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삼엽충인줄 알았다.
뉴욕에서 북동쪽을 향해 차로 1시간 정도 가면 작은 공원이 나옵니다. 존 보커치 공원이라는 곳인데요.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고 명소도 아닙니다. 진짜 그냥 동네 공원이에요. 특별한 게 있다면 바닷가에 접해있다는 점 정도입니다.
지도에 나온 주차장이랑 크기를 비교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주 작은 해변 비슷한 게 있는 동네 공원이에요.
그런데 이 별 볼 일 없는 동네 공원에 뉴욕 사는 2년 동안 몇 번이나 방문을 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서 쉽게 볼 수 있는 이 녀석 때문이지요.
이 공원은 사실 여기 오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죠. 집에서 1시간 떨어진 지역의 동네 공원을 알 리가 없잖아요.
구글 지도를 보고 근처에 있는 다른 해변이 참 깨끗해 보여서 왔는데 어찌나 부촌인지 멤버십이 없는 일반인은 출입을 통제하더라고요. 거참 억울해서 어쩝니까? 애들은 바닷가 간다고 신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그 근처에 가까운 바닷가를 검색해서 온 게 여기였어요.
처음에 짐 잔뜩 싸들고 주차장에서 모래사장을 향해 걷는데 꼬맹이들이 잔뜩 쭈그리고 앉아서 뭘 보고 있잖아요. 애들이 집중해서 보고 있는 건 엄청 시시하거나 엄청 대단한 거거든요. 그래서 가봤더니 글쎄.
바닥이 다 비치는 깨끗한 바닷물 안에 애들 등짝만 한 껍데기가 어림잡아 수십 마리는 돌아다니는 겁니다. 처음 보고 머리에 버퍼링이 걸려서 '이거 삼엽충인가? 멸종된 거 아닌가?' 한참 버벅거렸네요.
얘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인적이 드물어서 그런 것도 같아요. 물에서 헤엄치는 걸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물에 들어가면 어느새 사방에서 다가와서 정강이를 살살 긁으면서 탐색하고 있더라고요.
이때가 5월이었는데 그 해 여름은 여기서 났어요. 거의 주말마다 와서 어느 날은 바비큐 해 먹으면서 투구게 구경하고 어느 날은 조개 캐면서 투구게 구경하고 어느 날은 너구리가 쓰레기통 뒤지는 거 보면서 투구게 구경하고 말이죠.
뉴욕에 놀러 오는 지인이 있으면 무조건 추천 1순위 명소가 됐습니다. 물론 뉴욕 시내 관광하기도 바쁜데 1시간 떨어진 동네 공원까지 게를 보러 오시는 분은 좀처럼 안 계셨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