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에서 애 보고 지낸다고 하면 '시간 날 때 뭐 하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일단 시간이 안 납니다. 아빠들이 애를 거저 보는 게 아니에요. 집안 정리하고 청소하고 차 타고 마트 가서 식재료 사다가 반찬 해놓고 쓰레기 정리하고 나면 둘째 하교 시간이 되니까 여가 시간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좀 흥분했습니다만, 오늘 주제는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는가인 만큼 '여가 시간이 없는데요?'는 너무 무성의한 대답이죠. 그렇다면 궁금합니다. 음주 가무가 공식적으로 금지돼 있는 금욕의 나라에서 애들 학교 보내고 난 아빠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네. 없죠. 무슨 대답을 기대하셨는지요? 시간이 없다고 해도 사실 잘 뒤져보면 가물에 콩 나듯이 개인 시간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만, 아무리 궁리해도 마땅히 할 게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야 공공도서관도 워낙 잘 돼 있고, 시민대학이니 평생강좌니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커뮤니티도 있고, 성인 대상 학원도 많죠. 운동을 해도 되고요. 정 뭔가를 배우기 귀찮으면 공원에 산책이라도 갈 수 있잖아요. 사우디는 일반 시민에게 공개된 공공 도서관도 없고 학원도 없고 더워서 산책도 못 합니다.
산책을 아예 못 하는 건 아니고 이런 데서 하면 되긴 합니다...
물론 외국인이 집단으로 모여서 사는 컴파운드에 입주한다면 그 안에서 커뮤니티 시설이나 모임 같은 게 있습니다만 저는 컴파운드에 살지 않아서 해당사항이 없었네요.
그럴 때는 차를 타고 광야로 달리는 거죠.
제가 살던 동네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도 서쪽 끝에 있는 곳이었거든요. 서울로 치면 강서구 방화동 정도 됩니다. 서울에서는 그 밖으로 나가면 경기도가 있지만 리야드는 그 밖에 사막이 있습니다.
바위를 깎아 만든 도로
사막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죠. 모래가 지평선까지 쌓여 있고 사람이 불면 사구에 모래 바람이 날리고 말이죠. 실제로는 그보다 광야나 황무지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모래사막도 있지만 그건 좀 떨어져 있어요. 차로 한 시간 정도 가야 합니다.
오랜 세월 바람에 깎여 나간 기암괴석 사이로 낸 도로를 따라 리야드 밖으로 나가면 끝없는 황무지가 펼쳐집니다. 딱히 무슨 동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길이 쭉 뻗어 있어요. 이 길 이름이 '제다로드'입니다. 제다까지 1,000km 이어져 있거든요. 그 길을 달리는 겁니다.
"751km 앞에서 좌회전입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싶지만 무지막지하게 더운 데다 모래 바람도 부니 창문은 얌전히 잘 닫고 에어컨 틀고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겁니다. 제한속도는 시속 140km인데 그렇게 달리면 뒤에서 매섭게 하이빔을 켜고 추월하기 때문에 적당히 속도를 더 내주고요.
중간에 도로에서 옆으로 나간 곳에 가끔 마을이 있지만 도시라고 할만한 것 없기 때문에 제다로드에는 교차로도 지하차도도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시원하게 쭉 뻗어 있습니다. 주변에 볼 것도 마땅히 없어요. 낙타를 몰고 가는 아저씨가 가끔 보이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낫띵
아무것도 없는데 왜 달리냐, 그야 안 달린다고 마땅히 할 것도 없으니까요. 30분 정도 한참 달리면 고단했던 속이 좀 풀립니다. 아무래도 교통체증이 없다 보니 그저 달리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게 있어요.
달리다가 쉬고 싶으면 길가에 차를 대고 사막으로 살짝 타이어 한 줄만 걸쳐봅니다. 만용 부리다 바퀴 빠지면 곤란하니까요. 되돌아가고 싶으면 10km마다 한 번씩 유턴할 수 있는 고가가 나오는데 그리로 빠지면 됩니다.
사막에 본격 진입은 아니고 길가에 살짝
답답할 때 '드라이브하고 온다'라고 하잖아요. 서울에서야 드라이브하러 나갔다가 신호에 걸려, 체증에 걸려, 드라이브다운 드라이브는 하지도 못하고 끙끙대다 돌아오는데, 사우디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드라이브하기는 좋은 나라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