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여기 마트에 반찬가게 생긴데요!! 사람 모집한다고 현수막 걸고 있어요!”
“마트 안에요??”
“네네. 사람 뽑아서 운영할 건가 봐요. 어떡해요??”
“뭘 어떡해요.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거지. 우리가 더 맛있으면 손님들은 와주겠죠.”
반찬가게라는 것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쉽게 생길 수 있는 업종은 아니다.
그런데 마트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건 너무 큰 변수였다.
직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 손님이 들어와 이야기한다.
“사장님, 여기 마트에 반찬가게 생긴다는 거 아시죠?”
“저도 오늘 알았습니다. 언제 생긴데요?”
“그건 모르겠고 사람 모집한다고 현수막 붙이는 거 보니까 곧 오픈할 거 같던데?”
“마트 안에 생기면 사람들도 많이 이용할 수 있겠네요”
“그렇겠죠. 마트에서 팔면 여기보다 가격이 더 쌀 텐데. 사장님 분발해야겠어요.”
비싸다고 자주 투덜거리던 손님이다.
‘마트에 반찬가게 생기면 너네도 힘들걸’이라는 느낌으로 비꼬듯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수호네 가게에서 도보로 1분만 걸어가면 동네 사람들 모두가 이용하는 대형마트가 있다.
4,000세대 항아리 상권 안에 있는 유일한 마트다.
그 안에 반찬가게가 생긴다고 한다.
안 그래도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는 수호였다.
그런데 경쟁상대까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삶의 의욕마저 뚝뚝 떨어진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마트를 방문해 보니 사실이었다.
출입구 앞에 화구와 반찬용 쇼케이스까지 들어온 상태였고, 옆에는 큰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마트 내에서 직원을 고용하여 직접 반찬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마트는 연계된 도매시장을 통해 자재들을 싸게 구해올 수 있고, 소진하지 못한 재료들도 활용할 수 있으니 가격 경쟁에서도 훨씬 앞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호네 같은 프랜차이즈 반찬가게보다 훨씬 저렴하게 팔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공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더니...
벌써부터 멘탈이 무너지면서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마냥 아프기 시작하는 수호다.
‘여기 생기는 반찬가게를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내 가게도 반대편에 없어진 반찬가게 꼴이 되겠구나.’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결국 도태되는구나!’
정말...
아프니까 사장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고, 은채는 그런 수호를 위로하며 말한다.
“오빠, 그래도 지금 가게 매출이 어느 정도 나오니까 팔아보는 건 어때? 반찬가게 너무 힘들고 이걸 계속 끌고 가다가는 오빠가 먼저 아파서 쓰러질 것 같아. 부동산이나 점포 매매하는 곳에 매물로 내놔보자.”
“팔 수 있을까? 요새 코로나 때문에 망하는 곳도 많고 공실도 많다는데 가능하려나.”
“일단 해보자. 가게가 잘될 때 팔려고 시도해 봐야 누군가 보기라도 할 거 아냐.”
“그래. 알겠어. 한번 알아볼게”
다음날 수호는 바로 점포매매에 대해 알아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직접 점포를 등록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었고,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인터넷 카페에도 매도한다는 글을 올릴 수 있었다.
수호는 이 카페를 이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카페 이름을 어쩜 이렇게 잘 지었는지 몇 날 며칠을 감탄했다.
이 카페는 많은 자영업자들이 서로의 일상이나 고충을 이야기하며, 정보를 나누고 도와주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수호는 점포 매도 게시판을 보며 엄청나게 놀랐다.
전국에 있는 다양한 업종의 매도 글이 1~2분 간격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부터 시작해서 스터디카페, 밀키트, 무인 아이스크림, 애견숍, 무인 문방구 등등.
모든 업종의 글이 정말 끝도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수호는 입이 쩍 벌어진다.
‘가게를 팔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일단 반찬가게 매도 글을 모두 찾아본다.
그 어떤 글에도 힘들다거나 장사가 안된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대부분 반찬가게의 장점과 높은 매출만 적혀있을 뿐이다.
가게를 팔아야 하는데 굳이 좋지 않은 이야기를 쓸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수호도 비슷하게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4,000세대 항아리상권 유일한 프랜차이즈 반찬가게’
‘한 달 매출 3,000만 원, 순이익 400만 원 이상 보장.(부가세 자료 확인 가능)’
‘다른 매장과 함께 운영 중이라 이쪽을 정리하려고 내놓습니다’
힘들다는 이야기는 쏙 빼놓고 좋은 이야기로만 포장하여 글을 올린다.
이 카페 점포 매도 글 중에서 90%가 이런 식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장사가 잘되는 곳이라면 굳이 매물로 나올 이유도 없고, 권리금을 높게 산정하여 부동산에 내놓았을 것이다.
수호는 점포 매매를 하는 사이트 두 곳에도 매물을 상세하게 적어서 등록하였다.
