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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금식 기도, 밤에는 광란의 파티

라마단의 두 얼굴

라마단.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죠. 무슬림의 금식 기간입니다. 무슬림 달력으로 '4월'이라는 뜻인데요, (*9월로 정정합니다) 우리 음력처럼 무슬림력도 태양력과 매년 어긋납니다. 올해는 우리 4월과 비슷했는데 매년 한 달 정도씩 당겨집니다.


라마단이 되면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은 금식하고 기도에만 전념합니다. 미취학 아동과 외국인에게는 금식이 강요되지는 않습니다만, 낮에 식당이 아예 문을 안 열기 때문에 회사나 일터에서는 금식에 동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금식 기간이 무려 한 달 동안 지속되는 겁니다.

사우디 교통체증. 라마단 때는 아닙니다

라마단 때 쇼핑몰 안에 있다 보면 진귀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요, 어른이 맥도날드 햄버거 세트를 앞에 놓고 가만히 바라보면서 기다립니다. 6시가 되길 기다리는 거예요. 정확히는 '해 있는 동안 금식'이지만 실제로는 6시까지로 지키거든요.

(*실제로도 해 떠 있는 시간까지 지키는데 제가 본 날 일몰이 6시라 6시까지 지킨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모스크, 맥도날드, 커피. 필수 요소가 모두 있다

오후 4시쯤 되면 식당이 슬슬 문을 엽니다. 6시부터 먹으려면 미리 주문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러면 푸드코트 같은 넓은 공간에 빈자리가 없이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습니다. 모두들 음식이 앞에 있는데 멀뚱멀뚱 바라보면서 6시만 기다려요.

핫플에는 모름지기 전광판이 있어야...

그리고 저녁 9시쯤 되면 본격적인 광란의 밤이 시작됩니다. 번화가가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이 사람들이 대체 낮 동안 어디 있었나' 싶은 인파가 몰려나옵니다. 칵테일 바(물론 무알코올), 스테이크 하우스, 볼링장,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곳은 다 미어터집니다.


어느 정도냐면 저는 보통 저녁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기도 시간도 피해서 밤 10쯤에 마트에 가서 쾌적하게 장을 보고 오는 편이거든요. 그렇지만 이 시기만큼은 밤에 차를 끌고 나갈 생각을 안 합니다. 대형 마트가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데 왕복 10차로 간선도로가 차로 꽉 차서 주차장이 돼 버리거든요.

밤 10시에 장을 보고 귀가하기 전 평화로운 아이스크림 타임

이 기간 중에 어지간한 식당에서는 라마단 특선 코스 요리를 선보입니다. 전채 요리에 메인은 고기를 굽고 디저트 케이크와 음료까지 해서 4인 가족이 먹으려면 20만 원 정도 내야 해요. 어차피 테이블이 만석이기 때문에 단품 장사는 잘하지 않습니다.

술을 안 마셔서 그런지 달달한 디저트를 무지 좋아합니다

파티는 저녁 9시쯤 시동이 걸려서 새벽 3시까지 계속됩니다. 새벽 3시에는 그쳐야 해요. 새벽 기도 시간이거든요. 그러면 슬슬 집에 돌아가서 잠을 잡니다. 오후 2시, 3시가 되도록 자요. 일찍 일어나 봤자 배만 고프고 할 것도 없으니까요.


오후 3시쯤 일어나면 두세 시간 깨어 있는 상태로 금식하고 다시 저녁 6시를 기다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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