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도 신호등도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에 생긴 도시다 보니 도시의 역사 자체는 꽤 길어서 몇몇 왕조를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입니다만, 수도로 낙점되고 본격적으로 개발된 건 100년이 채 안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가 고속도로를 그물처럼 짜서 덮어씌운 계획도같이 생겼습니다. 간선도로 위주로 발달해서 구역간 이동에는 최적화 구조지요. 서울에 비유하면 올림픽대로가 강남에 한 줄 더 있고, 강변북로가 강북에 두 줄 정도 더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세로로도 대여섯 줄 있어야겠네요.
위성지도의 굵은 선이 간선도로입니다. 이 도로는 제한속도가 120km입니다. 리야드 경계 밖으로 나가면 140으로 올라갑니다. 올림픽대로가 80인 걸 감안하면 도심을 가로지르는 차로 치고는 엄청 빠르죠.
그리고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교차로가 고가 구조기 때문에 신호등이 없습니다. 신호등이 없으니 당연히 횡단보도도 없죠. 간선도로뿐만 아니라 일반도로도 유동인구가 엄청 많은 도심을 제외하면 대부분 횡단보도가 없습니다.
지도의 리야드파크몰은 우리나라로 치면 스타필드 정도 되는 손꼽히는 대형 쇼핑몰입니다. 하지만 음영처리 된 곳에서 쇼핑몰에 걸어가려면 제한속도 120km짜리 10차선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엄청나죠? 걸어서 접근할 수 없다니. 하지만 반전이 있는데요, 막상 살아보면 걸어서 길을 건널 수 없다는 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길 이쪽 편에도 건너편에도 인도가 없거든요. 네, 인도가 없습니다.
길이 어떻게 돼 있냐면요, 아래 사진처럼 건물 앞과 도로의 경계가 애매하게 이어지다가...
계속 걷다 보면 길이 있을 것 같이 이어지다가...
없다!
인도가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이런 식이에요. 길이 끊겼다는 안내표지도 없어서 무턱대고 걷다가는 막다른 공사장을 만나거나 인도가 뾰족하게 좁아지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처럼 휘어진 도로와 함께 인도도 함께 휘어버려서 강제 우회전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게 되는 일도 벌어지지요.
숙소에 머물면서 해질 무렵 산책을 나왔는데요,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저 멀리 보이는 인도가 끊어져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오 DHL도 있네?" 하면서 걷다가...
여기서 무단횡단으로 (그런데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아예 없는데 이것도 '무단' 횡단일까요?) 오른쪽으로 건너갔습니다만, 오른쪽으로 조금 이어지던 인도는 저 멀리 노란 간판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마치, 뭐랄까... 길에는 인도가 있어야 한다고 어디서 들었는데 그게 왜 있어야 하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설계를 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