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지는 겁니다만
사우디는 너무 더운 데다 자외선도 강해서 야외 스포츠 같은 실외 활동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수요가 없으니 인프라가 안 생기고 인프라가 없으니 수요가 생기지 않죠. 닭과 달걀입니다. 시간을 보낼 곳은 에어컨이 빵빵한 쇼핑몰밖에 없습니다.
쇼핑몰은 되게 잘 돼 있어요. 스타필드나 롯데몰 사이즈의 쇼핑몰이 1~2km마다 있고, 입점 업체는 글로벌 브랜드로 꽉 차 있습니다. H&M, ZARA, 나이키, 아디다스, 스타벅스, 카페베네 (깜짝 놀랐죠?), 던킨도넛 등등 익숙한 브랜드가 많습니다. 쇼핑몰 안에만 있으면 한국이랑 똑같아요.
차이가 있다면 그 입점 업체들이 기도 시간만 되면 수시로 셔터를 (반만) 내린다는 점이랑 커피전문점에 대낮부터 남자들이 바글바글 하다는 점입니다.
사우디 전통복을 하얗게 차려입고 수염도 기른 남자들이 대낮부터 스타벅스에 마주 앉아서 조각케이크와 라테 한 잔씩 앞에 놓고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죠.
남자들이 대낮부터 이러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일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직업이 없는 건 아니에요. 직업이 있습니다. 다만 출근을 안 하는 거죠. 근무 태만이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닙니다.
사우디에는 독특한 법이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면 같은 수만큼의 사우디인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경제활동이 자유롭지 않으니 사우디 남자를 고용하는 거죠.
그렇게 고용된 사우디 남자는 근무 시간에만 적어도 3번 기도하러 자리를 비웁니다. 어림잡아 2~4시간 동안 일하는 사람이 매일 자리를 비우는 거예요. 팀워크가 될 리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우디인에게 월급만 주고 보직을 주지 않는 게 차라리 효율적일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사우디 남성들이 직장에 적만 올려두고 출근은 하지 않으면서 월급만 받는 구조가 생겨났습니다. 할 게 마땅히 없으니 낮부터 쇼핑몰에 모여서 조각케이크를 즐기는 것이죠. 물론 관리직이나 공무원은 출근을 합니다만 기도 시간에 사라지는 건 똑같습니다.
이 기이한 광경에는 아직까지 공개된 장소에서 남녀가 함께 앉아 있는 게 용납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합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은 예외입니다만, 흔히 생각하는 남녀의 카페 데이트가 불가능하다 보니 남자만으로 가득 찬 병영 식당 같은 모습이 연출될 수밖에 없겠네요.