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아침의 나라

아침형 인간들이 사는 뉴질랜드

by Self Belief
이불을 개기 시작했다.


서구권에 우리나라(조선)가 처음으로 소개되었을 때, 우리나라를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표현했다고 하는데, 나는 절대 그 말이 사실일리 없다고 믿는다. 아마도 우리나라를 와보지도 않은 이들이 잘못 부른 표현일 것이다.


고요 혹은 아침 그 어느 것도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그 어떤 나라보다 역동적이다. 새벽까지 혹은 밤새 놀고 그다음 날 아침에도 분주히 일어나 출근을 하니 아침의 나라만도 아니다. 24시간 역동적인, 부지런히 놀고 부지런히 일하는 민족이다. 이렇게 신나 있는 민족에게 쇄국정책을 했다니. 실로 당황스럽다. 우리 민족의 진가를 몰라본 정책 중 하나이다. 만일 문호를 개방했다면 더욱 빨리 K-컬처가 오만군대를 점령했을 것을!


찐 아침의 나라는 뉴질랜드다. 모든 동네의 카페가 아침 7시에서 7시 30분이면 문을 연다.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은 커피와 간단한 아침을 먹으러 줄을 선다. 영화 에서처럼 동네 할아버지들은 커피와 간단한 아침식사를 먹으며 신문을 보고, 젊은 이들은 수다를 떨며 아침을 먹는다.

그러니 카페는 아침이 제일 바쁘다. 이렇게 일찍 문을 연 카페는 오후 4시 30분이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 우리나라는 밤 11시에도 문을 연 카페들이 실컷 있는데 말이다.


식당 또한 오후 늦게 까지 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후 9시만 되더라도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고 온 세상이 고요해진다. 내가 사는 웰링턴은 심지어 뉴질랜드의 수도이지만 오후 9시면 갈 곳이 없다. 한국에서는 9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는데.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밤 9시부터 10시면 잠을 잔다고 했다. 그러니 아침 7시 30분에 카페 문을 열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뉴질랜드는 하루가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난다.


뉴질랜드 사람들과 유사하게는 아니지만 나의 생활 패턴도 어느샌가 약간씩 바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이불을 개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혹여 사람들이 한국에서의 내 일상을 들여다보면, 이 정도면 알코올중독자 아니야? 할 수도 있겠다.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달리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하루 종일 달리기를 한 느낌이었다.

하루 종일 숨이 차올랐다. 그래서 속이 탔고, 타오른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퇴근을 하면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몸을 누여 스르륵 잠에 들었다.


퇴근시간은 대략 밤 11시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회사와 집이 약 10분 내 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퇴근을 한 후 소파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결국 잠에 빠지면 아침에 출근하기 바빴다. 그렇게 바쁘게 출근하고 난 뒤 다시 11시. 퇴근을 하면 집안에는 식탁에 널려져 있는 맥주캔, 정리도 되지 않은 침대, 먹다 남은 과자들이 온 방안에 낭자했다.


거지가 된 느낌이었다. 그 쓰레기들과 내가 뒤섞여 있는 꼴 같았다. 때론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대체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전투적으로 살면서 쓰레기가 맞이하는 집에 들어와야 하는 지도.


나는 쓰레기를 치울 힘도 없어, 결국 그 쓰레기 가운데 앉아 아무 의미 없는 넷플릭스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고 다시 정리도 되지 않은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게 한국의 나였다.


그러나 뉴질랜드의 나는 달랐다.





나는 아침잠이 원래 많았다. 고등학교 3학년때에도 지각을 했던 게 나다. 몸에 밴 습관은 멈출 줄 몰랐다. 평생 아침밥을 먹기보단 잠을 선택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최대한 늦게 일어났는데, 한국에서는 아침 9시까지 출근을 해야 했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오고 싶은 시간에 출근을 하면 됐으므로, 나는 충분한 아침시간을 갖었다.

오히려 출근시간이 정해진 게 없으니, 나는 잠에 드는 게 큰 부담이 없었다. 보통 아침 8시경에 일어나서 9시경에 집을 나섰다. 9시부터 회의가 있는 날엔 좀 더 일찍 일어나기도 했다.

거의 5시면 퇴근했고, 달리는 느낌은 자주 느낄 수 없기에 맥주를 마실 일도 없었다. 몸이 약간 불편하면,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다. 퇴근하고서도 운동하고 저녁 먹고, 집안 정리, 설거지 등을 했고, 넷플릭스도 실컷 봤고, 자기 전에 책도 읽고, 글도 썼다. 그리고 한 12시면 잠에 들었다. 나 스스로에겐 나름 규칙적인 생활이었다.

저녁 약속이 있어도 9시경이면 가게가 문을 닫으니 어쩔 수 없이 모두 흩어졌다 (물론 한 친구의 홈파티에 가서 새벽 4시까지 논적은 딱 한번 있다). 친구가 집에 놀러 와도 9시경이면 떠났다.


이 여유가 나를 변하게 했다. 나를 숨차게 하지도 않았고, 집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도 줬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갰다. 세상 처음으로 이불을 갰다.


집에 들어올 때 최대한 깨끗하고 아름다운 상태로 집을 유지했다. 토요일이면 대청소를 했고, 한 달에 두어 번은 이불을 빨아서 깨끗한 세제 냄새와 바스락 거리는 건조함을 유지했다. 내가 나를 대접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집에 들어오면 나는 고급 호텔의 손님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시도할 수 조차 없었던 생활 습관이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내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에 도달했다.

나는 이렇게 내가 잘 채워지면 돌아가야지. 매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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