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국조, 키위새
새가 꼭 날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
내가 사는 도시 웰링턴에서는 겨울밤, 때때로 가로수 밑으로 걸을 때면, 한국의 여름밤에서 맡을 수 있는 풀냄새가 난다. 혼란스럽다. 축축한 풀냄새. 겨울에 맡는 여름철 풀냄새.
오늘 P가 내 사무실에 찾아와 얼마 전 시도했던 프로젝트 펀딩에 대해 물었다. 지난주 웰링턴 시청에 찾아가, 시 단위 온실가스 측정 필요성에 대해 발표했다. 한국에서라면 시도도 하지 않을 정말 쥐꼬리만 한 돈이었지만, 외국에서 처음으로 펀딩에 도전한다는데 의미가 있었다. 발표 후 한 30분가량 회의를 했다. 꽤나 긍정적이었다. 이후에도 메일로 계속 일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P가 물었다. “H, 항공관측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어떻게 됐어요?”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있는 말을 해버렸다. “때론 완전히 길을 잃은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P가 깜짝 놀란다. 나도 말해버리고 놀랐다. 왜 이런 솔직한 말을 해버렸지? “어떤 면에서..?” “여러 면에서요.” “커리어적인 부분이요?” “그저 겉도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다. 집에 가고 싶었다. 매일, 매 순간, 한국에선 두 번 다시 일하고 싶지 않은데, 또 돌아가고 싶었다. 이 양가적 감정은 나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끊임없이 찾아온다.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것 맞을까? 나 정말 여기 잘 속해 있는 것 맞나. 끊임없는 질문이 계속 나온다. 그렇다고 평생 이국 땅에서 살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돌아간다면 그럼, 어디로 가면 좋을까? 정확한 답이 없다. 왜냐하면 가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는 누가 교수가 됐다더라, 누가 어느 연구소에서 승진했다더라 소식이 들렸다. 이렇게 한가롭게 놀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럼 뭘 더해야 한다는 건가. 그것도 모르겠다. 나이만 먹어가는데도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뉴질랜드에는 세 가지 종류의 키위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과일, 키위. 두 번째는 뉴질랜드 사람들을 키위라고 부르고, 마지막으로 뉴질랜드의 국조인 키위새가 있다. 키위새는 뉴질랜드에만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다.
키위새를 실제로 보기 위해선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저녁에 활동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키위를 보면 알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부리가 긴 새이다.
이 새의 가장 큰 특징은 날개가 없다. 날개가 없는데, 새라니!
뉴질랜드에는 키위와 같이 날개가 없는 새들(Flightless birds)이 많다. 키위, 타카헤, 웨카 등등. 그냥 알처럼 동그란 몸뚱이에 다리가 쑥 나와있는 모습이다. 나는 이 중 타카헤를 좋아하는 데, 깃털이 아름답고, 하루에 9m의 똥을 싸기 때문(?)이다. 얼마나 귀하게 여김을 받으면 사람들이 그들의 똥을 측정하기까지 할까?
이 새들의 날개가 왜 없어졌는지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으나, 가장 유력한 것은 이들이 천적이 없어서라고 한다. 사람들이 뉴질랜드로 이주하기 이전, 뉴질랜드에는 박쥐 등이 이 땅에 사는 포유류의 전부였다고 한다. 그래서 새들은 날아다닐 필요가 없었고, 땅에 있는 맛있는 벌레와 꽃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된 거였다.
그러나 사람이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사람들은 다른 포유류들, 예를 들면 고양이, 쥐, 포섬, 족제비 등과 함께 이주했고, 이들은 키위새와 같이 날개가 없는 새들의 천적이 되었다. 야생에서 부화한 키위새 새끼의 90%가 6개월 내에 죽고, 이 중 70%가 이들 천적에 의해 죽는다.
그래서 뉴질랜드는 키위새와 같은 뉴질랜드 고유의 자연을 보호하는 데 진심이다. 신문에는 대문짝만 하게 ‘야생 보호구역에서 지난 2주 동안 족제비 4마리가 발견되었다!’와 같은 기사를 내보낸다. 이 야생보호구역 등에 가기 위해 우리는 자체적으로 이들 천적 등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어떤 과자나 샌드위치등이 있는지 확인한다. 뉴질랜드 박물관에 가면 키위의 천적인 포유류들이 악마처럼 박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또한 키위새는 -날개가 없이 살아남으려다 이렇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조류와 포유류의 중간 어디 매의 특성을 지닌다고 한다. 일단 사람만큼 빠르게 잘 달린다고. 키위새는 일반적인 새들과 달리 골수로 채워진 무거운 뼈를 갖고 있고, 특히 다리의 무게는 전체 몸무게의 30%에 달한다고 한다. 또 강아지처럼 후각이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흙아래에 있는 먹이를 잘 찾아낸단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이 여러 환경에 맞춰 편안할 땐 있던 날개도 없애고 살아남기 위해 새가 사람만큼 빠르게 달릴 수도 있다니. 놀랍다.
나는 키위새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묘한 위로를 받는다. 새인데 날개가 없는 새라니. 나의 어느 부분이 성장되어 가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뉴질랜드에서의 시간이 나를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한 것을 알게 되겠지. 이 삶이 새에게 날개를 없애는 것이 되더라도 튼튼한 다리를 또한 탄생시킬 것이다.
어느 방법으로 든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새가 꼭 날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
분명 도망쳐 왔음에도, 그럼에도 다시 또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했던 말. ‘조금만 더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