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이라는 새로운 변이의 코로나가 발생했다.
전파력이 엄청나다고 하더니 하루 확진자가 1만 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다 평생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봄이 오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시장으로 향하는 수호다.
봄이 다가오면서 부족한 일손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나물 손질을 도와주기로 하셨다.
겨울철에 가장 인기 좋은 섬초, 냉이, 유채 나물을 두 박스씩 사 들고 장인어른 댁으로 향하는 수호다.
시장에서 장인 어른댁으로 가는 초행길.
작년에 퇴사한 직원의 가게를 지나쳐 갈 수 있는 길이다.
몇 달 전, 덮밥집을 차렸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가본다고 해놓고 정신이 없어서 잊고 살았던 수호였다.
신호대기를 하는 구간에서 딱 그녀의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오픈 준비를 하느라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다.
수호네 매장에서 일하기 전에도 덮밥집을 운영했다고 하더니 그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덮밥집을 차린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간판이 덮밥집이 아니라 반찬가게다.
초록 불로 바뀌면서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간판이 왜 덮밥집이 아니라 반찬가게지?’
내일 한번 가봐야겠다.
다음 날.
수호는 오픈도 축하해 줄 겸 덮밥집으로 향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진짜 반찬가게였다.
수호가 들어가자, 그녀는 살짝 당황한 모습이다.
“사장님, 여기까지 웬일이세요?”
“가게 오픈했다고 한번 오라면서요. 축하도 해줄 겸 왔죠. 근데 덮밥이 아니라 반찬가게를 차린 거였어요?”
“아니... 그게 지난주에 제가 업종을 바꿨어요. 덮밥 장사가 너무 안돼서요. 사장님께 말씀드리고 시작하려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죄송해요”
“아니, 뭐 죄송할 건 없는데, 우리 가게랑 거리도 좀 있고. 근데 왜 이 힘든 걸 선택한 거예요? 두 달 동안 일하면서 내가 힘들어하는 거 뻔히 옆에서 지켜봤으면서, 굳이 왜 반찬가게를 차렸어요?”
“이 근처에 회사원들이 많아서 덮밥집을 차린 거였는데, 코로나로 다들 재택근무 하니까 손님이 아예 없더라고요. 그래서 지난주부터 이 근처 동네 사람들 대상으로 반찬 좀 팔아보려고 시도하는 중이에요. 밖에 자세히 보시면 간판은 덮밥인데 천으로 가려서 반찬이라고 새로 걸어놨잖아요. 처음부터 반찬가게를 차린 게 아니었어요.”
“아이고, 이거 오래 못할 텐데? 아무리 장사에 경험이 많다고 해도 반찬가게를 혼자 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손이 워낙 많이 가는 거 알잖아요.”
“그래도 지금은 반찬이라도 조금씩 팔아서 애들 학원비랑 용돈 주고 있어요. 내가 벌어야 하는데 큰일이에요.”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혼자 영업하는 걸 보니 반찬의 종류도 그다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호네 가게와 배달 동선이 겹치는 위치였고, 반찬가게 레시피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겠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수호네 레시피는 주방 화구 쪽에 모두 붙어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언제든지 사진으로 찍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 직원이 더 걱정되었다.
아차, 지금은 직원이 아니지.
수호에게 이젠 그냥 누님이다.
이 누님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모든 걸 다 혼자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 봐도 힘들어 보였다.
수호는 가게를 오픈하면서 이 누님께 배운 것이 정말 많다.
포스, 배달, 손님 응대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수호에게는 모두 처음이라 생소하였다.
하지만 이 누님이 덕분에 단기간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적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쁜 것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1시간 정도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손님은 한 명도 들어오질 않는다.
그냥 이야기를 들어봐도 이 가게를 오래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호는 처음 들어올 때 생각했던 합리적 의심조차 사라졌다.
그만두고 덮밥집을 다시 한다고 할 때 많이 말렸던 수호다.
힘들 테니 다시 가게 하지 말고 여기서 직원으로 일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 말이다.
코로나가 심해지는 시국에 식당을 하겠다고 하니, 당연히 말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본인이 할 수 있다며 시작한 일인 것을...
수호 또한 그러지 않았나.
엎어진 물이다.
이렇게 된 거 잘해보라는 말과 함께 미리 준비해 간 흰 봉투를 건네고 나온다.
개업 선물로 가장 좋은 것은 휴지도 아니고, 화분도 아니다.
돈이 가장 좋다.
수호도 개업 선물로 많은 화분을 받았다.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아직까지도 처치 곤란이다.
잘 자라게끔 관리한다는 것도 힘들고, 시들면 버리러 갈 시간조차 만들기 어려운 자영업자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