 중신 숟가락에 올린 다음 터트려 식혀 먹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입 안에서 육수와 고기, 피가 어우러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열심히 불어서 조금이라도 식힌 다음 입 안에서 그냥 터뜨려 먹는 편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화상을 입지는 않았다.) 대만의 유명 소롱포 맛집이라고 불리는 딘타이펑 외에도 미슐랭 가이드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소롱포 전문 가게들에서 먹었던 것에 비해, 다소 그 특유의 향과 진한 육수의 맛이 어우러지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아마도 저녁이라 소롱포가 잘 나가지 않아 만들어 놓은 것을 데워 나온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잠깐 들었다. 대만의 소롱포 전문 가게들의 경우 메뉴 자체가 소롱포밖에 없어 (딘타이펑은 다른 메뉴도 많지만, 소롱포가 엄청나게 나간다) 끊임없이 만들고, 찌고, 바로바로 내가는 반면 예 상하이는 소롱포 먹는 테이블은 우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후식은 전형적인 중식 후식인 행인차. Sweet almond cream with egg white. 계란 흰자와 우리가 흔히 살구씨로 알고 있는 행인을 사용하였다. 다만 살구씨의 경우 약재로 사용되기도 하며 너무 많이 먹으면 중독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음식으로 쓸 때는 대부분 아몬드 등 다른 견과류로 대체한다고 알려져 있다. 고소하고 약간의 달달한 맛과 함께 특유의 향이 나는데, 이를 약간 약품 내지는 화장품 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미식의 도시, 홍콩에서의 첫 음식으로 선택한 것이 상해 요리라니 다소 뜬금없을 수 있는 선택이었지만, 결론적으로 좋은 첫 출발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상해 요리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요리인지까지 구분하기는 내 지식과 경험으로는 어려웠다. 


다만, 중식이라는 대단히 넓은 카테고리 자체도 생소한 내 입장에서는 최대한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식사가 아니었나 싶다. 대단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전복을 제외하더라도, 대체적으로 중식(혹은 상해 요리, 어쩌면 홍콩 요리)에서는 이런 스타일로 요리가 나오는구나 라는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식당 자체가 접근성이 좋은 (명품 쇼핑몰인 것 같기는 하지만) 쇼핑몰에 위치하고 있었고,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도 와서 식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 더욱 뜬금없다거나 일상과 동떨어진 요리라기보다는 중국의 보편적인 요리를 먹어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그 점에서도 만족스러운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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