매도 가격은 시설 투자금 1억과 권리금 3,000만 원을 합쳐 1억 3,000만 원.
매도 글을 모두 등록하고 나니 뭔가 시원섭섭한 수호다.
가게를 알아보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던 시간도 생각나고, 후배들과 들뜬 마음으로 가게 오픈을 준비하던 때도 생각난다.
500만 원의 순이익을 달성했을 때는 앞으로 승승장구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상황이 180도 변해버렸다.
반대편에 있던 반찬가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더 답답한 수호였다.
그렇다고 1억이라는 자금을 투자한 이곳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하기에도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사이트와 카페에 점포 매도 글을 올린 다음 날.
잠시 눈을 붙이려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점포 매도 글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저희는 점포 매도를 전문적으로 도와드리는 창업컴퍼니라는 회사입니다. 사장님 점포가 굉장히 메리트가 있고 주변에서 원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잠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네네, 근데 어제 글을 올렸는데 벌써 원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건가요?”
“그럼요. 거기 위치도 정말 좋고, 요새 코로나 때문에 반찬가게를 원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사장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매장을 방문해서 사진도 찍고 매출 자료도 받은 뒤에 매수자를 연결해볼까 하는데 한번 진행해 보실 의향 있으신가요?”
“저야 좋죠. 오전엔 직원들이 있으니, 오후에 방문해 주세요. 아직 직원들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을 거라서요.”
“그런데 사장님. 이게 비용이 조금 발생합니다. 저희는 컨설팅 업체라 초반에 작업에 필요한 비용이 발생해요. 그걸 결제해 주셔야 저희 쪽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거고요.”
“비용이 얼마나 하는데요?”
“점포 매도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컨설팅해 드리고, 아마 반찬가게는 3~6개월 정도면 매도하실 수 있을 거예요. 초기 컨설팅 비용은 300만 원이고요, 나중에 매도하시게 되면 매도금액에서 10%만 수수료로 저희에게 주시면 됩니다.”
“300만 원이요?? 아니 뭘 하는데, 300만 원씩 들어요?”
“사장님 가게에 대한 자료를 받은 뒤 권리분석, 매출 분석, 주변 시세 분석까지 다 조사하여 책자로 만들게 됩니다. 만들어진 책자를 통해 다른 컨설팅업체에도 뿌리고, 창업박람회 같은 곳에도 뿌려서 다양하게 홍보를 할 예정이고, 손님이 붙으면 그때부터 저희가 적극적으로 푸시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도 너무 비싼데요.”
“사장님께서 부동산에 내놓으면 주변에 소문이 나서 장사도 더 안될 것이고, 막상 부동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매도해 주지도 않을 겁니다. 저희는 사장님께서 매도를 하시면 수수료를 가져가는 구조라 적극적으로 빨리 매도하실 수 있게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가게를 빨리 매도하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은 감수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일단 와서 보고 얘기하시죠”
전화를 끊고 창업컴퍼니라는 곳에 대해 많이 찾아보고 알아보았다.
케바케였다.
어떤 사람들은 부동산에서 1년 동안 팔지 못했던 가게를 두 달 만에 매도할 수 있었다는 사람도 있고, 완전 사기라고 절대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
만약 부동산에 가게를 내놓으면 매수자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수호다.
부동산 사장님들이 적극적으로 손님을 찾아봐 줄 것 같지도 않고.
심지어 어제 올렸던 카페 매도 글은 벌써 저 멀리 뒤로 넘어가서 보이지도 않았다.
다음 날.
깔끔한 정장 차림의 창업컴퍼니 실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밤새 수호네 가게에 대해 분석해 보고 일찍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고 오셨다더라.
이 정도 위치에 하나밖에 없는 반찬가게라면 1억 3천보다 더 올려서 매도할 수 있다고 한다.
1년도 안 된 매장이라 상태도 매우 좋고 원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빠르면 3개월, 길면 6개월 안에 매도가 가능할 것 같다는 소리에 수호는 심장이 뜨거워졌다.
기간 안에 진행이 안 되더라도, 매도될 때까지 꼭 책임지겠다는 말에 수호는 홀딱 넘어간다.
마트 안에 반찬가게가 들어와 자리 잡기 전까지 꼭 매도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부동산에 내놓거나, 인터넷에 매도 글을 올리는 방법 모두 오래 걸릴 것 같았고,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하루빨리 이 반찬가게를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상태였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수호는 창업컴퍼니라는 곳과 계약을 하고, 바로 300만 원을 송금까지 했다.
초기 비용에다가 수수료 10%를 지불한다고 해도 충분히 남는 장사였고, 6개월 안에 반드시 매도해 줄 수 있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뒤로도 여러 컨설팅업체에서 가게를 매도해 주겠다며 전화가 계속 걸려 왔다.
가게만 매도할 수 있다면 300만 원이 아니라 1,000만 원도 줄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일단 기다려 보기로 하는 수호.
행복한 희망 회로를 돌리며 어느덧 시간은 4월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