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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사우디 남자들

부러우면 지는 겁니다만

사우디는 너무 더운 데다 자외선도 강해서 야외 스포츠 같은 실외 활동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수요가 없으니 인프라가 안 생기고 인프라가 없으니 수요가 생기지 않죠. 닭과 달걀입니다. 시간을 보낼 곳은 에어컨이 빵빵한 쇼핑몰밖에 없습니다.

리야드 쇼핑몰.png 대형 쇼핑몰이 많이 있습니다

쇼핑몰은 되게 잘 돼 있어요. 스타필드나 롯데몰 사이즈의 쇼핑몰이 1~2km마다 있고, 입점 업체는 글로벌 브랜드로 꽉 차 있습니다. H&M, ZARA, 나이키, 아디다스, 스타벅스, 카페베네 (깜짝 놀랐죠?), 던킨도넛 등등 익숙한 브랜드가 많습니다. 쇼핑몰 안에만 있으면 한국이랑 똑같아요.

20210325_213636.jpg 카페베네!

차이가 있다면 그 입점 업체들이 기도 시간만 되면 수시로 셔터를 (반만) 내린다는 점이랑 커피전문점에 대낮부터 남자들이 바글바글 하다는 점입니다.


사우디 전통복을 하얗게 차려입고 수염도 기른 남자들이 대낮부터 스타벅스에 마주 앉아서 조각케이크와 라테 한 잔씩 앞에 놓고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죠.

20210330_214302.jpg 낮 사진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요

남자들이 대낮부터 이러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일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직업이 없는 건 아니에요. 직업이 있습니다. 다만 출근을 안 하는 거죠. 근무 태만이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닙니다.


사우디에는 독특한 법이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면 같은 수만큼의 사우디인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경제활동이 자유롭지 않으니 사우디 남자를 고용하는 거죠.

20220601_090015.jpg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명품 시계 취급점입니다 그리고 영업 중이에요 기도 시간일 뿐

그렇게 고용된 사우디 남자는 근무 시간에만 적어도 3번 기도하러 자리를 비웁니다. 어림잡아 2~4시간 동안 일하는 사람이 매일 자리를 비우는 거예요. 팀워크가 될 리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우디인에게 월급만 주고 보직을 주지 않는 게 차라리 효율적일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사우디 남성들이 직장에 적만 올려두고 출근은 하지 않으면서 월급만 받는 구조가 생겨났습니다. 할 게 마땅히 없으니 낮부터 쇼핑몰에 모여서 조각케이크를 즐기는 것이죠. 물론 관리직이나 공무원은 출근을 합니다만 기도 시간에 사라지는 건 똑같습니다.

20220715_112349.jpg 영업 중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쇼핑몰

이 기이한 광경에는 아직까지 공개된 장소에서 남녀가 함께 앉아 있는 게 용납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합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은 예외입니다만, 흔히 생각하는 남녀의 카페 데이트가 불가능하다 보니 남자만으로 가득 찬 병영 식당 같은 모습이 연출될 수밖에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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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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